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집단 <독>의 연극 <팬데믹 플레이>의 Part.1의 공연을 본 지극히 개인적인 후기 시작합니다.
본 게시물에는 연극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으니 어떠한 스포일러도 원치 않으시는 분께서는 이 점 참고 바랍니다.
7월 3일, 대학로 씨어터쿰에서 공연한 <팬데믹 플레이>라는 공연을 관람했다. 총 9개의 에피소드로 평일에는 파트 1과 파트 2를 번갈아 공연하고 주말에는 모든 파트를 공연한다. 이 공연은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단절과 또 연결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선사한다. 내가 본 공연은 파트 1의, <사랑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극적 소고>, <우리는 만나지 않았다>, <파인 다이닝>, <새벽, 호모 마스쿠스> 이 4 작품이다.
첫 에피소드로는 유희경 작가의 <사랑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극적 소고>가 시작되며 극의 막을 올린다. 네 작품 중 가장 직관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연극의 첫 에피소드로서의 적격이라는 생각을 했다.
출판사에 다니는 진우와 ‘그녀’는각자 생각을 정리하러, 또 한숨을 돌리러 옥상 위로 올라왔다가 그 옥상에 되려 갇히게 된다. 치열한 그들의 일상 틈에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오아시스 같던 공간에 갇히게 된 것이다. 마치 업무도, 일상도 하지 못한 채 격리되어 갇혀버린 팬데믹 시절의 우리들처럼 말이다.
그 안에 갇힌 그들은 서로에게 정말 지독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게 된다. 진우의 외로움과 뼈저리게 머리를 울리는 고민들은 ‘그녀’에게는 그저 고통일 뿐이고, 아무와도 연결되지 못하는 진우는 고독감에 몸부림친다.
어쩌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은 물리적인 것보다 훨씬 초월적인 무언가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진우와 그녀는 한 공간에 둘만 남겨진 채 갇혔지만 그들은 전혀 함께하지 못한다. 오히려 문이 열리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던, 물리적으로 함께하지 않을 때가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러워 보인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무엇인가 있어야 우리는 사랑과 연결을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진우도 이 초월적인 무엇인가에 매달리는 사람처럼 보인다. 키우던 진솔이가 죽은 것보다, 더 이상 은솔과 포옹할 수 없는 것보다, 영화사의 그녀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앞서 말한 이 모든 물리적이고 실질적인 것보다 그저 자신이 아무도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검증 불가능하고 비가시적인 사실에 매달리는 진우처럼 말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로는 고재귀 작가의 <우리는 만나지 않았다>. 은솔이는 어쩌다 저런 놈들만 만났을까.....
첫 번째 에피소드 <사랑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극적 소고>에서 사람 간의 외로운 단절을 보여줬다면 두 번째 에피소드에선 단절된 듯 보이지만 미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의 관계를 그린다.
이 에피소드에서 느낀 건 ‘인간의 관계 절대적인 단절이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솔은 '우리는 만난 적 없었던 거야' 라며 진우를 모질게 끊어내고 그 자체를 부정하지만 정작 또 다른 이별 앞에 서자 자신 안의 진우를 끄집어낸다. 마치 한 입 베어서 끊어 먹었다고 생각한 피자의 치즈가 주욱 늘어나 입가에 달랑 매달려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은솔은 원망이든 죄책감이든, 어떤 형태로든 진우를 희미하게 자신 안에 남겨둔 것이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무섭다. 기억 상실증이 걸리지 않는 이상 한번 스쳐간 인연은 끊어낼 수 없다. 아니, 기억상실에 걸렸어도 마음 한편에는 상대를 향한 정서가 남아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은 더 외로워하고 더 단절되었다고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절대 끊기지는 않지만 더욱 풍족히 채울 수 없는 관계들이 늘어갈 때 공허함을 느끼는 것은 아닐는지.
정우와의 이별 앞에서 전 연인인 진우의 말들을 뱉어내고 있는 본인을 자각한 은솔은 너무 비참했을 것 같다. 지난 사랑에 대한 감정이 다시 복기되어서도, 자신이 또 다른 진우가 된 것 같아서도 아니다. 진우조차도 여기까지 희미하게 남아 이렇게 입안에 맴도는데, 정우는 오죽할까. 앞으로의 희미하게 연결된 단절 속에서 너무 외로울 나날들을 생각하면 너무 비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별은 너무 슬프다. 단절이 없는 단절을 겪는 모순이 너무 외롭다. 은솔이가 떠날 때 온갖 흐르는 치즈 같은 말을 하는 진우가 미웠다. 완벽한 이별이야말로 이별하는 상대방을 가장 위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절대적인 단절, 완벽한 이별 같은 건 없다. 그리고 어쩌면 은솔은 이 사실을 이미 알았고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진솔의 사진 앞에 무표정한 자신의 사진을 놓은 것처럼, 무덤덤하게.
세 번째 에피소드는 <파인다이닝>. 정말 실재하는 광경을 보는 것 같이 너무 생생했던 작품이다. 또 요즘 머릿속에 주로 고민하는 주제와도 맞닿아있어서 더 인상 깊게 봤다.
냉소적인 사람들과 삶의 방식 때문에 고민이 깊은 요즘이다. 극에서 형구는 그런 사람이다. 타인을 전혀 들여다보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과 가장 가까운 선아의 잠시 지나가는 어두운 표정과 짧은 침묵조차 눈치채지 못한다. 오로지 자신의 식탁, 명예, 안위가 우선인 사람이다.
형구의 시선은 오로지 자신에게만 향해있지만 그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목격자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타인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그 말을 다르게 말하자면 우리의 세상은 곧 타인이라는 뜻도 된다. 여기서도 연결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해 보자면 우리가 타인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는 곧 나의 세상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와 다르지 않다. 나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타인의 삶의 목격자가 되어 그들을 응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에피소드의 구조와 배우들의 연기가 극에서 말하고자 하는 타인과 나의 관계성을 너무 탁월히 표현해 나간다. 형구와 선아의 식탁 위는 철저히 타인으로부터 좌지우지된다. 오겠다고 했다가 오지 않는 민선생부터 갑작스럽게 찾아온 세미에 의해 그릇과 식기들은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자리가 바뀐다. 인물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어디에도 양방향으로만 이어진 관계가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다른 의도와 감정을 품으며 끊임없이 무대의 기류가 바뀌고 휘몰아친다. 그런 지점이 극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한 번도 케이크를 안 먹어봤다는 세미를 내쫓고, 다 같이 먹기로 한 케이크를 혼자 손으로 퍼먹는 형구의 모습, 서로 단절된 사회를 헤매는 사회 초년생 세미의 모습, 그리고 밤하늘의 별들이 얼마나 환했는지 모르는 형구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선아의 모습까지 눈에 생생히 남는 에피소드였다.
김동율 배우님의 명강아지 연기와 코로나 시절 마스크를 내릴 때 겪었던 뻘쭘함을 포착해 담아냈다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극적 소고>에서 사람 간의 단절을 이야기하고, <우리는 만나지 않았다>에서 단절의 모순을 후벼 파고, <파인다이닝>에서 그 후벼 판 틈사이로 단절에 대한 돌파구인 타인에 대한 연민과 관심을 꾀어냈다면 <새벽, 호모 마스쿠스>에서는 마침내 반짝이는 연결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전혀 알지 못하는 영우와 은솔, 두 사람은 새벽 산책길에 만나 대화를 하며 서로에게 위로를 얻는다. 그리고 영우와 두리의 이야기는 직관적으로 서로 단절된 현대 사회를 내비치고, 이별인 줄 알았던 진솔 덕분에 은솔은 또 새로운 연결을 만나게 된다.
영우는 천장과 바닥 사이로 보이지도 않는 아이들의 활기에 세상과 연결됨에 안심을 느끼고, 그런 영우와의 대화를 통해 은솔은 뱃속의 아이와의 연결을 느끼며 위로를 얻는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이 대사는 연결은 인간의 사회적 욕구가 아닌 원초적인 감각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나에게 라이터를 빌려주지도 않을 테고, 나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 나를 승진시켜주지도, 또 내가 쓴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상대가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 어떤 사회적인 욕구가 없어도 같은 인간으로서 연결되어, 그저 살아있기만 해도 안도감이 드는 그 원초적 감각. 그 감각을 받아들이며 눈을 질끈 감는 은솔의 앞길에 밝은 조명이 내리 내려앉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연극에서 인상 깊었던 점 5가지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에피소드의 전환
첫 번째로는 에피소드가 전환되는 방식이다. 이 극은 암전처럼 막을 구분 짓지 않고 자연스레 다음극으로 이어진다. 특히나 기억에 남는 부분은 3번째 에피소드에서 배우님이 자연스럽게 강아지 두리가 되면서 넘어가는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타인에 대한 연민과 연결을 무시한 채 금이 가고 있는 본인의 식탁만 뚫어져라 보는 형구 캐릭터에게 혐오감이 들 때쯤 그가 자연스럽게 개로 변하는 부분이 형구의 인간성을 상실한 모습을 은유적으로 비추면서도 극의 전환을 돕는 것 같이 느껴져 인상적이었다.
연결을 표현하는 화분의 이동
그리고 화분의 이동 또한 인상적이었다. 매 에피소드마다 무대에는 긴 화분이 하나 놓여있다. 크기도 굉장히 커서 도저히 그 화분의 존재감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 존재감 가득한 화분은 에피소드가 바뀔 때마다 자리를 옮기지만 여전히 무대 안에 존재한다. 이 연극의 모든 에피소드는 미묘하게 연결되어 있고 희미하게 이어져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또 목격자가 된다. 마치 매번 위치는 다르지만 언제나 존재하는 화분 소품처럼 말이다.
깊이감이 있는 공간
처음 관객석에 앉자마자 무대의 깊이가 유난히 깊다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런 무대 공간은 깊이감은 극 중 묘한 순간을 여러 번 만들어냈다. 무대극인데도 불구하고 카메라의 포커스 플레이를 보는 것 같아 정말 신선했다. 특히 <우리는 만나지 않았다>에서 무대 위 은솔과 정우 사이에 거리감을 확실하게 부여해 인물 간의 거리감과 심리를 표현한 게 정말 인상적이었다. 또 과거 진우와 은솔의 이별 장면은 무대의 후경에서 진행이 되었는데 저 안쪽 깊은 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있자니 정말 아득한 과거의 일을 보는 것 같았다. 이 처럼 깊이감을 이용한 시간 표현 또한 기억에 남는다.
관객과 배우들의 거리감
무대가 깊이감이 있어서 그런지 인물들이 조금 멀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인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고, 그들을 더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관객으로서 극 중에 이런 생각을 한 것 자체가 거리감에 대한 답답함과 연결에 대한 욕구를 느끼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 또한 작품의 일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피소드의 배치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나는 Part.1의 에피소드 배치가 아주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극적 소고>에서 사람 간의 단절을 이야기한다. 직관적으로 사람 간의 불통과 그로 인한 고통과 불안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이 후에 보게 될 작품들에서도 인물들 간의 관계에 집중하고 그 관계 속에서 긴장을 느끼게 만든다. 더불어 진우가 고민하는 초월적인 고민들은 극을 관람하면서 같이 해나갈 고민에 대한 물꼬를 터준다.
그리고 <우리는 만나지 않았다>에서 단절의 모순을 후벼 파며 단절되었지만 또 단절될 수 없는, 연결되었지만 또 풍부해지지 않는 인간상들을 그려내며 우리가 단절을 극복할 힌트들을 제시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인 <파인다이닝>에서는 전 작에서 후벼 판 틈사이로 단절에 대한 돌파구인 타인에 대한 연민과 관심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며 단절된 캐릭터와 적극적으로 타인을 응시하고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두 인물의 대립을 보여주며 보다 더 연대하는 세상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그리고 마침내 <새벽, 호모 마스쿠스>에서는 타인과 타인이 만나 연결되어 위로하고 위로받는 순간을 그려내며 인간의 연결을 향한 열망은 본능적이며 인간의 연대는 어렵고 힘든 인류의 상황들을 헤쳐나갈 유일한 빛임을 이야기하며 끝이 난다.
이렇게 쌓인 에피소드의 빌드업과 그 정서는 극을 끝까지 몰입감 있게 끌고 나가며 관객들이 작품과 함께 할 경로를 명확히 알려주는 길잡이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시대를 통과한 우리는 한 때 서로와 단절된 것이 안전한 세상을 살았고, 현재 AI 시대까지 온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여 무엇인가를 알아내고, 창작하는 것이 아닌 혼자 매달려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이런 현대 세상 속에서 타인에 대한 연민과 관심, 그리고 그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는 <팬데믹 플레이>는 꼭 필요한 연극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던 연극! 시간을 내서 보지 못한 Part.2까지 보고픈 마음이 크다.
본 연극은 2025.07.13까지 혜화 씨어터쿰에서 관람하실 수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후다닥 예매하셔서 관람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