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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없는 작가 Sep 07. 2024

하늘빛 서정

일상을 다 내려놓고 떠난 길이다. 땅과 바다의 경계를 따라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걷다가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데, 빈 하늘에 새 한 마리가 날아간다. 호젓한 날갯짓을 보니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새가 하늘로 날아오른다. 

  어디에 가나 하늘이 있었다. 고샅길에서 공깃돌 줍다가도 엄마 손에 이끌려 외갓집에 가서도 고개를 들면 하늘은 늘 손에 잡혔다. 바람 없는 날이면 길가 작은 연못에도 구름을 머금은 채 내려와 있었다. 하늘도 마음이 있는지 먹구름이 끼다가 비가 오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을 쏟아냈다. 흐린 날에는 우울하고 맑은 날에는 개고, 하늘의 표정은 어린 마음에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대청소하는 날, 호호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았다. 신문지를 구겨 유리창을 문지르다 보면 팔이 몹시 아팠다. 선생님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유리창을 잘 닦는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나는 맡은 유리창을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닦았다. 칭찬을 들은 후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하늘을 바라보면 마음은 새가 되어 날아올랐다. 

  가끔 하늘은 두려운 존재였다. 서쪽 하늘에서 몰려오는 먹구름을 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밀려왔다. 혼자 살짝 꺼내 보다가 주머니에 넣어둔, 기억의 창고 한구석에 감춰둔, 용서받지 않은 잘못이 쥐구멍을 찾아 허둥댔다.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면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이 지붕 아래로 숨어들었다. 

  살짝만 건드려도 감수성이 터지던 시절, 말간 하늘에 떠 있는 한 점 구름을 보면 마음속에 뭉게뭉게 피어나는 무엇이 있었다. 젖가슴처럼 부품하게 피어오르다 허공에 스러지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다시 술렁거렸다. 무거운 책가방과 교복을 벗어 던지고 무작정 떠나고 싶었다. 숙제와 시험이 없는 세상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머리를 식히려 바닷가에 나가면 하늘과 땅과 바다의 경계가 보였다. 수평선을 보며 나는 상상했다. 수평선을 잡으러 달려가면 수평선은 저만치 멀어지고, 호기심 많은 개척자는 또 달려갈 것이라고. 끝내 수평선은 잡을 수 없지만 처음 떠난 곳에 닿으면 내가 사는 곳이 둥글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때로는 유유한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 구름 위에 누워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면 낙타를 탄 여행자를 만나고 아라비아 양탄자를 탄 소년도 만나겠지. 하얗게 눈 덮인 알프스를 넘으면 알퐁스 도데의 별이 반짝이는 프로방스에 닿겠지. 내가 사는 세상을 한 바퀴 돌아보고 싶은 나는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세계를 일주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었다. 

  삶의 개척자가 되고 나서 하늘에 무심했다. 주부가 되어 장을 보고 아이들을 키우며 모든 것은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배낭을 메고 산길을 걸으며 하늘을 보는 일은 일상에서 제외되었다. 하늘을 보며 상상하는 일은 한가한 몽상가의 사치이고 현실주의에 빠진 내게 비생산적인 일이었다. 땅의 것만 보고 달리느라 하늘은 내 심상에서 더욱 멀어졌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숨을 돌릴 무렵, 암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하늘을 원망했다. 왜 하필이면 나냐고 따졌다. 두려움이 몰려들 때면 하늘 향해 주먹을 날렸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 하늘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앞이 캄캄해졌다. 긴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자 가장 먼저 하늘이 보고 싶었다. 휠체어에 앉아 바라본 하늘은 시리도록 투명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요양하러 시골집으로 떠났다. 공해 없이 깨끗한 하늘이 그대로 보였다. 구름 사이에 얼핏 비치는 빛 내림도, 서산 너머로 붉게 흐르는 노을도, 까만 밤하늘에 떠 있는 잔별도 하물며 빗줄기까지 나를 위한 선물로 보였다. 마루에 앉으면 마음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상상의 날개는 살아있는 자에게 주는 하늘의 축복이었다.

  숱한 이야기가 하늘로 올라가 숨어있었다. 하늘 깊이 낚싯대를 드리우면 선녀를 닮은 물고기가 입질할 것 같고, 하늘로 올라간 오누이가 금빛 두레박을 타고 내려올 것 같았다. 상상의 그물을 깊이 올렸다가 내리면 싱싱한 이야기들이 은빛 비늘을 파닥이며 우르르 쏟아졌다. 

  요즘에는, 하얀 양떼구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하늘 언덕 저편에서 목동이 걸어 나온다. 종일 초원을 누볐다고, 양들을 배불리 먹이느라 배가 고프다고, 밥을 달라고 천진한 웃음으로 졸라댄다. 그러면 나는 허기진 목동을 위해 하얀 쌀밥을 고봉으로 담고 파란 나물을 무쳐 내줄 것 같다.

  하늘은 다채롭다.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다가 사라지고, 온갖 그림을 그렸다가 어느새 싹 지워버린다. 소나기를 퍼붓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말갛게 능청을 떤다. 가끔은 무지개를 띄워 사람들의 마음을 채색한다. 심상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푸른 도화지, 만약 하늘이 없다면 사람의 마음은 무채색일 것이다.

  저녁노을을 볼 때면 생각한다. 내 인생의 황혼은 무슨 색일까를. 정열로 살았다면 붉을 것이고 활기찼다면 푸를 것이고, 아마도 게을렀다면 황량한 사막과 같을지도, 아침에 떠올라 중천을 지나 서쪽 바다에 떨어지는 것이 삶이라면 마지막이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은 욕심만은 아니지 싶다. 

  이제 하늘은 동경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을 넘었기 때문일까,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말이 요즘 들어 새롭게 다가온다. 어쩌면 화려한 욕망으로 물든 마음이 하늘빛으로 동화되고 있다는 신호인지 모른다. 

  하늘을 우러르는 일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한 점 없기를 바라는 시인은 아닐지라도, 욕심과 시기로 얼룩진 마음을 닦아 냈을 때, 하늘을 가장 깨끗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하늘하늘, 하늘은 어감조차 가볍다. 사람의 마음에 바탕색이 있다면 그것은 하늘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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