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속 어딘가에
존재하던 둑이 터졌다.
울컥.
내 안의 무언가가
영원히 부서졌다."
감정을 제대로 마주한다는 건 어쩌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일보다 더 무모하고 과감한 행위일지 모른다. 우린 상식이라는 선에서 희노애락애오욕이라는 짜여진 감정을 이해하고 연기하는 전형적인 나태한 인간일지모른다. 사실 감정은 여러겹이고 각 겹들마다 다른색을 띌 터인데 말이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게 정말 부끄럽게 여겨진다. 좋아하는이에게 널 사실은 좋아하고있었다고, 정말 싫어하는이에게 사실은 너가 꼴도 보기싫다고 우리는 쉽게 말하지 못한다. 좋고 싫음이라는 비교적 명확하고 간단한 감정들조차 다루기 어려운 마당에 다른 것들을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때론 어떤 강렬한 통제불능의 거대한 사건앞에 내가, 내가 붙들고 있는 감정의 둑이, 방어선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으면 하고 상상해보기도 한다. 날것 그대로의 인간들이 사는 세상, 직설적이고 속이 시원하게 서로를 마주하는 세상말이다.
"몰랐던 감정들을 이해하게 되는 게 꼭 좋기만 한 일은 아니란다.
감정이란 참 얄 궃은 거거든.
세상이 네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달라 보일 거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이 되어버린다면, 우린 상처투성이로 너덜너덜해질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난 그렇다. 차라리 세상을, 인생을, 사람의 갖가지 감정을 덜 이해하고 사는 것이 더 행복 할 수 있다. 웃음만하더라도 씁쓸한 웃음, 비웃음, 허탈한 웃음 등 긍정과행복 그것과는 거리가 먼 공식을 벗어난 복잡한 것들이 있다. 이것들을 차라리 모른채 웃음은 그냥 행복의 표현, 즐거움의 표식이라 여긴채 살아가면 더 편하지 않을까. A=A
"나는 감정의 이름들을 헷갈린다."
감정에 무딘, 어쩌면 감정을 아예 모를 주인공의 사례는 사실 낯설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우린 너무나 자주 감정의 이름들을 헷갈리곤 한다. 즐거움이라 믿고, 슬픔이라 믿었던 감정들도 사실은 늘 그렇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이해되지 않는 복합적인 감정들을 맞닥뜨릴땐 우린 모두 바보가 된다.
한참 동안 나름대로의 해석을 통해 둥근 복잡한 감정의 단면만을 잘라내어 만족해한다. 모나고 삐죽빼죽한 커다란 빙산만큼의 나머지 덩어리를 남겨둔 채.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진심."
"어느새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
내가 운다. 그런데 또 웃는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결국 주인공은 단어 끝에 꾹 남긴 마침표 하나 하나에 담긴 진심 마저 느끼게된다.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자연스러운 웃음마저 지을수 있게되었다. 해피엔딩일까. 감정을 느낄 수 없을 때 주변사람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판단하는 삶이 오히려 더 실수없이 완벽하진 않았을까. 감정이라는 헷갈리는 여러수에 속지 않아 덜 아팠을텐데.
"말했듯이,
사실 어떤 이야기도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삶은 여러 맛을 지닌채 그저 흘러간다. "
사실 이제까지 말한 이야기는 넋두리에 불과했다. 나는 또 우리들은 앞으로도 영원히 감정에 속고 속이며, 헷갈리고 헤매며 살아갈거다. 그렇다고 우리는 불행한 삶을 살아간다 말할순없다. 때론 속아서 행복하기도 하니까, 헷갈리며한 선택에 더없는 행운을 맞보기도 하니까. 여러 맛을 지닌 삶을 그저 용기내어 맞닥뜨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