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번에 답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남을 이해하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 역시 까다롭다.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도대체 저 사람은 왜 그러는 걸까?'라는 의문을 품으며 답답함을 느낀 적이 많았다. 사회적 동물이라 일컫는 인간에게 있어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며 빈번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er)의 등장은 여러 의미로 강렬했나 보다.
MBTI는 사람의 성격을 16가지로 분류하는 심리검사 도구이다. 4가지 영역에서 이분법적인 구조로 평가한다. 이렇게 하면 총 16가지의 성격유형이 도출된다. 외향(E)과 내향(I), 감각(S)과 직관(N), 사고(T)와 감정(F), 판단(J)과 인식(P). 이와 같은 것을 조합하며 성격을 분류한다. 예를 들어 외향, 감각, 사고, 인식의 유형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치면 ESTP가 되는 식이다. 잠깐 유행하고 말 것 같았던 MBTI는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2025년 현재까지 화두에 오르고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어색함을 깨기 위하여 가볍게 MBTI를 물어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됐다. 심지어 과몰입하여 맹신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여기서 맹신한다는 건 MBTI의 잣대로만 그 사람을 판단하려는 행위를 뜻한다.) 과연 이런 현상이 잠깐의 바람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MBTI가 유행을 타기 이전부터 여러 가지 성격에 대한 분류법이 유행을 했다. 요즘은 잘 언급되지 않지만 2000년대 초반정도에는 혈액형별로 성격을 나누는 게 트렌드였다. A형은 소심하고 B형은 다혈질이라는 식이었다. 물론 과학적 근거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혈액형 성격이론에 대한 신뢰도는 미약하다. 그저 문화적 믿음이라는 게 정설이다. MBTI도 혈액형보다는 덜하다고는 하지만 역시 과학적 근거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충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것들을 믿고 싶어 하고 실제로 여러 상황 속에서 판단의 잣대로 사용한다. 모호하고 일반적인 설명을 주고 자신의 성격이라고 받아들이게 되는 바넘효과(Barnum Effect) 때문이다.
혈액형이든 MBTI든 그게 맞냐 틀리냐는 논외로 두고, 우리는 왜 이렇게 사람들을 유형별로 나누는 것에 익숙해진 걸까? 첫 번째로 재밌기 때문이다.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MBTI는 명료하게 만들어준다. 이해되지 않았던 문제들이 명쾌해지면 즐겁다. 두 번 째는 깊게 생각하기 싫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애정이 크면 부지런히 그 사람을 알려고 한다. MBTI는 가성비가 정말 좋다. 그 사람을 끊임없이 이해하려 하는 노력 대신 쉽게 단정 지을 수 있다. 이해에 대한 심리적 게으름을 가볍게 해소해 준다. 그래서 자주 활용된다.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한 인과관계에 대한 이유를 생각하기 귀찮고 더 에너지를 쏟기 싫을 때, 이런 성격유형분류들은 극단적인 통쾌함을 주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나타나게 될 것 같다.
앞서 말했듯 MBTI와 같은 성격유형 검사는 우리의 시간을 절약해 주며 가성비 있게 결론을 내려준다. 그러나 편리하 다해서 자주 남용하게 되면 사람에 대한 풍부한 맛을 잃게 될 것이다. 언젠가 사람들이 엄청 매운 떡볶이만 찾던 때가 있었다. 캡사이신을 쏟아부어 매운맛은 절정에 다 달았고, 게다가 달고 짜서 온갖 자극적인 맛의 결정체였다. 이런 떡볶이를 가끔 먹는 건 괜찮다. 하지만 매일 먹으면 극단적인 맛에 익숙해져 점점 다른 섬세한 맛들을 즐기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MBTI도 떡볶이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에 영화를 보는데 주인공이 3년째 준비했던 공무원 시험에 떨어져 오열하는 장면이 나왔다고 가정해 보자. 순간 주인공의 감정에 동요가 됐고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이때, 감동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당신의 자유일 것이다. "나 역시 1년 동안 시험에 준비했지만 결국 원하는 성적을 내지 못했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니 인생 전체가 무너지는 것 같았지. 당시에는 내 노력이 실패해서 괴로웠지만 그걸 계기로 다시 강하게 마음을 먹을 수 있어서 다음 해에는 원하는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러니 앞으로도 어려운 난관에 처한다고 너무 낙심하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해도 되고, "아, 이런! 나는 F라서 감성적이기 때문에 또 눈물이 나네!"라며 넘어가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