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딩 앞에서 서른 넷이 울었는데, 나도 나를 모르겠어서

by 애매한 인간 채도운

사람에게는 생의 주기가 있다. 주기는 단순한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과 관계, 인식이 바뀌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청소년기의 ‘나’와 성인이 된 ‘나’는 엄청나게 다르다. 뭐든지 미숙하기만 해서 마냥 힘들었던 청소년이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고, 자영업을 하며 단련했다. 자녀를 양육하며, 살림을 하며 터득한 삶의 지혜가 있다. 그래서 지금쯤 되니까 성인이 된 ‘나’는 제법 우쭐하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힘이 덜 들어간다. 제법 사교적이기도 해서, 두루두루 원만하기도 하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휘어잡을 수 있는 마성의 매력(?)이 있는데, 지금의 나는 한순간에 피리 부는 소녀가 되어 아이들이 나를 뒤따르게 만들 수 있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에게 순식간에 며느리감이 되기도 한다. (비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야기를 마음을 다해, 잘 들어줄 것) 그런데······오늘 나는 처음으로, 청소년기의 ‘나’를 만났다. 그때의 내가 사실은 사라지거나 변한 게 아니라 사실은 그대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나는, 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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