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한민국에서 카페는 사랑방이 되어버렸다. 누구나 자유롭게 방문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는 차 한잔을 하는 그야말로 동네 사랑방 말이다. 우리 카페&서점도 물론, 동네 사랑방이다. 경남 진주에서도 더 구석에 있는 이곳에서는 연령, 직업, 성별을 떠나 모두가 자유롭게 방문한다.
오늘도 카페&서점 문을 열었다. 화알짝.
4년 차가 되자 이제는 익숙한 풍경들이 있다. 매일 오전, 오후에 두 번씩 경운기가 왔다 갔다 한다. 폐지를 모으시는 어르신들은 부부인데, 정말 부지런하셔서 하루에도 수십 번 이 앞을 오간다. 일흔이 넘은 어르신은 이제 친구가 되어서, 가끔 주전부리를 가져다주신다. 그러면 나는 보답으로 믹스커피를 타드린다(아메리카노는 영 맛이 없다나) 건너편에는 비어있는 땅이 있는데, 어르신들이 거기다 조그마한 텃밭을 만들었다. 이제 배추가 제법 자라 풍성한 머리숱을 자랑한다. 열심히 농사지은 밭을 어루만지는 어르신의 굽은 허리가 보인다. 연령대가 높은 동네라, 어르신 돌봄이나 자원봉사자들과도 가끔 인사를 나눈다. 그들의 일과는 정말 바쁘게 돌아간다. 혼자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모시고 병원도 가고, 은행도 간다. 집에서 반찬도 넉넉히 해와서 나눠드린다. 경비아저씨는 '경비' 그 이상의 일을 해낸다. 어르신들의 말동무도 해드리고, 밭에서 캐온 무나 상추 같은 것들도 나눠준다. 그리고 어르신들에게 술은 제발 끊으라며 잔소리를, 아주 기가 막히게 한다. 가끔 어르신들은 이 앞에서 모여 같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저 속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될 만큼 정말 재미있게 노시다. 나는 가끔 초코파이며 카스테라 같은걸 드리곤 하는데, 박수를 치며 좋아하신다. 나이 들어도 단 걸 좋아하는 건 똑같나 보다. 요새는 날이 추워져 낮에 햇볕이 들 때 잠깐씩 모였다가 또 헤어진다. "날 따수워지면 또 보입시더"하는 어르신들의 인사는 정겹다.
이런 정겨운 풍경 속이 항상 아름답기만 한건 아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리를 저는 어르신이 한 분계신다. 그분은 춘하추동으로 술과 맥주를 들고 다닌다. 꼭 우리 카페&서점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데, 전용 좌석을 가져다 놓을 정도다. 그분은 말투가 사납기도 하다. 임신했을 때의 일이다. 임신 중기였고, 나는 더 이상 담배냄새를 견디기 힘들었다. 관리소에 말해보았지만 관리소도 해결해주지 못했다. 언제 한 번 용기 내서 어르신에게 말했다. "어르신, 담배는 다른 곳에서 피워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자 돌아온 답변은 과히 충격적이었다. "x년이, 임신했다고 유세부리는거야 뭐야! 이 xxx년이" 상욕을 면전에 듣는 건 오랜만이라, 한동안 멍했다. 내 뇌는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그러자 뒤에 있던 어르신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 사람아! 지금 시대에 이러면 안 되네!" 그리고 되려 그분을 대신해서 내게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그 사건이 있는 후로 나는 그 어르신을 투명인간 취급했다. 인사도 하지 않았고,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창 너머로 그분이 보이면 화장실도 참았다. 어르신들에게 간식을 돌리려고 한가득 들고나갔다가, 그분이 있으면 갔던 길을 되돌아왔다. 그리고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아이러니하게도 단골손님보다 제일 얼굴을 많이 본건 그분이다. 날이 더워도, 추워도, 비가 내려도 늘 밖에 나와 카페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기 때문이다.
어느 날 카페&서점에 옮길 짐이 많아 경비아저씨가 도와주었다. 감사의 인사로 따뜻한 유자차를 내갔는데, 그분이 옆에 계셨다. '아, 한잔을 더 타 올까? 말까?' 엄청나게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경비아저씨에게만 유자차를 드렸다. '내가 천사도 아니고, 욕먹었는데 왜 저 어르신에게 차를 드려야 해?' 그러자 그분은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없심니꺼?" 경비아저씨는 난감해하시다가 본인의 유자차를 내민다. 그건 아니지! "제가 금방 가져올게요" 그리고 카페&서점으로 다시 들어가서 유자차를 만들었다. 보통 유자차에 유자를 100g이나 넣는데, 어르신에게는 90g만 넣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조그마한 복수 아닌 복수랄까. 그렇게 유자차를 내어갔더니, 그분이 너무 환한 표정으로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넸다. 이 공간에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있었지만, 그리고 오픈 초기부터 지금까지 쭈욱 그분을 가장 많이 봐왔지만,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것도, 그분이 그렇게 웃을 줄 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분의 웃음을 본 순간 '10g 그냥 더 담을걸 그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후에 경비아저씨가 오셨다. "그 어르신이 가끔 모난 소리를 하지예? 알고 있어예. 그래도 참 안타까운 사람입니더. 아내가 돌아가고 나서 자식들이 여기다 버리고 갔다아입니꺼. 여기 혼자서 사는디 하는 일도 없어가꼬 만날 술이랑 담배밖에 안하잖아예. 아무리 술을 끊으라 해도 그걸 못하대예. 사람이 넘 힘들게 살아서 그래예. 그래도 사람들이 너무 조아가꼬 저리 밖에 나와서 맨날 있다아입니꺼. 이해하이소." 세상에서 받은 상처, 가족에게 받은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나온 그분의 행동과 말투를 다시금 떠올려본다. 술과 담배 아니면 세상을 살아갈, 버틸 힘이 없을 그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날이 더워도, 추워도, 태풍이 내리쳐도 밖에서 어슬렁거리며 누군가와 만나며 이야기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을 그 사람. 안에서 고립되지 않고, 끊임없이 밖으로 나와 세상과 만나려고 했던 그 사람. 묵묵히 간직해온 외로움을 서툴게 표현하는 그 사람.
나는 그에게 거의 2년 동안 복수를 해왔다. 그를 무시하고,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그리고 매일같이 술과 담배를 찾고, 지저분한 행색의 그를 보며 외면했다. 왜 저러고 사나 비난도 했다. 정작 비난의 화살을 돌려야 할 건 밖이 아니라 안이었구나. 초라한 행색의 외면만 보고서, 술과 담배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를 삶 전체를 평가해버린 나 자신이 부끄럽구나.
<선량한 차별주의자>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우리는 꽤 자주 누군가에게 경고를 보내기 위해 거리에서 시선을 사용한다. 거리를 걸을 때 누구에게 시선이 머무르는지 생각해보자. 남자 두 명이 손을 잡고 걸을 때, 여성이 노출이 많은 옷을 입었을 때, 지저분한 행색의 사람이 지나갈 때 등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그들을 따라간 적이 있지 않은가? 거리는 모든 사람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허용된 공간이 아니다. 거리에는 사람과 행동을 규율하는 규칙과 감시체계가 있다."
나는 그에게 얼마나 차별적인 시선과 경고를 보냈던가. 함께하는 이 세상에, 모두에게 허용되는 공간에 그에게 한 평의 지분도 허락하지 않지 않았던가. 그가 내게 욕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2년의 복수로 이제 충분하다. 4년 동안 얼굴을 마주한 그와 이제 이웃이 될 준비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