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욕망

글 쓰고 싶은 욕망과 자유를 위하여!

by 이미애

늘 글을 쓰고 싶었다. 글자 수가 제한된 공간에 장난스러운 글을 남기거나 생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쓰는 글이 아닌 나의 생각과 느낌을 있는 그대로 쏟아낼 수 있는 글. 오늘은 문득, 다 쓰고 나서 조금은 자유로워졌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글쓰기를 잊고 살았음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아주 사소한 우연에서 시작되듯, 그 깨달음도 우연히 찾아온 선물 같아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가입만 하고 쓰지 않았던 곳에 들어와 첫 페이지를 연다. 하얀 공간에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넣고, 이렇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손가락이 움직이는대로 쓰련다. 이런 느낌, 참 오랜만이라 반갑구나!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아지는 사진. 봄, 분홍, 초록, 꽃이 어우러져 코끝이 시리도록 진한 향을 상상하게 되는 그런 꽃 사진이 좋다. 사진에 취미가 없고, 찍을 재주도 없으니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 그러나 곧, 찾아올 계절, 그래서 어딘가에는 펼쳐질 풍경, 그런 삶의 풍경을 상상하는 것이 살아가는 이유인 것 같다.


피고, 지고, 사라지고, 다시 생겨나는 무한한 순환의 과정. 그런 과정 속에서 생각도 감정도 생겨나고, 사라지고를 반복한다. 그렇게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던 많은 것들이 온전히 켜켜이 쌓여서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나는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알알이 터질 것만 같은 꽃잎 같았던 순간들이 내 안에 남아 언어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아! 언어인지 아닌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언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나는 혼잣말은 싫다. 언어로 전달되어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것이 비록 소통의 행위로 이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어떤 의미로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가능할지 아닐지는 꽤 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글쓰기를 통해 나 스스로가 어떤 의미를 찾았다고 생각될 때, 그때까지 판단을 보류하련다.


어쨌든, 시작은 혼잣말이 아닌 속삭임 정도의 언어였으면 좋겠다. 부끄럽거나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그동안 할 수 없었던 이야기, 나 조차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억압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이야기 들을 조금씩 써 내려갈 수 있을 때, 나는 조금씩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살면서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수용하는 작가들을 여럿 알게 되었다. 그들이 그렇게 솔직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글이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녔을까? 그래서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없었던 시간 동안 읽고, 또 읽었다. 읽기만 해도 위로가 되고, 저자의 견문과 성찰을 통해 함께 성장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최근에 읽은 임경선 작가의 [자유로울 것]은 그런 맥락에서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남의 얘기처럼 말하지만 나 역시도 매번 책을 낼 때마다 다음 책을 또 써낼 수 있을까, 라는 걱정에 휩싸인다. 이번이 내가 쓸 수 있는 마지막 책일지도 모른다는 근심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한부 선물 같은 것, 과거의 나를 넘어서면서, 내가 나한테 지지 않으면서, 남 잘되는 일 같은 것엔 신경 끄면서, 자신을 제대로 지켜보면서 끊임없이 스스로 성장시켜나갈 수 있을지가 진짜 재능의 승부처일 것이다." - 자유로울 것, 임경선 -


나는 사실 그녀에 대해 잘 모른다. 그녀가 참여했다던 라디오 방송은 들어본 적도 없고, 읽은 책은 [태도에 관하여]가 전부다. 그런데 그녀는 늘 당당하고, 솔직하다. 그녀의 솔직함은 오만함 혹은 자기 합리화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자기반성, 자아 성찰, 그리고 자기 검열을 통해 객관적으로 자신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을 때, 숱한 밤을 지새우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나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소신을 가지고 밝히는 것. 나는 그런 솔직함이 좋다. 그런 솔직함은 사람을 성장하도록 하고, 나 역시 그렇게 성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처 입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처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수용하고, 치유하는 방식과도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통해, 누군가의 고뇌 그리고 성찰을 엿보고 있노라면 나 역시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는다. 그렇게 나도 자유롭고 싶다. 이해하지 못했던 이해받지 못했던 혹은 합의하지 못 한 채로 수용해야만 했던 그 모든 욕망들로부터.



"인간의 본성인 욕망을 위해 주위 사람들과 환경에 폐를 끼치면서까지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하는 것은 탐욕이지만, 정당한 노력을 실천하고 위험 요소를 감수하고서라도 발전해나가려는 것은 꿈을 향해 걸어 나가는 것이다. 왜 꿈을 포기하는 것이 욕망의 이름으로 부정당하고 행복의 이름으로 납득되는 것일까." - 자유로울 것, 임경선 -


어쩌면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사색에 잠겨있는 시간조차도 현실에 충실하지 못 한, 생업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으려는 일종의 도피적 행위 정도로 폄하해 왔는지도 모른다. 늘 해야 하는 일은 많고, 내가 아니면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 없는 것뿐이었으니.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글을 쓰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그냥,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내 안을 들여다보는 행위들이 버겁게 느껴졌을 뿐이다.


게을렀던 것이고, 무기력했던 것이다. 누군가가 나의 삶에 들어와 나를 구원해줄 것이라 기대한 적이 없었던지라, 늘 혼자 감내하고, 혼자 책임져야 하는 것에 익숙했던 일상 속에서 나에게 이런 행위는 사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바쁜 일상 속에서 이런 행위를 꾸준히 지속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물음표다. 하지만 시작하지 않고 할 수 없었다고 단정 짓는 것보다 시작해보고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는 길을 택하고 싶다. 그것이 나의 욕망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방식이니깐.


그래서 오늘부터 글을 쓴다.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