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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May 16. 2024

기분으로 지불받는 사회생활 중

   현재의 업무 흐름 상, 나는 해달라는 입장이라기보다는 일을 해줘야 하는 입장이다. 문제는 상호 간의 예의는 전혀 없고(서로 벌레 보듯 하는 훈훈한 관계라서) 절차를 지켜야 하는 기본 단계에서도 아주 마음대로 하는 진상들에게 일을 해줘야 한다는 점이다.


   진상들끼리도 사이가 좋지 않아서 최근에는 사내에 흉흉하게 도는 이이제이적 상황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분쟁의 수준도 굉장히 낮아서 진상 A가 이것(복합기에 A4를 채워 넣어라 급의 별 일도 아님) 좀 하라고 하면 진상 B는 내가 왜?라고 맞받아치면서 싸움 소리만 자주 울려 퍼지는 것이다.


   물론 진상 B가 같은 팀의 직급 높은 자의 간단한 지시도 듣지 않는 꼴을 본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생각을 해봤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은 결국 "하지 않는다"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일이 진행되어야 하는데 멈춰버리면 바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제일 내뱉기 어려운 말 중 하나로 나는 "이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이 일 하기 싫다"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에는 아주 내부에서 공공연하게 저런 소리를 하고 싸움이 나고 있다. 물론 그 되지도 않는 거부권의 소유자는 직급 대비 나이로서는 고령(?)이나 계속 진급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 명분 없는 거부권의 대가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내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는 마뜩하지 않은 진행에 대해 해 주더라도 절대 "공짜"로 해주고 있지는 않다. 공짜로 해준다면 아주 마음대로 엉망진창으로 해도 페널티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상들은 이렇게(엉망으로) 해도 되는구나? 하면서 다음에 더 엉망으로 하면 했지 원래의 방법(정상적인 방법)으로 진행하지 않는다. 개차반으로 해놓는 일을 수습하는 것도 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나며 그렇다고 안 해 줄 수도 없으니 철저하게 업무를 진행하기는 한다. 대신 메일을 보내는 것이다.


   어느 정도 언어적 표현으로는 절대 선을 넘지 않지만 내용 상으로는 너는 일을 아주 개차반으로 진행했다는 것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보내준다. 물론 진상들이니 만큼 그쪽에서 보통 답장은 없으니 공식적으로는 무시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감사를 바라는 것도 아니요(진상들은 남의 노고에 원래부터 감사하지 않는다) 진정한 피드백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메일이든 말이든 망가진 라디오들을 상대하는 기분이 들어 어느 시점부터는 아예 시도도 하지 않는다). 진상의 기분이 상하면 그걸로 내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다.


   잦은 이이제이 이슈에서 내가 확인한 것은 내 이웃의 진상들은 저런 것에 대해 면역은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면역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수취할 수 있는 대가라고 할 수 없으니 당장에 그만두었을 것이지만 최근의 싸움질을 보고 있자면 이것의 효과는 탁월하다고 추정된다. 답장이 오진 않지만 답장으로 발광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보이지 않게 내상을 입히면 충분한 것이 아니겠는가?


   미친 사람들이야 충분히 봐왔고 나 자신도 그런 싸움 끝에 비슷해졌으니 내 이야기는 언제나 피카레스크가 돼버리지만, 철저한 명분과 사전 준비가 없이 무작정 긁는 메일을 보내지는 않으니 괜찮다. 엉망진창으로 마음대로 하는 자들을 무조건적으로 받아주는 일은 못하겠다. 엉망진창으로 내던져도 일은 해주겠지만, 뱃속까지 편하게 해주지는 않겠다. 위와 같은 마음으로 대하는 중이다.


   피드백으로 태도를 걸고넘어지는 것은 주기적으로 들리지만 글쎄 개판으로 일을 던지는 일을 하지 않으면 되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다니는 곳은 아주 엉망이라서 뭐 위의 진상 간의 웅장한 대결에도 별다른 조치도 전혀 없고 하다. 사람은 간사하게 다 자기 누울 자리는 보고 눕는 법이니까 나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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