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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정신과는 처음이지?

‘내 마음의 엑스레이’를 잘 찍는 3가지 방법

“어떤 이유로 내원하셨어요?”


정신과 여러 곳을 다녀본 경험에 비추어보면 내가 받은  질문은 동일했다. 어떻게 보면 다른  진료 등과 다르지 않다.

감기에 걸렸다면 내과나 이비인후과로 가는 것처럼 마음의 상흔을 입으면 우리는 정신과에 간다

다만, 정신과에서는 각종 영상의학과적 검사 대신 면담에  무게가 실린다.  그게 ‘마음의 엑스레이 찍는 방법이다.


우선 정신과는 100% 예약제로 운영되는 병원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용기를 내서 간 병원에서 허탕을 치는 일이 없도록 꼭 확인을 해보기를 바란다. 나 역시 전화를 여기저기 많이 돌렸는데 당일 예약이 가능한 곳은 거의 없었다. 통상 빠르면 3일에서 늦으면 일주일 이상 기다려야 하는 곳이 많았다. 어떤 병원의 경우 미리 부탁을 해놓으면 비는 시간이 있을시 따로 연락을 해주기도 했다.


예약을 잡고 하루하루 날짜가 다가오면 여러 생각이 올라온다. 특히 정신과가 처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내가 진짜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저 내가 예민한 것일까?’ ‘괜히 가는 거 아닐까? 정말 가는 게 맞을까?’에서 부터 ‘진료비가 많이 나오면 어떡하지?’이런 현실적인 생각들도 마음의 폭풍처럼 다가오곤 했다.


지난 8년간 3번의 마음의 병으로 단기/장기적으로 정신과를 찾았는데 갈 때마다 병원 첫 방문을 앞두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막상 병원 대기실에서 힐끔힐끔 다른 환자들을 스캔해보면서 ‘저 사람은 어디가 힘든 것일까?’ 생각을 해보면서도 이 마음의 긴장감은 끊이지 않았던 것 같다.


‘마음의 엑스레이’ 잘 나오는 3가지 정보


대체적으로 의사 선생님들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끌어낸다. 내가 이야기를 조리 있게 하고 있는지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정보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언제부터 그랬어요?’ ‘잠은 잘 자고 있어요?’등 추가 질문을 하니 말이다. 부담 갖지 말고 그저 내가 불편하고 힘들다고 느낀 걸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된다. 감정의 기복 속에서 안 그래도 힘든데, 아파서 찾아온 병원에서까지도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는 없지 않는가


초진의 경우는 간단한 조사 문을 대기실에 작성하고 들어가기도 한다. 그걸 바탕으로 의사가 정보를 이것저것 물어볼 수도 있다. 내가 찾았던 병원 절반 정도는 초진 설문지를 작성했고, 나머지는 별 다른 문서 작성 없이 면담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진료를 했다.


다만, 내 상태를 좀 더 상세히 전달하고 싶다면 3가지를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1. 증상이 시작된 시기부터 특히 최근 2주 정도의 내 감정 상태

내 마음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우리가 감기에 걸렸을 때 기침이나 콧물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이야기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어떤 사건이나 계기가 있다면 그걸 이야기해도 좋다. 나는 회사 상사와 관계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던 차에, 크게 또 한 번 상처를 크게 받는 사건이 있었다. 나는 그 사건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그로인해 내 감정과 상태가 어떻게 변화하고 조절하기가 어려웠는지를 설명했다. 슬픔, 분노, 외로움, 두려움, 아픔 등이 언제부터 시작됐고 어떻게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솔직히 말하면 된다.   


 2. 신체 반응(소화 기능, 두통, 불면증, 구토 등) 여부

감정에 영향을 받으면 우리의 자율신경계가 영향을 받는다. 그러면 신체 반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신체 반응 때문에 마음의 병을 알아채기도 한다. 나 역시 여기에 해당하는데 2년 동안을 극심한 두통을 달고 살았다. 대학 병원의 두통 클리닉을 다닐 정도였는데 아무리 약을 먹어도 두통이 가라앉질 않았다. 결국 구토 증상이 나타나고 나서야 마음의 병이라는 점을 인지하게 됐다.

이런 신체 반응 역시 언제부터 나타났는지 시기를 이야기하면 도움이 된다.   



3. 복용하고 있는 약물 여부 및 과거 진료받았던 내용

나는 앞서 내과와 신경과 두통 클리닉에서 진료를 받았을 당시 받았던 환자 보관용 처방전을 정리해 가져갔다. 특히 약 처방이 신경이 쓰였는데, 신경과와 신경정신과 약을 먹고 메스꺼움, 구토감, 현기증을 느끼기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약이 맞지 않아 계속 바꾸는 경우도 주변에서 많이 봤고, 기존 기록을 가져간다면 의료진 입장에서도 약 처방에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간단한 메모의 힘

심연에 가라앉아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눈물 콧물을 다 쏟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면 이야기를 잘 못할 수도 있으니 이런 정보를 휴대폰이나 작은 쪽지에 키워드로 정리해 적어가는 것도 추천해본다. 이건 정신과 병원이나 심리 상담에도 해당된다.


내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마음속의 폭풍을 견뎌낼 수가 없어서 공기 속이 아니라 물속에서 숨을 쉬어야 하는 기분이었다. 병원으로 가는 버스에서부터 눈물을 흘렸고 대기실에서는 폭풍 눈물을 쏟아냈다. 마치 코피가 갑자기 쏟아지는데 내가 제어할 수 없는 것처럼 후두두둑 눈물이 나왔다. 창 밖에서 보이는 풍경이 눈물 속에서 마치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병원 대기 중에서도 훌쩍훌쩍 울었다. 데스크에 있던 간호사 선생님이 조용히 휴지를 건네줬다. 상담 중에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불안한 마음에 손에 쥐고 있던 휴지를 찢으면서 말을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선생님은 우선 내게 바로 먹을 수 있는 안정제를 처방해주셨다. 너무 울다 보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나 스스로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휴대폰에 메모를 해뒀던 내 감정 일지를 꺼냈다. 울먹이긴 했지만 하나하나 키워드를 읽어 내려가며 의사 선생님께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다 나는 그래서 (나처럼 울지 않더라도^^;;) 간단하게 메모를 해놓으라고 해보고 싶다. 아무 준비 없이 갔다가 ‘아 이 이야기를 하는 걸 잊었네’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거나, 어떤 정보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헷갈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세하게 보고서처럼 적을 필요도 없다. 마음의 여유나 시간이 없다면 간단히 키워드만 머릿속으로 정리해가도 좋다.

그럼 나 스스로도 나를 돌아보는 계기도 되고, 의사 입장에서도 필요한 정보를 잘 캐치하는 계기가 되리라고 본다.



마지막 한마디:

‘마음의 진료에도 잘 나온 엑스레이가 필요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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