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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태진 Nov 21. 2024

물리학으로 바라보는 세상

프롤로그 - 물리학

필자가 중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물리학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엔트로피 (Entropy)'라는 책을 우연히 읽게 되면서부터다. 이 책에서는 엔트로피의 개념과 우주의 무질서도가 과거로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계속 증가하는 이론적 배경, 지구의 엔트로피 증가와 자원의 고갈 등의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머지않아 지구의 자원이 고갈되면 인류의 생존을 위해 대체 에너지 개발이 시급하며, 그 개발 시간을 벌려면 당장은 자원을 아껴 써야 한다는 것이 그 책의 주된 메시지였다. 그 책은 열역학 법칙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수학을 동원하지 않고, 개념적 설명만으로 어린 학생의 과학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물리학이라는 학문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계기였다. 그 당시 앞으로 물리학을 공부해야겠다는 당찬 결심을 세운 것을 보면 당시 어린 마음에 인류의 생존이 많이 걱정되었나 보다.

이를 계기로 뉴튼 역학과 전자기학, 상대성 이론까지 관련 도서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책들은 물리학 전공자들이 공부하는 교재가 아니었다. 일반인들을 위하여 알기 쉽게 풀어쓴 교양 도서에 가까웠다. 1980년대 교보문고 과학 서적 코너는 어린 나에게 보물섬이나 같았다.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을 뒤지면 궁금했던 개념, 이론, 수식까지 아주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다. 외국 과학자들의 번역서 위주로 진열된 과학 관련 도서들 만이 어린 학생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줄 유일한 자료였다. 그런 도서들을 탐독하면서 그 어린 중학생은 점점 물리학에 빠지게 되었다.


학교 교과 과정에서 배우는 물리학은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미 그 단계를 뛰어넘어 아주 황당한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한 때, 물체 운동과 운동의 본질에 대하여 매우 궁금해하였고,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었다. 세상은 연속적인가? 연속의 공간에서 이동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내가 걸어가며 위치를 옮긴다는 것은 혹시 중간에 내가 건너뛴 공간이 있는 것이 아닌가? 공간을 건너뛰지 않고 어떻게 부피가 0인 한 점에서 또 다른 한 점으로 이동할 수 있는가?

수학은 연속을 매우 쉽게 묘사하고 있다. 실수 (Real Number)는 3차원 공간을 꽉 채우고 있고 빈틈이 없다. 부피가 없는 한 점의 바로 옆에는 분명히 또 다른 한 점이 이웃하여 존재한다. 실수 집합에서 속이 꽉 차있음은 공리를 통하여 받아들여진다. 공리는 모든 사람들이 반대 없이 그렇다고 여기는 개념이고 이치이다. 함수에서는 엡실론-델타를 사용하여 연속을 정의하고 있다. 수학에서의 연속은 공리에 기반한다. 좌표 평면을 채우고 있는 유리수와 무리수의 대부분은 소수점 아래로 내려갈수록 무한히 반복되거나 반복되지 않는 무한한 수로 이루어져 있다. 원주율 π는 3.1415926...로 무한히 쪼개진다 (수가 발견된 이래 지금까지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숫자가 추가되고 있을 것이다). 극한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어느 값에 도달한다고 정의하지만, 실제로 그 값에 도달하는지는 증명되지 않았다. 그냥 '그 값에 도달했다고 치자' 정도이다.

수학에서 정의하는 연속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도 똑같이 적용될까? 지극히 이상적인 수학이라는 학문이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충분히 묘사할 수 있을까? 공간, 시간은 연속적일까?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느 누구도 이 질문에 대하여 올바른 질문이라 여기지 않을 것이다. 경험 상 우주는 연속인 것 같다. 지구도 달도 매끄러운 궤도로 공전하고 있고, 날아가는 새도 건너뛰는 공간 없이 연속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호기심 많은 중학생에게는 연속 공간에서의 물체의 이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마치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프레임 별로 조금씩 다른 동작을 그려 넣고, 빠른 속도로 돌려야 물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이치와 같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어디서도 듣지 못한 채 마음속 한 구석에 처박아 놓고 있었다.

연속 공간에서의 이동에 대한 해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양자역학에 대해 알게 되면서부터다. 양자 도약 (Quantum Jump)은 미시 세계에서 에너지는 불연속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주 만물을 이루고 있는 원자에서 그 안의 전자의 운동은 연속적이지 않다. 예측 가능하지 않고 확률적으로만 존재한다. 전자를 포함한 미세 입자의 이동이 불연속적이므로, 그것들로 이루어진 물체는 불연속적일 수밖에 없다. 불연속의 입자들이 모여 이루어진 물체가 연속적이라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실제로 이 불연속이 물체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뭐, 그렇다고 이 분야를 파고들어 물리학 이론을 만들 만들 생각도, 그럴 능력도 없다. 이렇게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나름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면 그뿐이다. 진실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지만, 물리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재미있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의미가 있다.


우주의 섭리를 알고 싶어 했던 어린 학생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물리학 대신 기계공학을 선택하였고, 오랜 세월 동안 기계를 설계하고 제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갔으며, 어느덧 은퇴할 나이에 접어들었다. 기계공학은 뉴튼역학을 기반으로 한 응용학문이다. 정역학(Statics), 고체역학(Solid Mechanics), 동역학(Dynamics), 열역학(Thermodynamics), 유체역학(Fluid Dynamics), 열전달(Heat Transfer) 등 물리학을 배우기는 하지만, 어떤 현상의 근본 원인보다는 어떻게 응용하여 공학적 문제를 해결하는가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세상이 연속적인가, 불연속적인가 하는 문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가정을 꾸리고, 직장에 다니고, 아이를 돌보는 일련의 인생살이를 하다 보니 어렸을 적 궁금해하던 것들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그러나, 바쁘고 고단한 사회생활이 마감되어 가는 즈음에 세상을 물리학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갈망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나에게 있어서 물리학은 유희에 가깝다. 전공자도 아니며, 학계의 트렌드를 따라갈 만큼 깊이 공부하지도 못했다. 단지 지금보다 조금 더 깊이 세상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 궁금증은 인간관계가 얽혀 있는 사회적 현상이 아니라, 우주와 사물 그 자체로 향해 있었다.


이 책에서는 고전역학 중 뉴튼 역학과 열역학을 다룰 것이고, 힘과 가속도의 관계에서 특히 원운동에 대하여 파고들 것이다. 빛의 성질로부터 발전되어 온 특수상대성이론을 맛볼 것이고, 질량이 에너지라는 유명한 식 E = mc²를 유도해 볼 것이다. 원자의 구조 모형과 전자의 성질을 분석해 보며 양자역학이라는 기이한 학문에도 잠깐 발을 들여놓을 것이다.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왜 그런지 물리학적 관점에서 고찰해 보는 것은 매우 재미있다. 두 발 자전거가 왜 넘어지지 않는지, 질량이 다른 물체가 왜 동시에 낙하하는지, 인공위성이 추가 동력이 없는 상태에서 왜 지구 상공에 떠 있을 수 있는지, 가스가 퍼지면 왜 다시 발원지로 모일 수 없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신이 날까. 또, 빛의 실체가 무엇이고 원자는 어떻게 생겼는지, 전기와 자기는 어떤 관계인지, 자석은 왜 다른 극끼리 서로 끌어당기는지 근원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이와 같은 궁금증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 아내는 불문학을 전공하였다. 내가 그동안 써내려 온 원고를 잠깐 읽게 하였더니 예상치도 못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자기는 물리학에 전혀 관심이 없어 글을 읽어 내려가는 것 자체가 고역이라고 했다. 그 이후로 아내에게 이 세계를 물리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세상을 물리학적으로 이해하고 싶어 하는 나 같은 사람들도 분명 많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이 글은 모두 그런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


물리학을 공부한 사람은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한다. 아니, 이 명제는 비단 물리학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학문을 깊이 공부한 사람에게는 누구나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어려서부터 습관이 되어온 물리학적, 논리적 생각이 엔지니어로서 사회생활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것도 같다. 신제품을 개발하고 설계할 때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어려서부터 가져온 물리학에 대한 관심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회사 연구소에 근무할 동안 내가 설계한 제품으로 엔지니어라면 한 번쯤 받고 싶어 하는 IR52 장영실상을 받았다). 어렸을 적 우주와 사물의 본질을 알기 위해, 나만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그 방면으로 많은 책을 읽었고, 지금도 소설이나 인문 서적보다는 과학 서적에 손이 먼저 간다. 학문적 성과를 내기 위하여, 또는 인류에 공헌하기 위해 물리학을 공부했던 것이 아니다. 내가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책을 읽었던 것처럼 지금도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관련 서적 사이를 배회하리라 믿는다. 이 책은 그러한 학생들을 위한 또 하나의 옵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학생들 중에는 정말로 나중에 물리학을 전공하게 될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일반인으로서 물리학적 호기심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물리학도로서 큰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후자의 경우에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남보다 조금 더 세상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데 이 책이 역할을 하기를 바랄 뿐이다.

수학은 물리학의 언어다. 모든 물리학 이론은 수학적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물리학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수학적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의 목적이 체계적 전공 교육이 아니듯이 여기서 언급되는 모든 이론을 수학적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단지 중고등학교 과정의 기초 수학만 알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의 눈높이를 맞추었다. 수학을 완전히 배제한 설명보다 조금 더 이해의 정도가 깊어지는 것을 경험하기 바라는 취지이다.  


모쪼록 세상을 이해하는 즐거움을 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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