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시련 발견하기
우리는 인생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기에 하루에도 수많은 변수들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길을 가다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친한 친구와의 만남이 어제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현실의 재난은 평화롭던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박살 낸다. 그것도 한순간에 말이다. 오늘이 평범하던 어제와 내일의 연속적인 흐름을 끊는 포인트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불안과 걱정에서 벗아나기 위해 애를 쓴다. 남들보다 뒤처져있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나고자 공부와 일에 파묻혀 살고 사람들에게 버려질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며 가면을 쓰고 자신의 모습을 감춘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의 불안을 해소하고자 매 순간 쉬지 않고 달린다. 이들에게 인생의 목적은 그저 머릿속을 휘젓는 폭풍을 잠재우는 일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거친 파도와 폭풍을 막을 도리가 없는 것처럼 사라졌다 싶다가도 어느새 다시 나타는게 바로 불안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평생을 그저 불안감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야만 할까?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이 질문의 해답은 한 남자의 생존기에서 찾을 수 있다. <죽음의 수용소 앞에서>의 저자인 빅터프랭클 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수용되었다. 그곳에 수용된 사람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으며 제대로 된 밥도 먹지 못하고 강도 높은 노역으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야 했다. 그는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앞에 현실을 부정하고 어떻게든 절망적인 상황을 해소하고자 발버둥 쳤다. 하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들은 극심한 절망에 빠져 수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두 죽었다.
반면에 빅터프랭클 박사를 포함한 소수의 사람들은 애써 현실을 부정하고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은 것들에 감사했다. 벽 너머로 보이는 해를 보며 감사했으며 음식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했으며 공터에 핀 작은 꽃을 보며 감사했다. 그들은 현실 그 자체를 살아갔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죽음의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들이 지옥과 같은 현실에서 주어진 작은 것에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자의 나름대로의 삶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누구는 밖에 남겨진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누구는 자신이 아직 끝내지 못한 일생일대의 연구나 과업일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그들의 내면에는 주어진 삶을 살아내게 하는 굳건한 의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삶의 의미는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수용소에서 그들에게 하나의 밝은 등불이 되었다. 삶에서 어려움이 찾아올 때 그들은 외부의 시련에 집중하지 않았다. 내면에 살아 숨 쉬는 삶의 의미를 바라보며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그렇다면 삶의 의미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빅터프랭클 박사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창조이다. 여기서 창조란 자신이 죽더라도 이 세상에 남겨질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을 의미한다. 그 무언가는 한 점의 그림이 될 수도 있고 한 편의 시나 소설 등 자신의 영혼을 담은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인간은 창조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사랑이다. 우리는 평생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 사랑은 가장 강력한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다. 수용소에 갇힌 대부분의 이들이 어딘가에 살아있을지 모를 자신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지옥 같은 현실을 버텨낼 수 있었다.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사랑함으로써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사랑을 경험한 인간은 비로소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며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시련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시련을 마주한다. 우리는 시련이 닥쳐왔을 때 주저앉을 수도, 이 악물고 버틸 수도, 시련에 맞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수도 있다. 어떠한 행동을 취할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있다. 우리는 시련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마음을 먹는 일뿐이다. 물론 시련이 막상 눈앞에 다가오면 그리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최종적인 결정은 우리의 몫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하기 바란다. 인간은 시련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한번 우리의 하루를 돌아보자. 나는 오늘 무엇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살았는가? 그저 마음속 불안을 없애기 위해 살았는가? 그렇다면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커다란 시련이 닥쳤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저 나아지지 않는 현실을 한탄하며 좌절할 것인가? 그보다는 삶이 당신에게 속삭이고 있는 말에 귀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