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고 싶은 아이》는 17살 박서은이 죽은 후 그녀와 친했던 지주연과 이들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중간중간 들려주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박서은과 지주연은 중학교 시절부터 서로 둘도 없는 친한 친구 사이였다. 그러나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둘의 관계가 사실은 갑을 관계였으며, 박서은이 지주연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것이라는 사실이 서서히 밝혀진다. 뿐만 아니라 지주연은 엄마와 학원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거짓된 행동을 하고 이에 대해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소시오패스적인 행동을 일삼던 아이였다.
“아니라고 하면 믿어 줄 거예요?”
라고 말하며 지주연은 끊임없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한다.더욱이 박서은의 직접적 사인이 된 벽돌에서 그녀의 지문이 발견되면서, 그녀의 말을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아무도 없게 된다.
청소년 소설을 읽으며 이 책만큼 반전이 충격적인 책이 있었던가? 없는 것 같다. 이 책은 쉽게 잘 읽히고 청소년들이 읽기에도 흥미진진한 면이 많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짧고 간략한 문장을 구사하여 전달력이있고, 흥미를 적절히 담아낸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가의 전작을 모두 읽어보았는데 단연 이 작품이 최고다.
언론사의 욕심으로 채워진 자극적인 뉴스. 이를비판의식 없이 받아들이고, 마녀사냥을 시작하는 대중들. 작가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가져와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고 괴물 같은지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있다.
주인공 주연은 분명 무섭고 나쁜 아이다. 자신과 갈등이 생긴 엄마를 공격하기 위해 아빠 앞에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딸이다. 갈등이 생긴 학원 선생을 성추행범으로 만들어 함정에 빠트리는 행동도 서슴없이 하는 누가 봐도 제대로 된 소시오패스다. 친구를 살해했다는 협의를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나쁜 행동들을 서슴없이 해왔다. 주변의 친구들이나 학원 선생님, 엄마마저도 주연을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연이 그렇게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주연의 잘못된 행동들이 과연 주연만의 잘못이었을까? 주연의 부모가 좀 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었다면.주연의 주변에 주연의 외로움을 알아봐 주는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주연은 다른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녀를 장식품으로 여기는 부모 밑에서, 소외된 마음을 챙길 방법이 없는 어린 여자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다른 친구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채우는 방법뿐이었을 것이다.
가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은의 마음을 돈으로 사고,자기 마음대로 서은을 조종했지만, 주연에게 서은은 유일한 안식처였다.그러나 서은은 자랐고,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아르바아트를 시작하고, 남자친구까지 생기면서 주연으로부터 멀어진다. 둘의 관계가 돈독했던 만큼 주연에게 서은의 빈자리는 커졌고, 그 둘의 갈등은 증폭된다. 결국 갈등은 심화되고 서은이,주연이 자신에게어떤 존재인지 진실을 밝히면서 둘의 관계는 무너져버린다.
작품의 주인공 주연과 독자들은 모두 진실이라 믿고 싶은 대로만 믿고 있었다. 개인의 비양심적인 행동과 자극적인 기사를 찾아 하이에나처럼 달려든 언론사와 대중들로 인해 진실은 저 멀리 달아나 버렸다. 우리는믿고 싶은 대로 믿으며, 왜곡된 현실을 만들어 내고, 그 속에서 갈등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만약 주연이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다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미 대중들은 주연을 용의자로 낙인찍었다. 누구도 진실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이미 진실은 왜곡된 채 대중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대로 화석처럼 굳어져 버린 것이다.
마지막 반전을 확인하고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과연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은 사실인가?’일 것이다. 세상에는 우리를 속이려는 사람들이많다. 우리 스스로 진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진실이라 믿고 있는 일들도 많다.
진실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진실이 무엇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세상에 살고 있다. 언론사에 의해, 비양심적인 인간들에 의해, 혹은 자신의 무비판적이고 무지함으로 인해 우리는 왜곡된 진실을 사실로 굳게 믿으며 살면서 그런 혼돈조차 깨닫지 못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기가 다 안다고 믿어요. 사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사람들이 궁금해하던 진실요? 그냥 이게 다예요. 사실은 이게 다인데, 이렇게 간단한 문제를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지주연이 못된 애여서 그런 거겠죠? 미움받을 만한 애니까.
근데요, 하느님.
하느님은 지주연이 한 말 믿으셨어요? 전 그게 진짜 궁금해요.』 P 196
이 책은 우리가 혹시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각성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누군가의 이익과 비양심으로 또는 당신의 편견이나 무심함, 무지함으로 진실과는 거리가 먼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흥미롭게 잘 읽힌다는 장점뿐만 아니라 그동안 한국 청소년 소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가늠해 주는 책으로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학교폭력이나 청소년 문제, 언론 생태계와 연관된 사회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교사나 학부모뿐 아니라 모든 성인들이 읽어 볼 만한 의미가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