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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by 햇살나무

어제는 감기, 위염, 피로누적으로 링거를 맞았다. 2 주내내 감기가 목으로 왔다가 나을만하면 코로 왔다. 떨어질만하면 다시 오는데 부지런하게 살아야 아프지 않았지만

아플 때에만 또 쉴 수 있다는 건 아이러니하다.

웬만하면 강철체력이어서 아파도 대충 약으로 버티고 벌떡 일어나던 내가 아파서 병원을 가야겠다고 했더니 남편은 오는 날이 아니었는데 1시간 40분을 운전해서 병원으로 와주었다. 집에 오고서부터는 계속 잠만 잤다. 남편은 다시 회사로 돌아갔고 둘째는 이모가 밤새 돌봐주었다.


해외라서 의료보험이 안되니 병원비에 대한 지출액은 올 때마다 워낙 커서 웬만하면 병원을 가지 않으려 했다.

동네 약국에서 얕은 지식검색으로 돌팔이처럼 내 맘대로 항생제 등등의 약을 사 먹었다. 그러다 병은 커졌고 결국 피검사까지 해봤더랬다. 그러니 비용은 천정부지다. 내년 한국행을 하면 여행자보험은 반드시 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참만에 깊은 잠에 들어 꿈속을 헤매다 새벽 2시 30분에 이모가 둘째를 안고 우리 집 벨을 눌러서 깜짝 잠에서 깨어났다. 그 김에 나는 약도 먹지 않고 오자마자 잠든 것을 알고는 빈 속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또 속은 아파서 꿀 한 모금을 먹고 한 보따리가 되는 약봉투를 열고 저녁약이라 적힌 용지를 뜯고 보니 한 움큼이나 되는 약을 입에 털어 넣어야 했다.


그러고 두 시간을 자다 일어나 보니 속도 가라앉았고 머리도 덜 아팠다. 새벽 4시 40분에 아들 생일 미역국만 부랴부랴 끓이고 뽀얀 쌀밥을 안치니 이모가 깨어나 집으로 가셨다. 어찌나 감사한지 오늘은 이모께 쉬시라고 말씀드렸더니 전날 아들이 먹고 싶다던 삶은 마카로니를 소고기와 청경채에 볶은 음식을 기억하고 계셨다가 사가지고 아침일찍 아들이 깨기도 전에 우리 집으로 오셔서 들러놓고 다시 가셨다.


아파서 이 음식을 못해준 게 미안했던 나는

아들 생일상에 이모가 사다 주신 아들이 좋아하는 볶은 마카로니와 미역국을 올렸더랬다.

6시 정각 알람소리에 깨어난 아들을 꼭 껴안으며

' 미안해. 축하해. 사랑해.' 라며 모든 의미가 함축된 말을 했다.


나도 사랑해. 고마워하며 생일상이 차려진 식탁 앞으로 앉더니 그 자리에서 볶은 마카로니 한 그릇을 다 먹었지만 미역국은 조금 남겼다.


어제 맞은 링거와 약 덕분에 컨디션이 점점 좋아지던 나는

다 낫지는 않아서 아들이 좋아하는 LA양념갈비를 구워 저녁상에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하교 후 집에 오자 요리를 시작했다. 둘째랑 단둘이 있을 땐 부엌에서 일을 하려하면 자꾸 책을 들고 쫓아와서 ' 일하지 말고 나랑 놀자. ' 하니까.


나는 사과, 양파를 갈아 넣고 간장, 설탕, 생강, 후추 등등을 넣어 양념을 만들어 갈비를 먼저 굽고 나서 재워놓은 양념을 얹고 물을 반컵 부어 조려서 만들었다.


요리를 끝내니 둘째가 산책을 가자고 졸라대서 자다 일어난 듯 수세미 같은 머리를 하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새까맣게 타고 여윈 원주민처럼 하고서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딸은 새끼 염소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신발이 벗겨져도 내던져진 듯 버려둔 채 아무렇지 않게 말괄량이처럼 맨발로 콩콩 뛰어갔다. 가는 길 끝에 남편이 서있었고 딸은 남편에게 안긴 채 집으로 들어왔다.


저녁상을 차리려 보니 분명 프라이팬 그득 넘치던 갈비가 반으로 줄어있었다. 갈비 굽는 냄새에 이끌려 아들은 서서 그 갈비를 몽땅 자기가 다 먹었단다.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게다가 남편은 미역국을 세 그릇이나 먹었다.

미역국은 자주 해줬는데 유난히 아들생일날 먹는 미역국맛은 달랐나보다..


촛불은 서로 불겠다며 둘째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면서 케이크 앞에 진을 치고 앉았다.

어찌어찌하여 불을 끄고 축하노래를 부른 후 아들과 딸은 사이좋게 촛불을 함께 불어 꺼뜨렸다.


케이크맛이 좋아서 둘째 동갑 아가가 사는 앞집에도 한 접시 나눠드렸다.





어제는 죽을 것처럼 아팠다.

하필 왜 아들 생일 전날이야.. 나는 서러워 병원 가는 택시 안에서부터 울어댔다.

그러나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 하더니 .

그래 엄마니까 나는 엄마였다.


그날만 아프고 벌떡 일어나 아들의 생일상을 차릴 수 있었다.

그야말로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한 날.


고난은 장차 올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날로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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