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마케터가 되었나
아둥바둥 업무의 첫번째 기록
솔직히 고백하자면, 학부 때 마케팅은 보잘것없는 알맹이를 화려하게 보이게 하는 포장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짜 알맹이를 만드는 기획업무를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내 전문 분야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대학원에서 정보보호 공부를 하고 정보보호 기업에 경영기획으로 입사했다.
그리고 1년 뒤, 마케팅으로 직무가 변경됐다. 그것도 사수 없이 나 혼자.
게다가 기술을 중시하는 기업 특성상 홍보와 겸임해야 했다. 야마는 어떻게 잡는지, 배포는 언제 해야 하는지, 심지어 기자 미팅 때는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는지 나는 아는 게 없었고 알기도 어려웠다. 여러 기자분들에게 도움을 청해 보도자료 작성법부터 배웠다. 여러 번 틀리고 실수했다.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나아졌다.
이제 좀 홍보업무가 익숙해져 가고, 다음 스텝은 무엇일까 고민하던 차에 코로나19가 왔다. 당장 기자 미팅이 어려워졌다. 영업활동도 쉽지 않아 졌다. 디지털 마케팅이 필요했다.
디지털 마케팅이 뭐지? 막막했다. 일단 우리 제품이 검색이 잘되야할 것 같았다. 회사를 졸라 SEO컨설팅을 받았다. 그리고 하나하나 세팅했다. 서버 속도, 메타태그, html태그 등등 기술적인 부분을 수정하고 콘텐츠를 보강했다. 시간이 갈수록 검색 노출 순위가 올라갔다. 신기해서 주말에도 구글 서치 엔진을 맨날 들여다봤다. 고객 접점 채널도 늘렸다. 그럴수록 문의도 증가했다.
그러다 보니 마케팅이 매출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알고 싶어 졌다. 여기저기 물어봤다. B2B 마케팅의 난제란다. 그래도 효과 측정을 하고 싶었다. 일단 재무팀에서 매출 데이터를 받아서 접점이 있었던 기업들을 확인했다. 마케팅 채널로 문의가 온 기업들을 추려보니 몇 개 되지 않았다. 일단 산업의 특성을 따져봤다. 구매 의사결정 과정이 긴 탓에 온라인에서 제품을 탐색하고 오프라인으로 영업 담당자와 미팅하고 (빠질 때도 있지만) 경쟁사들과 기술검증 후 최종 선정되는 형태다. 그렇다 보니 마케팅 활동이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정량적인 데이터를 뽑기 어려웠다. 그래서 올해를 데이터 수집의 해로 정했다. 콜센터로 들어오는 문의 경로 조사를 부탁했다. 사업관리팀, 사업부에서도 경로 수집을 요청했다. 구글 애널리틱스도 동원했다.
업무를 하다 보니 느낀 게 2가지다.
첫 번째, 혼자서 고군분투하면 오래 걸리고 답답하다. 누가 알려주면 30분이면 할 것을 2시간씩 해야 한다.
두 번째, 대신 전략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누가 안 알려주니까 더 많이 찾아보고 더 많이 해본다. 아는 게 늘어나는 만큼 깊이 있게 고민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알맹이가 가장 중요하지만, 포장지도 중요하다. 포장이 허접하면 좋은 알맹이는 묻힌다. 특히 기술을 파는 기업은 포장이 더 절실하고 필요하다.
포장지를 만드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종이 선택부터 패턴, 사이즈 등등 고민할 게 산더미다. 작게 작게 고민하다 보면 어느 순간 포장지 형태가 갖춰지겠지 싶다.
앞으로도 나는 삽질을 할 거다. 그래서 완성된 포장지를 만들어 예쁘게 포장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