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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Oct 23. 2018

방콕에서 꼭 가야 할 곳

#방콕일기 4. 방콕의 작은 정글, 방끄라짜오


방콕의 푸른 섬 방끄라짜오


우연히 본 한 편의 여행기로 방끄라짜오에 매혹된 나는 이곳은 꼭 가야 한다고 외쳤다. 방끄라짜오는 태국 근교에 있는 섬으로 배를 타고 짜오프라야 강을 건너서 갈 수 있는 곳이다. 흔히들 방끄라짜오를 '방콕의 폐' '방콕의 녹지(green lung)'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그만큼 온 섬이 나무로 뒤덮여있다. 어느 곳을 가든 사방이 나무로 가득한 곳. 어떤 이는 이곳을 정글이라 하던데 그 말이 딱이었다. 방끄라짜오는 방콕 속 작은 정글이었다.



어제보다 일찍 일어나서 움직이고자 했으나 어제랑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비슷한 조식을 먹고 비슷한 시간에 호텔에서 나왔다. 그리고 어제와는 다르게 타이밍이 맞아 호텔 툭툭을 타고 나와, 어제와는 반대 방향으로 BTS를 탔다.



방끄라짜오는 근래 들어 한국인들에게 슬슬 알려지고 있는 것 같으나 작년 겨울, 내가 갈 때만 해도 검색 결과가 두 페이지도 채 안될 만큼 숨겨진 곳이었다. 따라서 방콕 시내에서 방끄라짜오로 가는 방법이 자세히 나와있는 글이 없었다. 그래서 관련된 모든 글을 보며 구글 지도를 켠 채 방끄라짜오 가는 방법을 찾아냈다. 여러 방법이 있겠으나 우리가 찾은 방법은 BTS 방나역에서 하차 후 방나피어(선착장)로 이동, 그곳에서 수상버스를 타면 도착하는 루트였다. 큰 줄기는 짜 놓았지만 세세한 줄기는 가서 부딪혀보는 수밖에 없었다.



방콕 여행기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방나역에서 하차, 정확한 출구는 알 수 없어 구글 지도를 켜고 방나피어와 가까운 적당한 곳으로 나왔다. 역에서 방나피어까지 걸어갈까 툭툭을 탈까 고민하다가 30분 거리라 걸어가 보기로 했다. 중간에 구글 지도가 도보로 이동할 수 없는 길을 알려주어 갔던 길을 돌아 나오기도 했지만, 그것을 핑계로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잠시 쉬다 나올 수 있어 좋았다. (두 번의 방콕 여행 중 방끄라짜오에 세 번이나 갔다 온 지금은 방나역에서 방나피어로 갈 때는 무조건 택시를 추천한다.)



우리처럼 막다른 길로 가지 않으려면? 방나역에서 지도를 따라가다가 '사람이 갈 길이 더 없을 것 같은데'라던가 '곧 길이 끝나겠구나'라는 느낌이 오는 길이 나타나면 왼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 느낌은 무조건 온다. 길의 생김새가 이 느낌이 올 수밖에 없다. 아무튼 고개를 돌리면 눈앞에 사원이 나타나는데 그 사원으로 들어가야 한다. 들어가서 (들어간 순간의 나를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나있는 샛길로 빠져나와 다시 구글 지도를 켜고 걷는다.



사원을 지나고 아주 작은 시장도 지나면 비교적 큰길이 나온다. 한 번 더 왼쪽으로 꺾어서 쭉 직진. 이때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길은 딱 하나- 직진뿐이다. 끝없이 늘어선 길을 따라 한없이 걷기. 걷는 걸 좋아하는 나도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길에 엄청 지쳤다.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선착장에 도착한다. 강이 보이는데 얼마나 기쁘던지! 선착장에서 5분 정도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방끄라짜오에 도착한다. 뱃삯은 한 사람당 4바트로 이때까지만 해도 하차할 때 냈었는데, 2018년 7월에 갔을 때는 먼저 내고 탔다.


커다란 금불상이 우리를 환영해주는 여기는 방끄라짜오!


너무나도 지친 상태라 무념무상으로 강을 건넜다. 아무 생각 없이 강과 그 뒤의 푸른 숲을 구경하며 멍하니 있었다. P는 이때 이 순간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방콕 자전거 여행의 필수 코스


방콕 여행기를 보다가 어두워진 방콕의 도심을 자전거로 타고 달리는 투어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여행전 급하게 자전거를 배우고 연습을 시작했다. 드디어 도착한 방콕! 원래대로라면 삼삼오오 모여 가이드를 따라 방콕의 사원과 시내를 달렸어야 했지만 여행을 코앞에 두고 이 자전거 투어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나도 자전거를 탈 수 있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쌩쌩 달릴 만큼 유연하게 타지는 못했기 때문에 안전상의 이유로 포기했다. 대신 방콕의 시내보다 유동인구와 자동차가 훨씬 적어 보이던 방끄라짜오에서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찾아보니 방끄라짜오를 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로 자전거를 들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본인들의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했다. 방콕 자전거 여행의 필수 코스라고 할까.




여행 중 번외편 #자전거


방콕으로 떠나기 전 추석 연휴에 P에게 자전거를 배웠다. 어렸을 때 나는 자전거보다 롤러브레이드 타는 걸 좋아해서 동생이 자전거를 탈 동안 (그렇다고 동생이 롤러브레이드를 안 탄 것도 아니다) 나는 그 옆에서 롤러브레이드만 탔다. 자전거 타기를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네 발을 타자니 시시하고, 두 발을 타자니 넘어질 것 같아 금방 포기했다. 그래서 여태껏 두 발 자전거를 제대로 타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보조바퀴를 단 네발 자전거를 타는 것도 우스워서 (심지어 따릉이나 자전거 대여소에도 성인용 네발 자전거는 없다) 그냥 안 타고 말지란 생각에 자전거를 멀리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이국적인 도시를, 그것도 별이 떠있는 밤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투어라니.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함께 방콕으로 떠나는 P와 자전거 특훈을 했다. 모두가 포기했던 나를, 나와 P는 이겨냈다. 넘어지는 것에 극도의 공포감을 가지고 있어서 발 한 번 떼는 게 쉽지 않았었는데 여행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니 (나는 여행에 반 이상 미쳐있다) 절로 페달을 구르게 되더라. 연휴가 끝난 후에도 틈만 나면 자전거를 빌려 타면서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비록 내가 생각했던 그 투어는 아니지만 방콕에서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를 배우길 잘했다고 생각한 것이 이 이후 내 여행에서 자전거는 빠질 수 없는 하나의 재미가 되었다. 이후 한번 더 떠난 방콕 여행에서도 아유타야와 방끄라짜오를 자전거로 돌았고, 오키나와에서도 자전거를 탔다. 심지어 오키나와에서는 국도를 따라 달리기도 했다. 이제는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지에서 자전거를 탈만한 곳이 있는지 그리고 대여할만한 곳이 있는지를 찾는 게 하나의 버릇이 되었다. 걷기에 지쳤을 때, 걷기에 너무 멀 때, 여행지를 피부로 더 가까이서 느끼고 싶을 때, 나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건 오직 자전거뿐이다.





수상버스에서 내리면 양옆으로 자전거 대여소가 늘어서 있다. 우리는 오른쪽에 있는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리고 폭풍 라이딩을 시작했다. 다른 이의 여행기 속 사진에서처럼 차나 걸어 다니는 사람보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막힘없이 쑥쑥 달리는 길이 너무 좋고, 지금 이 상황이 행복해서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계속 "좋다, 좋다"라고 말했다. 자전거 여행자들이 오는 곳이라더니 자전거 도로도 잘되어 있더라.



왜 다들 방끄라짜오를 방콕의 폐라고 하는지 직접 오면 그 이유를 더 잘 알 수 있다. 도로 양옆으로 쭉쭉 서있는 푸른 나무들. 그 사이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기분이 참 좋았다.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더니 이윽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근처에 카페가 여러 곳 있어서 그중 자전거를 세울 수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러 비를 피했다. (방끄라짜오 대부분의 식당과 카페에는 자전거를 세워둘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땡모반에 꽂힌 나는 여기서도 땡모반. 어제 짜뚜짝 시장에서 마신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비가 그치고 어느 정도 쉬다가 다시 자전거를 탔다. 무작정 앞만 보고 가다 보니 길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이 우리 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여행자들이 다 빠지고 현지인들만 남았다. 아무래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겁이 나서 다른 길이 나오자마자 바로 꺾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건 우리의 잘못된 선택의 시작이었다. 처음엔 (단순하게도) 새로 들어선 길이 예뻐서 자전거를 세워두고 사진을 찍을 만큼 마냥 좋았다. 그러나 이어서 달리다 보니 한 번은 길이 끝나 있었고, 또 다른 한 번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울퉁불퉁 나무로 된 도로가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무서웠던 상황은 우리 뒤로 내려치는 천둥번개를 피해 도망쳐 나왔는데, 도망쳐 나온 곳이 커다란 개 몇 마리가 있는 막다른 길이었을 때. 개들이 얼마나 사납게 짖고 달려들던지 P랑 나랑 둘 다 벌벌 떨며 나왔다. 그렇게 겨우 나왔건만 또 다른 개 한 무리가 보였을 땐 진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개들 때문에 심신이 다 지쳐서 이제 밥이나 먹고 돌아가야지 하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그래 향하려고 했다. 우리는 선착장으로 향한다고 향했는데 한참을 달려도 개미지옥 같은 골목만 돌고 큰길은 나오지 않았다. 또다시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구글 지도를 켜면 되는데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믿을 건 우리의 다리뿐. 무식하게 샛길이 나오면 꺾고 또 꺾는 식으로 달렸다. 그러다 우리가 지나온 아는 길이 나오는 순간 소리쳤다.


"살았다!"



그런데 참 우습지. 저렇게 무서운 순간을 지났음에도 방끄라짜오가 싫지 않았다. 되려 저 순간이 곧 추억이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이 여행의 가장 큰 재미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방끄라짜오는 그런곳이었다. 더 이상 남은 힘이 없음에도 더 많은 곳을 가고 싶어 계속 페달을 돌리게 되는 곳.


2017년 11월 19일

캐논 EOS 6D




บางกะเจ้า I Bangkrachao I 방끄라짜오, 방크라차오, 방카차오 등 읽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나는 내 입에 익숙한 방끄라짜오로 표기한다.

방끄라짜오 여행일기는 #5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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