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소년 코난> 미야자키 하야오의 사상적 원형

by Chekh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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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보면 볼수록 -애초에 그가 젊었을 때 좌익 사상에 심취하기도 했었고 일본공산당 신문 연재 이력이 있기도 해서- (아나키즘적 생태)사회주의를 빼놓고, 그의 작품을 논한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사춘기 소녀의 성장 속에 연대하는 소규모 공동체와 노동의 가치를 아름답게 그려내던 <마녀 배달부 키키>와 구소련 해체 직후 개봉해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로 사는 편이 낫다고 일갈하며 실패한 이상에 대한 향수에 젖어있던 <붉은 돼지>를 떠올려 보자. 물론 본작을 인더스트리아와 하이하버로 표상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분법적 대립이라고 볼 수는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각색했다고는 해도 냉전 시대를 다룬 원작에서 인더스트리아의 모티프가 소련이기도 하고 실제로 본작의 인더스트리아는 상당 부분 현실의 사회주의 독재 국가와 닮아있으며 그러한 관점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를 바라보는 데 별로 적합한 렌즈가 아니다. 다만 하이하버는 여러모로 공산사회의 특징을 반영하여 미야자키 하야오가 꿈꾸던 이상적인 공동체의 형태를 띠고 있다.


<미래소년 코난>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처음 단독으로 감독을 맡은 작품답게 이후 그의 작품들의 청사진과도 같다. 미야자키 하야오 철학의 집대성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만화판에 비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애니메이션판은 물론이고 그의 지브리 애니메이션들은 대부분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순화되거나 은유적으로 돌려서 표현되는 데 반해 <미래소년 코난>은 아포칼립스적 세계관은 차치하더라도 몇몇 대사들은 꽤 계몽적이고 거대한 고철 덩어리가 되어버린 전쟁 무기들과 사막의 백골, 삼각탑 지하, 그리고 일본 패전 이후의 전쟁고아나 초기 식민지 원주민을 연상케 하는, 지무시가 섬의 식량을 담배와 술로 교환하는 장면 등은 전쟁의 상흔을 실제적으로 보여주며 -산업 혁명 시대 노동자의 비유인가 아니면 사회주의 독재 체제 국민의 비유인가와 상관없이- 유사 노예로 전락한 인더스트리아 제3 시민의 강제 노동과 그에 대비되는, 하이하버의 삶의 수단이자 목적이 되는 노동, 그리고 하이하버로 표상되는 생태주의적 코뮌에 대한 지향까지, 그의 이후 작품에서도 나타날 모티프들이 상당히 노골적으로 발현되어 있다. 물론 TVA라는 포맷 때문에 매 순간 심각하고 파괴적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만화판에 비할 바는 아니고 <루팡 3세>에서도 나타난 -코난의 초인적인 힘에서 기인해 현실성 측면에서 더 과장된- 활극적 움직임과 인물들의 낙관적 태도, 즉 OP가 시작될 때 전쟁으로 파괴된 정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듯한 감각과도 같은 펄떡거리는 생명력 때문에 전체적인 무드는 다른 TVA와 별다르지 않게 나타난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아도 따뜻하고 정겨운 공동체와 섬세한 인물관계, 풋풋하고 매력적인 인물들, 아름다운 노동과 풍경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막연한 감동에 젖게 된다. 얼마간 선전적이라는 느낌에도 불구하고 인더스트리아의 악당들이, 오로 패거리가, 다이스가 결국 미야자키 하야오의 공동체에 정착했던 것처럼 나도 기꺼이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