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의세포들>과 <천군전>
오늘 소개할 웹툰 <유미의세포들>(2015~2020)은 아마도 네이버 웹툰 플랫폼에서 가장 많이 읽힌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합니다. 연재 기간 동안에 이미 누적 조회수 35억뷰를 훌쩍 넘어섰다고 하는데요, 2021년에는 드라마로, 2024년에는 영화로도 영상화되어 역시 꽤 좋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살아가면서 왠지 한 번쯤은 실제로 마주쳤을 법한 평범한 이름을 가진 회사원 ‘김유미’입니다. 주인공 유미의 사랑 이야기가 주 서사인데요, 유미가 다양한 남주들을 만나면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설렘이 있는 로맨스 드라마입니다.
이동건 작가는 유미를 통해 연애 때문에 찌질해지고, 슬퍼지고,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져서 갈등하기도 하는 순간들을 아주 솔직하고 세심하게 그려내어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얻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연애를 하면서 나도 몰랐던 내 밑바닥을 낱낱이 알게 되는 것 같은 순간들이 있게 마련이잖아요. 저 역시도 그런 순간들이 떠올라 작품에 몰입하면서 봤던 것 같아요.
특히 이 작품에서 주인공 유미가 연애를 하면서 느끼게 되는 솔직한 감정들이 잘 드러나는 까닭은, 유미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그녀의 ‘뇌세포’ 캐릭터들의 활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유미가 아니라 이 유미의 뇌세포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동건 작가 특유의 동글동글한 삼등신 캐릭터 디자인으로 표현된 이 귀여미들이 바로 유미의 뇌세포들입니다. 이 녀석들은 유미가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 벌어지는 모든 일들- 기분이 변화할 때, 어떤 것을 결정할 때, 그리고 음식을 먹거나 잠에 드는 본능적이고 생리적인 활동의 모든 순간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마치 ‘아바타 소개팅’처럼, 눈 앞의 상대를 마주한 유미는 이 머릿속 세포들이 안내하고 이끄는 대로 몸을 움직이고 판단하게 됩니다.
첫 번째 남친인 구웅과 이별한 상황을 봅시다. 이때 유미는 큰 좌절에 휩싸이지만 ‘이성세포’의 활약에 따라 겨우겨우 정신줄을 붙잡고 직장에서 집중하여 일을 처리해 나갑니다. 낮동안 고생한 이성세포가 자러간 늦은 밤은 ‘감성세포’의 시간입니다. 감성세포는 잠못드는 유미에게 울적한 기분이 들게 해서 지나간 사랑의 추억을 곱씹게 만들어주기도 하죠. 평소 세포마을에 돌아다니는 ‘출출세포’가 난동을 부리면 유미가 급격한 배고픔을 느끼게 되는데요, 이별의 충격으로 출출세포가 가출하게 되니 유미는 평소보다 입맛이 없어져 버리기도 합니다.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다른 세포들과는 달리 상의만 입고 돌아다니는 이 녀석은 유미의 ‘응큼세포’입니다. 연애를 시작한 유미가 상대와 좀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것도 본능에 충실하도록 이끄는(?) ‘응큼세포’가 있기 때문이죠. (드라마에서는 안영미 씨의 목소리 연기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성세포나 예절세포가 항상 이 응큼세포를 견제하고 예의주시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적습니다.
이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세포들이 유미의 평소 일상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마치 한 마리의 백조가 우아하게 호수 위를 미끄러질 때 실상 물 밑에서 쉴 새 없이 두 발로 물장구를 쳐 대듯이, 모든 세포들은 유미가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해 보일 때일지라도 정신없이 뇌의 곳곳을 뛰어다니면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같은 해 개봉한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2015)과 종종 비교되곤 합니다.
<인사이드 아웃> 역시 주인공 라일리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벌어지는 일의 원인과 그 때의 심리를, 의인화된 ‘감정’ 캐릭터들을 통해 섬세하게 묘사하는 작품입니다. ‘주인공의 정신세계를 의인화한다’라는 핵심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두 작품이 하필이면 비슷한 시기에 나와서, 표절이냐 아니냐의 말도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동건 작가도 이 점을 의식해서 인터뷰를 하기도 했는데요, 작가는 “<인사이드 아웃>은 ‘감정’을 의인화한 것이고, <유미의세포들>은 ‘욕망’을 의인화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비슷한 시기 비슷한 방법으로 인간의 마음 구조를 그려낸 작품이 나왔다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는 보편적으로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인간의 마음세계를 시각화하고 인간을 좀 더 잘 이해해보려는 욕망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함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K-컬쳐”라는 좀 더 특수한 문화적 맥락에서 <유미의세포들>의 창작 배경을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왜 <유미의세포들>은 <인사이드아웃>같은 추상적인 감정 캐릭터가 아니라 ‘뇌세포’로 유미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을까요?
기억나는 분들 있을지 모르겠지만, <유미의세포들>이 나오기 십여년 전, 2000년대 중반 경부터 한국에서는 ‘뇌구조’ 그림이 한참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뇌구조 그림은 어떤 인물의 캐릭터를 묘사하기 위한 방식으로, 사람의 옆얼굴 도상을 그려서 뇌 부분에 빈칸을 그리고 그 안에 그 인물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그려넣은 것입니다.
이 뇌구조 도식은 드라마나 영화의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연예인의 캐릭터를 해석하는 데에도 사용되면서 한국 대중문화 씬에서는 보편화된 밈으로 퍼졌습니다. 각종 드라마와 케이팝 팬덤도 등장인물이나 아티스트의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해 이 뇌구조 도식을 엄청나게 활용하기도 했고요. 정치인이나 운동선수의 캐릭터화 작업에도 이 도식들이 사용되기도 하며, 2020년대 초까지도 꾸준히 활용되는 밈이었습니다. MBTI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 유행하기 전까지, 많은 사람들은 이 뇌구조 그림을 이용해 자신의 캐릭터성을 표현하고 드러내곤 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관장하는 중요한 장소가 ‘뇌’라는 점은 현대 동서양에서 보편화된 인식이긴 합니다만, 특히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캐릭터를 ‘뇌세포’라고 분명하게 호명하고 있다는 점은 <인사이드아웃>과는 다른 <유미의세포들>만이 가진 독특함이라 하겠습니다. 그것은 한국 대중문화 장에서 ‘뇌구조 그림’의 유행 시기를 살아온 작가, 독자들이 있기에 만들어질 수 있는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나 고전문학자의 시선에서 <유미의세포들>이 보여주는 '마음의 그림'은 좀 더 오래된 연원을 가집니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시각화, 의인화해서 표현하는 방식은 한국사람들의 DNA에 아주 오랜 시간동안 각인된 것입니다. 조선시대 초, 동강 김우옹(1540~1603)은 <천군전>이라는 소설을 하나 지었습니다. 한 나라에 닥친 전쟁과 평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유인씨(有人氏)’라는 나라의 임금 ‘천군(天君)’에게는 ‘경(공경)’과 ‘의(의리)’라는 뛰어난 재상이 있었고, 이
들 덕에 나라는 화평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천군이 경과 의의 말을 듣지 않고 쾌락만을 일삼게 된 틈을 타, 공자 ‘해(懈: 게으름)’와 ‘오(傲: 거만함)’가 반역을 일으켜 나라를 점령하게 됩니다. 잘못을 깨달은 천군은 대장군 극기(克己)를 선봉에 세워 군사를 정비하고, 극기가 혈전 끝에 적을 무너뜨리고 다시 세상은 평화로워집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어렵지요? 이 이름이 모두 언어유희를 활용했다는 사실을 알면 이 작품은 단순한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그린 이야기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천군’은 예로부터 성리학에서 인간의 ‘마음’을 뜻하는 다른 말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늘 '공경'과 '의리'를 추구해야 하는데, 자칫 방심하게 되면, '게으름'과 '거만함' 때문에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이야기가 바로 <천군전>인 것입니다. 망가진 마음을 고치는 방법은 ‘극기’, 즉 쾌락을 좇는 내 마음을 스스로 이겨내는 것 밖에 없습니다.
참고로 동강 김우옹은 남명 조식의 사위였는데, 장인어른이 그린 <신명사도(神明舍圖)>라는 그림을 보고 이 소설을 지었다고 합니다. 신명사도의 뜻을 풀이하자면 ‘마음의 집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이 그림이 성리학자들이 상상하는 인간의 마음의 지도라 하겠습니다. 신명사라는 집 안에 마음나라의 임금 '태일군'이 들어가 있고, 그 앞에 내무대신 '경'이 있습니다. 마음나라는 두터운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성벽 밖에는 귀신이나 몽매같은 삿된 것들이 도사리고 있어서 대장군들이 항상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현대 대한민국의 이동건 작가가 인간의 마음을 다양한 뇌세포들이 오손도손 모여사는 마을로 그려낸 것처럼, 앞서 조선시대 조식과 김우옹이라는 작가는 인간의 마음을 임금과 신하들이 모여 사는 ‘국가’로 상상한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을 ‘천군’이라는 임금이 다스리는 나라로 상상하는 소설들이 조선왕조 500년간 지속적으로 창작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장르의 소설을 ‘천군소설’또는 '심성소설'이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창작된 적 없는 한국의 독특한 장르입니다. 아마도 우리의 DNA안에 이렇게 인간의 마음을 상상하는 유전자가 있는 걸까요.
또 하나 재밌는 점은, <천군전>에서 인간의 정신세계는 ‘흉해(胸海)’, 즉 가슴팍 부근에 위치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심장'이 인간의 정신세계와 연관되어 있다는 믿음이 반영된 것입니다. 이것은 <유미의세포들>에서 유미의 정신세계가 ‘뇌’에 위치한 것과 분명 다릅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간의 뇌가 정신적인 활동을 관장한다고 믿기 때문에 ‘머리’ 부분에 우리의 이성과 정신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조선시대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조선시대 사람들은 인간의 정신은 ‘뇌’가 아니라 ‘심장’의 기능이라 생각했습니다. 더 오래전부터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뇌는 사고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이 아니라, 액체 형태로 존재하는 물질 정도로만 여겨져 왔기 때문입니다. 뇌가 아니라 심장이 중요한 판단과 심리적 현상을 주관한다는 인식은 『황제내경』이나 『동의보감』과 같은 동아시아의 고의학서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상상하는 방식이 시대와 문화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것입니다. AI 기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현 상황을 보면, 아마도 인간의 마음은 기계장치로 이해되는 날이 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더 먼 미래에, 한국인이 상상하는 인간의 마음은 또 어떤 구조일지 궁금하네요.
글 이채은
웹툰, 웹소설로 연구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고전문학자. 연암 박지원의 소설로 석사를, 판소리 <춘향가>로 박사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