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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책 만들기 - 번역

'돌이켜보니' 가장 충만했던 시간

by 하몽



특별히 책을 좋아한다거나, 책을 만들고 싶어서 1인 출판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내가 알리고 싶고 공유하고 싶은 내용이 우연히 책의 형태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1인 출판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시작을 하지 않았을까? 특히 번역서를 내는 1인 출판사라면 더더욱.


책 만들기의 첫 시작, 번역(글쓰기).


판권계약을 맺고 첫 번째로 하는 일은 당연히 책의 속 - 글을 완성하는 일이다.

나는 애초에 '다른 영성분야는 몰라도 이 영성분야만큼은(세 가지 원리) 꼭 내가 알리고 싶어!'라는 굳은? 마음으로 1인 출판을 시작했기에, 번역을 직접 하는 것은 당연한 전제였다.


전문 번역가가 아니었기에 부담은 있었지만, 꽤 오랜 시간 관련 분야의 책을 원서로 읽어오며 이들의 언어와 충분히 친밀해졌고 이해가 깊어졌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번역 작업.

첫 출판의 첫 작업이었지만(계약과정을 빼면) 기대와 희망보다는 신경이 곤두서고 힘들었던 것 같다. 처음 하는 일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어려웠고 작업진도가 더뎠다.


나는 처음 직역투로 번역한 뒤(책 전체를), 두 번째에 의미가 더 잘 맞는 단어나 표현으로 다듬고, 세 번째에 전체적인 흐름을 보며 의역의 정도를 맞춰 다듬기 시작했다. 그리고 네 번째에 최대한 내가 생각하기에 완성본'처럼 다듬었다.


상처투성이 감수, 하지만 제일 값진 시간.


그리고 감수를 봤다. 정말 감사하고 다행이게도 남편이 감수를 봐주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은 못하고 감수에 대한 내용으로 꽤나(아주 많이) 감정이 상했었다.


돌아온 감수 내용이 거의 전면수정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남편은 내 글에서 한참- 더 읽기 쉽고 일상적인 톤이어야한다고 했다. 딱딱한 직역투가 너무 많다고 그랬다.) 처음 피드백을 받는 거라고 보면 너무 오만하긴 한데, 내게 제일 가깝고 편한 사람에게 받는 것이어서 그런지 납득을 잘 못했다. 내가 한 게 훨씬 낫다고 우겼고, 실제로 그렇게 느껴졌었다.


몇 달 내내 내가 쓴 글만 보면, 내 어조와 톤에 너무 익숙해져서 다른 사람이 건드린 부분이 정말 튀어 보이고 어색하고 이상해 보인다. 어쩌면 그게 당연하다.


하지만 책을 다 내고 깨달은 진리는 '언제나 고친 게 낫다'는 것이다. 피드백 받은 내용을 방향으로 다시 글의 고친다. 그렇게 한 문단만 고쳐봐도 감이 온다. '엇.. 고친 게 훨씬 낫네..'.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지만, 재밌는 작업이기도 하다. 내가 습관적으로 쓰던 표현과 톤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과 감각으로 글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어짜피 다시 고치고 또 고치면 내게 편한 톤으로 맞춰진다)


이렇게 감수받고 대대적인 수정을 하고 다시 가제본을 뽑았다.

두 번째 감수. 이때는 전체적인 톤보다 이견이 있는 특정 부분에 대해 논의하며 한 줄 한 문단의 의미를 명확히 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까지 한 뒤에 '인디자인' 편집 작업을 시작했다.

(물론 그 뒤로도 편집하면서 계속 장마다 읽고 고치고 읽고 고치고를 몇 번 반복하고, 편집-표지디자인을 완성해 가제본을 뽑고도 조금씩 수정을 했다)


당시엔 정말 지치고 힘들다고 느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이때가 가장 책 만들기의 본질에 깊게 닿은 충만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인디자인 편집, 표지 디자인, 인쇄, 유통, 배본, 판매, 마케팅까지 경험하고 나니 글을 다듬던 때가 가장 책(의 내용)과 친밀하게 보내는 마지막 시간이었구나 싶다. 글쓰기를 마치면 나머지 과정을 정신없이 해치우느라 다시 글의 내용을 생각할 겨를이 잘 없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책이 너무 잘 팔려서 두 번째 책에 번역을 맡길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생긴 대도, 번역만큼은 다시 내가 꼭 하고 싶다. 무엇보다 책의 내용이 번역 자체(기술)보다 관련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중요해서이기도 하지만, 번역이라는 과정이,출판의 영역 이전에, 내가 순수하게 사랑하는 분야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상위' 덕질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를 살린 이들의 언어를 나의 언어로 옮길 수 있다니. 그 과정을 통해 이들의 말 하나하나를 곱씹고 체화할 수 있다니. 사치스러운 시간이다.



나의 언어로 번역하고 만든 내 책의 내용으로 글을 닫아야지.



내가 그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나의 가족, 친구, 주변 사람들도 함께 깊은 감정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듯 보였다. 마치 그 공간 자체가 중력장을 가져 사람들 모두를 끌어들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사람들이 내가 느낀 '더 깊은 차원'의 변화를 설명해달라고 하면 난감했다. '그냥' 조용한 것과 평화, 명료함, 안락함과 같은 깊은 감정을 구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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