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수궁가>
장담컨대 한국인이라면 ‘범’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귓가에 맴도는 노래가 하나 있을 것이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이제는 이날치밴드의 노래 ‘범 내려온다’로 더 익숙한 <수궁가>의 한 대목이다. ‘범 내려온다’의 퍼포먼스 영상이 유튜브에서 유례없는 조회 수를 기록하게 되면서 대체 왜 범이 산 속에서 내려오게 됐는지 그 연유 또한 소상히 알려지게 되었다.
별주부가 토끼를 보고 ‘토생원’하고 부르기 위해 입을 뗐는데, 육지로 힘겹게 기어 올라오며 아래턱이 뻣뻣해진 나머지 ‘호생원’이라 잘못 말해버린 것이다. 호랑이는 자기를 ‘생원’이라 부르는 이가 처음이라 반가워하며 내려오고, 당황한 별주부는 얼어붙고 만다. 이 장면을 재미있게 노래한 ‘범 내려온다’ 덕분에 이제 호랑이는 <수궁가>의 주인공인 토끼나 자라보다 더 유명인사가 되었다. 성스럽거나 두려운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토끼의 언변에 홀딱 넘어가서 상좌 자리를 내어주기도 하고, 별주부와 기싸움을 벌이다 급소를 물려 기가 푹 꺾이기도 하는 어수룩한 모습으로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범 내려온다’에 열광하듯이 옛 사람들에게도 이 ‘범 내려오는 대목’은 인기가 높았던 것 같다. 경상대본 <별춘향전>에서는 변사또가 새로 부임한 관아에서 잔치를 열어 판소리 명창들을 초청해 소리를 듣고 노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여기에 명창 송흥록이 ‘범 내려오는 대목’을 불렀다는 내용과 그 사설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다.
여기서 누군가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으리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별주부와 토끼의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봤을 텐데, 왜 우리는 그동안 호랑이를 몰랐을까? 그 답은 아마도 <수궁가>의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변주되어 왔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수궁가>는 소설로 쓰인 것만 120여 종이며, 창본을 포함하면 그 수를 훌쩍 넘는다. <별주부전>, <토끼전>, <토생전>, <토별가> 등 다양한 이름만큼이나 이야기 내용도 각양각색이다. ‘범 내려오는 대목’은 창본에는 대체로 포함되어 있지만 소설에서는 생략된 경우가 많다. 또 각각의 작품마다 용왕이나 별주부, 토끼라는 인물들의 성격도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슈퍼스타가 된 호랑이는 시작일 뿐이다. <수궁가>의 무궁무진한 매력은 아직 절반도 다 알려지지 못했다. 그럼 이제,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수궁가의 낯선 얼굴들을 소개한다.
용왕이 앓았다는 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나온 바가 없다. 병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온갖 약을 다 써도 효과가 없는 것이다. 그로 인해 결국 토끼의 간이라는 수궁에서는 구할 수 없는 귀한 약재까지 찾아 나서게 된 것이리라.
대다수 <수궁가>에서 등장하는 남해 용왕 ‘광리왕’은 영덕전을 건설하고 다른 바다의 용왕들을 불러 낙성연을 벌인 이후 우연히 득병하게 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가람본 <토긔젼>과 같은 소수 이본에서는 북해 용왕인 ‘광택왕’이 매일 주색을 즐기다가 득병했다고 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술병 난 용왕이라니, 용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것이다. 광택왕은 토끼가 육지로 도망친 이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거듭 산신에게 이문을 보내 토끼를 다시 생포하려 들기도 한다.
그런데 본디 <수궁가>의 서사에서 병을 얻는 것은 용왕이 아니라 그의 딸 용녀였다. <수궁가> 이야기의 전신이 실린 『삼국유사』 <구토지설>에는 용녀의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 간이 필요하다고 나와 있다. 그러다 판소리 <수궁가>에 이르러 용왕이 득병하게 되자 이는 수궁의 운명을 좌우하는 심각한 ‘정치적 문제’가 된다. 한 나라를 좌우하는 왕이 아프자 신하들 간에 갈등의 내용과 폭도 다양해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육지로 나가 토끼 간을 구해올 신하가 충신으로 그려질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수궁가>에서는 자라와 토끼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그들의 부인들도 강렬한 서사를 가진다.
가람본 <별토가>에서 자라는 간을 자유롭게 넣고 뺄 수 있다는 토끼의 거짓말을 믿지 말라며 눈물로 충언하다가 왕배탕이 될 위기에 처한다. 이제 죽을 위기에 처한 것은 토끼가 아니라 자라가 된다. 자라가 토끼에게 제발 자신을 살려 달라 애원하고, 이 때 영악한 토끼는 자라 부인과 동침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건다.
그 후의 전개는 오늘날 막장드라마 같은 파격적 이야기로 이어진다. 토끼는 자라 부인과 끝내 동침하고, 이때 ‘사랑가’를 불러주기도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토끼와 밤을 보낸 자라 부인이 토끼를 잊지 못하고 상사병이 나 죽어버린 것이다. 자라 부인이 죽자, 수궁에서는 그녀의 죽음이 나라에 대한 충심으로 육지로 떠난 남편을 잊지 못해서라고 생각하고 그 절행을 칭송한다.
한편 멀쩡한 남편을 하루아침에 잃을 뻔한 토끼 부인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연세대본 <별부주젼> 에 등장하는 토끼 부인은 지아비의 생명을 빼앗으려 했던 별주부에게 분노하며 그를 거칠게 모욕하고 수치심을 주어 나름의 복수를 꾀한다. 토끼 부인은 별주부의 뺨을 때리고 욕설을 퍼붓는데, 이 수모에 분을 참지 못한 별주부가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서 자결해버린다. 한편 심정순 창본 <수궁가>에서의 토끼 부인은 말없이 사라졌다 돌아온 남편이 계집질을 하고 온 것이 아닐까 의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서, 그 복합적인 심정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수궁가>의 결론은 토끼가 육지로 돌아온 후 별주부에게 한바탕 욕설을 퍼붓고 도망가 버리는 것일 테다. 이때 토끼가 자라에게 엉터리 약재를 알려주고 가버려서 결국 용왕이 죽고 아들 용자가 즉위하는 결론으로 귀결 되기도 한다.
이쯤 되면 별주부가 측은해보이기도 한데, 그래서 나손본 <토별산슈록> 의 경우에는 토끼를 놓치고 허망함에 빠져있는 별주부에게 관음보살이나 선관이 나타나 감로수를 줘서 용왕을 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거친 결말도 있다. 고려대본 <별주부젼>에서는 별주부가 토끼의 배에 난 종기를 치료해주겠다고 속여 토끼의 배꼽을 물어 죽이고, 그 배를 갈라 끝내 간을 꺼내 다시 바다로 돌아가 용왕의 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런데 한문본 소설들은 이와는 좀 다른 결말을 그린다. 한문본 소설인 고려대본 <토공전> 에서는 토끼가 도망가 버리자 용왕이 옥황상제에게 표문을 올려 송사를 벌이는 내용이 길게 부연되어 있는 것이다. 토끼와 자라가 서로를 속고 속인 사건이 본격적인 ‘법정다툼’으로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옥황상제는 토끼를 놓아주라고 판결한다.
<수궁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보면 곰곰이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다. 이 이야기에서 진짜 ‘나쁜 놈’은 누구인가? 진실을 가린 채 감언이설로 토끼를 꼬드기는 자라인가? 아니면 오직 벼슬과 미색에 눈이 멀어 수궁으로 자진 출두하는 어리석고 허영 가득한 토끼인가?
완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이들이 얽히고 설킨 이야기를 보며 우리는 마음이 꽤 복잡해진다.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창궐했던 시대를 겪어보면서, 치료법이 없는 병마와 맞닥뜨린 그 답답하고 막연한 심정에는 공감이 간다. 그러나 용왕은 자신의 병을 고치고자 신하에게 목숨을 건 희생을 강요한 셈이고, 수궁 대신들 역시 나라의 명운이 걸린 일에 그저 몸을 사리려고만 한다.
<수궁가>가 <춘향가>나 <심청가>와 다른 점은 이처럼 어떤 인물이라도 뚜렷하게 선과 악으로 구별짓기 힘들다는 것이다. 어떤 작중인물에게 더 이입하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다양하게 읽히고 또 새롭게 다시 쓰일 수 있다. 자라든 토끼든 용왕이든, 모두 현실적 욕망과 이상적 지향 사이에서 위태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같다. 이들의 삶이 날 것 그대로 포착된 덕분에 우리는 이들 모두를 이해할 기회를 얻는다.
끝없는 고난과 대결로 점철된 우리네 인생사는 실로 다양한 욕망이 서로 뗄 수 없는 덩굴처럼 얽혀있다. <수궁가>의 진정한 매력은 세상에 어떤 인물이나 사건이든 결코 납작하게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을 알려준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닐까. 복잡하고 다양한 우리네 삶을 폭넓게 담아내고 있는 <수궁가>가 긴 시간 노래된 이유는, 나와는 다른 낯선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보고, 또 그것을 이해하고 자비롭게 포용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인간에게 필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글은 2022년 국립극장 발간 《월간미르》2월호에 실린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글 이채은
웹툰, 웹소설로 연구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고전문학자. 연암 박지원의 소설로 석사를, 판소리 <춘향가>로 박사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