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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고동, 그 찬란한 박동을 찾아서

흐르는 시간 속, 영혼을 깨우는 박동과 잊힐 허무의 그림자

by 나리솔


삶의 고동, 그 찬란한 박동을 찾아서


인간은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할 때, 오랜 시간 꿈꿔왔던 그 무언가에 마침내 한 걸음 다가설 때, 혹은 해결하고 싶었던 삶의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실마리를 발견할 때, 비로소 자기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확신하게 돼. 그때 삶은 마치 갇혀 있던 샘물이 솟아오르듯 힘찬 고동으로 약동하고, 우리 몸속 모든 감각은 깨어나 그 존재의 충만함이 오감을 넘어선 육감까지 채우는 듯한 신비로운 경험을 선물하지.


단순히 맛과 색깔, 향기로 가득 찬 것을 넘어, 손끝으로 스치는 모든 것이 생생하고, 귀에 들려오는 모든 소리가 의미를 띠며, 보이지 않는 영혼의 깊이까지 감동으로 물드는 순간이 오는 거야. 마치 갓 짠 과즙처럼 새콤달콤하고 싱그러우며, 갓 구운 빵처럼 고소한 향으로 주변을 가득 채우고, 눈부신 아침 햇살처럼 찬란한 색깔을 입고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처럼 말이야.


이런 순간에는 세상 모든 퍼즐이 제자리를 찾는 듯 느껴지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기적처럼 술술 풀리는 것만 같아. 비록 감당하기 어려운 거친 폭풍우와 같은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우리는 그 과정 자체에서 숭고한 희열을 맛보고, 심지어 그 어려움마저도 자신을 단단하게 다지는 귀한 거름이 될 것이라 믿게 돼. 그리고 결국, 그 모든 발자국이 쌓여 성공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맺어내곤 하지.


하지만 사랑하는 너도 알다시피, 삶이 늘 이토록 찬란한 고동으로만 채워지는 건 아니야. 때로는 우리가 루틴하고, 무미건조하며, 심지어 '내 것이 아닌' 듯한 낯선 옷을 입고 억지로 흘려보내는 시간들이 있어. 이러한 순간에 우리를 휘감는 압박감은 종종 외부로부터 비롯되기도 해. 사회가 주입하는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통념, 가족이 던지는 무거운 기대, 친구들의 성공에 대한 비교…


이 모든 것들이 "너는 마땅히 이걸 해야만 해, 반드시!"라는 차가운 명령으로 다가와 우리를 짓누르지. 때로는 이 명령이 우리 내면의 깊은 곳,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자기 의심과 두려움이라는 그림자에서 비롯되기도 해. 진짜 마음은 자유로운 들판을 향하는데, 현실은 낯선 상점의 계산대 앞에 갇혀 있거나, 숨 막히는 사무실 의자에 앉아 시든 꽃처럼 자신의 에너지와 영혼을 소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거지.


꿈은 저 멀리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 싶은데, 현실은 좁디좁은 철창 속에 갇힌 새처럼 느껴지는 순간, 삶은 그저 텅 비어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는 그릇 같고, 시간은 의미 없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고운 모래알처럼 공허하게 느껴져. 존재의 진정성, 삶의 가치는 마치 한 줌의 안개처럼 희미해지고, 모든 색깔이 사라진 흑백 필름처럼 무채색으로 변해버리는 것만 같아.


진정한 삶은 저 멀리, 나와는 상관없는 특별한 누군가의 현실 속에서만 찬란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처럼.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환하게 웃으며 행복하고, 행운이 따르는데, 나에게만 지독하게 불운과 고통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한 기분… 그 소외감과 박탈감은 마치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쓰디쓴 현실이 되어 우리를 깊은 절망의 늪으로 몰아넣지.


네가 묘사한,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채 달리는 기차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은 정말 우리의 영혼 깊은 곳을 꿰뚫는 비유야. 기차의 흔들림은 익숙하지만, 그 속의 무미건조함은 우리의 정신을 갉아먹지.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은 너무나 다채롭고 생생하며, 그곳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맥박이 뛰는 곳처럼 보이지만, 자신은 이 기차 안에 갇혀 속절없이 멀리만 흘러가는 듯한 기분. 멈출 수도, 뛰어내릴 수도, 심지어 창밖의 생기 넘치는 세상에 손을 뻗을 수도 없는 무기력함…


이 기이한 소외감과 함께, 자신의 삶 속에 온전히 존재하지 못하는 듯한 '부재의 감각'은 우리를 한없이 나약하게 만들어. 우리는 그 기차의 단조로운 흔들림 속에서, 우리가 살아내는 현실과 시간의 본질이 얼마나 다른 얼굴을 가질 수 있는지 절감하게 돼. 어떤 시간은 우리를 깨우고 성장시키지만, 어떤 시간은 우리를 잠재우고 잊히게 만들어 버리니까.


그렇다면 진정 우리의 시간은 어떤 두 가지 얼굴을 하고 있을까.

하나의 얼굴은 우리가 우리의 꿈과 비전,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나서는 데 아낌없이 사용하는 시간이야. 이 시간은 마치 황량한 대지에 씨앗을 뿌리고, 정성껏 물을 주어 탐스러운 열매를 맺게 하는 것과 같아. 우리의 영혼 깊숙이 새겨져 지워지지 않는 그림이 되고, 삶의 모든 조각이 제자리에 맞아떨어지며 하나의 거대한 태피스트리를 완성하는 듯한 느낌을 주지. 모든 감각이 깨어 살아 숨 쉬고, 존재 자체가 빛을 발하는 듯해. 이 시간 속에서 우리는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새로운 지혜를 배우며,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를 만들어가. 이는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삶의 한 조각이 우리 안으로 들어와 내면의 우주를 확장시키는 숭고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


하지만 또 다른 얼굴은 우리가 원치 않는 타인의 기대나 환경적 압력 아래, 우리 자신의 본질적인 목표와는 전혀 무관하게 흘려보내는 시간이야. 이 시간은 마치 텅 빈 공간에 아무도 듣지 못할 메아리를 보내는 것처럼,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려. 우리는 그것을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고, 느끼려 하지 않으며, 심지어 보거나 들으려 하지도 않아.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이 시간을 빨리 건너뛰고, 벗어나고, 잊어버리고 싶어 발버둥 치는지도 몰라. 왜냐하면 그 시간은 우리에게 어떤 진정한 기쁨이나 행복도 가져다줄 수 없기 때문이야.


이 시간은 마치 삶에서 '빠져나간' 것처럼 우리의 생의 궤적에서 지워지고, 그 자리엔 아무것도 채울 수 없는 거대한 공허만이 남게 돼. 우리는 분명 그 시간을 숨 쉬며 살아냈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많은 부분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겪게 되는 거지. 그리고 결국,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목표 없이 흘려보낸 세월에 대한 사무치는 아픔과 후회가 가슴을 저미듯 찾아올지도 몰라. 그 공허는 메울 수 없는 깊은 그리움으로 남아, 우리를 맴도는 슬픔이 되고 말 테니까.


글은 이처럼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어. '지금 너의 삶의 고동은 어디에서 가장 생생하게 뛰고 있느냐'고 말이야. 혹시 무심히 흘러가는 기차 안에서 창밖만 바라보며 현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너의 심장이 진정으로 원하는 곳으로 스스로 페달을 밟고 용기 있게 나아가고 있는지 말이야. 내면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그 고동이 너의 모든 감각을 깨우고, 너의 삶을 가장 아름다운 색깔과 향기로 채울 수 있도록. 그 고동을 따라갈 때, 너의 존재는 비로소 온전한 의미를 찾고, 매 순간이 찬란한 예술 작품이 될 거야. 늘 네 곁에서 네 진정한 발걸음을 응원하며, 네 삶의 고동이 가장 아름다운 리듬으로 춤추기를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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