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방법

by 오트밀앤티

느릿느릿 실눈을 뜬다.


커튼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온다.


Bay Bridge에서 쏟아지는 인공 불빛도 아니고,

새벽녘의 붉은 기운이 섞인 빛도 아닌,

그저 환한 아침빛이다.


0.1초도 안 되는 순간에 뇌가 상황을 해석한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구나.


그래도 눈을 다시 감는다.

오늘 아침은 서두를 필요 없다. 조금만 더 자자.




그런데 생각이 꼬리를 문다.


오늘 일정이 뭐였더라.

미팅은 오후, 그전에 이메일을 확인해야 하나.

오늘 일을 좀 해두면 이번 주가 덜 바쁠 텐데.


생각이 잦아들지 않는다.

더는 잘 수 없다.



Alexa, what time is it now?

알렉사는 특유의 그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해준다.

It’s seven eighteen a.m.


씻고 준비하면 4마일쯤은 달릴 수 있겠다.




화장실로 가 양치를 한다.


거울 속 머리는 예상대로 산발,

눈은 반쯤 감겨 있지만

어제 바른 크림 덕분인지 피부는 윤이 난다.


흠, 꾸준히 발라야겠다.


세수를 마치고 거실에서 탭워터 한 잔을 마신다.

물이 장기를 타고 내려가며

몸을 깨우는 느낌을 잠시 즐긴다.


운동복으로 가득한 옷장을 열어 날씨를 가늠한다.

창밖이 화창하니 얇게 입어도 될 듯하다.


옷을 입고, 선크림을 듬뿍 바른 뒤,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최대한 가린다.


애플 폰과 연동조차 되지 않는 갤럭시 스마트워치를 차고,

핸드폰을 챙겨 음악을 고른다.


오늘은 2000년대 클럽 음악. 화창한 날씨에는 업비트가 제격이다.




집을 나서니 벌써 7시 43분.


Rincon Park로 걸어가며 상체를 스트레칭한다.


출근길 사람들 사이를 지나 큐피드 화살 앞에 도착한다.


베이브릿지 너머로 보이는 일출을 바라보며 허리와 발목을 풀어준다.




이제 달릴 시간이다.


Strava를 켜고 Fisherman's Wharf 방향으로 달린다.


오늘은 몸이 가볍다.


천천히 달리는 러너들을 지나치고,

페리에서 내린 인파를 요리조리 피해 달린다.



햇볕은 부드럽고, 바람은 선선하다.


원래 목표는 중간에서 돌아오는 것이었지만 욕심이 생긴다.

Ghirardelli 까지는 무리지만,

Alcatraz가 보이는 선착장까지 가기로 한다.



그곳에서 Strava를 멈춘다.


가까이 보이는 Alcatraz,

멀리 선명하게 서 있는 금문교,

아침부터 휴식을 즐기는 바다사자,

뒤를 돌면 Ferry's Wheel과 샌프란시스코 전경.


한 자리에서 360도로 돌아보면 이 모든 풍경이 들어온다.


이 도시에서 산 지 8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감탄이 나온다.


같은 자리에서 찍은 사진이 이미 많지만,

또다시 몇 장을 남긴다.




돌아가는 길에는 주식과 회사 이야기를 다루는 팟캐스트를 듣는다.


엔비디아 주식을 더 사야 할까, 말아야 할까.


생각에 잠기다 보니 어느새 집 앞이다.



아직 9시도 되지 않았다.


벌써 날씨를 느끼고,

사람을 보고,

풍경을 감상하고,

음악을 듣고,

새로운 걸 배우고,

운동까지 했다.


그렇게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하루가 또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