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는 과도기 극복하기
출산으로부터 넉 달 까지는 순탄하게 흘러갔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쉬운 산수 문제를 풀듯 새로운 문제를 직면해도 당황하지 않고 쓱쓱 풀어갔다. 핸드폰을 꺼내 들면 수많은 정보가 쏟아졌고 초반에 잘 쌓아둔 토토와 나와의 애착이 쌓은 신뢰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온 정신과 나의 열정을 토토에게 쏟아 보낸 몇 달 후 보통의 어느 날이었다.
평소와 똑같은 패턴으로 수유도 하고 거울을 보며 토토랑 웃으며 함께 옹알거렸다. (특별한 장난감이 없어서 거울 보며 보내는 시간이 많다) 토토의 웃음은 여전히 사랑스러워서 어깨가 뭉쳤는지도 팔이 무거운지도 느낄 새도 없었다. 토토가 웃고 있는 시선에는 거울의 비친 나에 머물러 있었다. 부어있는 얼굴에 거무스름한 눈 그리고 그 밑에 더 어두운 그림자는 갑자기 나의 기분을 가라앉게 했다. 사람의 기분을 바꾸는 건 정말 얇은 종이 하나의 차이였다. 그 와중에도 내가 기분이 가라앉음을 토토가 눈치 채지 않았으면 했다. 엄마의 우울이 전염이 될까 봐.
딱히 산후우울증이 생긴 건 아니다. 토토는 아기로써 완벽했고 남편도 헌신적으로 도왔다. 아침의 피로함과 거무튀튀함은 어제 이유 없이 들쳐본 사진첩 때문이었다. 친한 친구의 8년 전 사진을 우연히 발견한 게 원인이었다. 그 사진을 시작으로 시간을 거꾸로 사진첩을 몽땅 보게 된 것이었다.
첫 사진은 친한 친구랑 일본 닛코에 놀러 가서 오래된 료칸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나는 유카타를 입은 채 양반다리를 하고 한 손에 주전자를 들고 있고 차를 마시는 척 연출하는 모습이었다. 장난기가 가득한 모습이었다. 그 당시에 친구는 올해 초등학교 입학하는 딸을 임신한 상태라 우리는 맥주 대신 차만 엄청 마셨던 게 떠올랐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입술에 립스틱을 발랐고 머리를 올백머리를 했었다. 지금은 불가능한 헤어스타일 - 출산 후 매일 수백 개의 머리카락이 빠지고 있다. 나의 젊음이 빠져나가는 것을 매일 아침 내 눈으로 확인하는 기분은 그리 달갑지 않다.
사진 속에 있는 사람은 분명 수년 전 나인데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진 걸까. 무심코 거울을 봤는데 완전 다른 사람이 웃고 있는 듯한 기분. 사진 속의 순수했던 모습 예쁜 모습은 다 어디로 흘러간 걸까.
딱히 그때가 그립고 돌아가고 싶은 건 절대 아니다. 물론 자신 있게 올백한 모습은 부럽다만 - 그때의 사진의 나도 잠깐의 현실 도피로 간 여행의 기분에 살짝 취해있었다. 그 기분은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앞으로의 불안과 과거의 후회가 뒤엉켜진 무거움 속으로 돌아간 나를 아니까. 놀라웠던 건 몇 장의 사진이 잊고 있었던 당시의 주변의 모든 것 - 분위기와 친구와의 웃고 떠들었던 대화들 그리고 나의 기분 심지어 료칸의 냄새까지도 떠오르게 했다. 다 짜내려고 해도 몇 분 안 되는 길이의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은 앞으로의 시간이 흘러갈 만큼 흐릿해질 것을 알았다.
출산으로 인해 여성의 몸은 많은 변화들이 일어난 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중에서도 외적인 변화는 엄청나다. 노화의 단계를 그래프로 그려봤을 때 계단식으로 내려간다면 출산 이후에 백일 동안 갑자기 폭격을 맞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꺼질 만큼 확 주저앉는다. 나는 그게 당연한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했고 토토에게 집중한 탓에 급격히 변화하는 나의 모습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진 않았다. 그렇게 나를 버려진 사이에 믿었던 나는 많이 변해있었다. 사진 속의 나는 없었다. 얼굴은 누런빛으로 변해있었고 머리는 많이 빠져버렸고 급격히 늘어난 체중은 다시 돌아왔지만 늘어진 그 흔적은 뚜렷이 남아있었다.
한동안 나는 올백했던 앳된 모습을 나를 지우지 못했다. 거울의 내 모습과 비교해 가며 육아에 치이며 지냈다. 이건 아니다. 나 자신도 토토에게도 좋을 일 없다. 어떻게 하면 나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한동안 딜레마에 빠졌다.
그러던 와중에 임신했을 때 봤던 프랑스 아이처럼 이란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놀랍게도 그때 읽었던 마음과 지금 아기를 출산하고 읽는 마음 가짐은 많이 달라져있었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육아의 집중해서 봤다면 두 번째 읽었을 때는 산모 중심으로 엄마의 중심으로 읽어보았다.
이 책은 미국 여성인 파멜라가 프랑스에서 출산하고 육아하면서 느낀 것을 미국 사회의 육아와 비교해가며 재밌게 설명하고 있다. 시니컬한 프랑스 사람의 말투로 프랑스에서 깨달았던 잘못된 미국 사람들의 육아법을 꼬집어 말하고 있다. 꼭 희생을 강요하는 헌신하는 엄마가 아닌 나의 정체성을 지키며 자율과 복종, 규율과 자유가 공존하는 일관적인 모습으로 현명하게 육아를 해야 된다고 강조한다.
예전의 젖몸살로 며칠을 고생하다가 찾아간 가슴케어하는 마시지 샵에서 (체인으로 하고 있는 유명한 곳이었다.) 관리 못해서 모유에 생선 비린내가 난다며 구역질했던 마사지 실장님의 모습은 당시 나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던 기억이 난다. 결국은 모유수유를 포기했고 6개월까지 모유수유를 못했던 나에게 살짝의 죄책감을 남기게 했다. 프랑스 아이처럼의 책에서 나온 프랑스 엄마들은- 물론 다 그렇진 않지만- 모유를 강요하지 않고 출생 후 한 두 달 이후에 분유로 갈아탄다. 길게 모유를 먹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들은 육아도 매우 중요하지만 본인 자신이 소중하기 때문에 모유수유로 자기 자신을 고문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또한 출산 후 자기 본연의 몸을 되찾는 데에 적극적이다. 출산 후 몸무게를 줄이라는 사회의 압력이 존재한다고 한다. 특별한 다이어트를 하지 않지만 먹는 음식에 조심하며 당분간 불어난 상태도 괜찮은 엄마 안전지대 따위는 만들지 않는다.
한국과 미국은 SNS의 육아 사진이나 아기 키우는 집에 가보면 알록달록한 장난감이 진열되어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다 비슷비슷한 장난감들이라는 것이다. 열심히 인테리어 했어도 결국은 아이의 중심이 되어 아이의 물건들이 집을 점령해 버리고 만다.
프랑스도 물론 거실에 장난감을 두는 경우가 있지만 그래도 대다수는 가족 고용 공간까지 침범하게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최소한 저녁이면 장난감을 정리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마음을 비우듯 깨끗이 말이다. 저녁 시간부터는 아이와의 시간이 아닌 자신의 시간, 부부의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이렇게 프랑스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철저히 분리와 독립 그리고 4살 이후에는 아이들이 부모와 조금씩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희생이 아닌 행복한 육아를 하는 것 - 그래야 아이, 엄마 가족이 모두 행복할 수 있다고 그들의 생활 방식을 보여주며 반복적으로 메시지를 던진다.
그럼 내가 지금 처한 현실에서 나의 생활 방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현실 적으로 어렵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들을 나열해보았다.
-아기가 혼자 잘 놀고 있을 때는 주변에서 안전한지만 확인하고 엄마는 개입하지 않기
-건강한 저녁식사를 하고 토토와의 일관적으로 가볍게 시간 보내고 재운 뒤에 부부 둘만의 시간을 갖기
-저녁에 한 시간은 운동하기 (지금은 필라테스 일주일에 두 번 다니고 있다)
-토요일은 이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아기와 완전히 분리해 부부 둘만의 시간 갖기
-2년 후의 나를 조금씩 계획하며 준비해 보기
-매일 하루 팩 하기
나는 현재 달라진 나의 모습의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찬란했고 빛났던 그렇지만 마냥 행복하지 않던 젊은 시절의 나를 보내주기로 했다. 잊지는 못하지만 가슴속에 묻어두었다. 지금 아이와 함께 있는 현실에서 나 자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줄 나의 정체성을 빨리 되찾기로 마음먹었다. 책 제목의 <프랑스 아이처럼> 이 아닌 <프랑스 여자처럼> 우아하게, (그들의 우아한 게 어떤 건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사소한 것부터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기로 한 것이다.
애써 바꾸고 배울 필요 없이 생각의 각도를 조금만 바꾸는 것.
지금 나에게 어렵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
4개월은 아기에 오로시 집중했다면 지금은 조금씩 나 자신을 찾아 우리 가족이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출산 후 이렇게 6개월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