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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우 Mar 20. 2019

전통은 따분하다?

<철수의그림이야기>

     



     

     

전통 중국화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보수적인 성격 또한 강했다. 원나라 이후로는 문인화가들이 화원화가들보다 입지가 높아졌고, 그림의 기교보다는 ‘사의’라는 개념을 들어 그림 외의 정신적인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로부터 전통 중국화는 어렵다는 생각을 심어주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에 소개할 화가는 이처럼 어려운듯한 전통 중국화를 참신하고 재미있게 해석해낸 독보적인 인물이다. 화가의 이름은 반천수다.


     

1897년 저장성 영해현 가난한 문인 집안에서 출생한 반천수는 농부이자 문인이기도 했던 아버지로부터 직접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7살에 서당에 들어가 글자와 고전문학을 익히기 시작한다. 1910년에는 고등소학교에 입학해 정식 교육을 받고, 1915년 항주 성립 제일 사범학교에 1등으로 입학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훌륭한 예술가이자 교육자인 경형이 (), 이숙 동(李叔同) 등 훌륭한 선생 밑에서 직접적 회화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1925년 상해로 건너간 그는 실력을 인정받아 상해 전문 미술학교, 상해신화예술전문학교, 국립 서호 예술원에서 교수로 임명된다. 1937년 국립 서호 예술원이 충칭으로 이사를 가게 되자 그 또한 같이 교수로서 피난길에 참여하게 된다. 중일전쟁이 끝나고, 국민당과 공산당의 치열한 싸움도 끝이난 중국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1949년 신중국이 성립하게 된 것이다. 이후 화가는 본격적으로 여러 곳을 유람하며 자신의 화풍을 더 개량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벌어진 문화 대혁명의 소용돌이로부터 그는 자유롭지 못했다. 당시 70대의 노인은 큰 나무 간판을 목에 걸고 고깔모자를 뒤집어쓴 채 거리로 수차례 끌려 나갔다. 계속된 구타 속에 늙은 화가의 심신은 극도로 허약해졌고, 마침내 큰 병을 얻게 된다. 그리고 1971년 그는 병상에서 끝내 회복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만다.

     

     

 

반천수 선생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주요한 키워드가 몇 개 있다. 그 첫 번째는 바로 ‘사의화(写意画)’다. “묘사 대상의 생긴 모습을 창작가의 의도에 따라 느낌을 강조하여 그린 그림” 사전적 정의다. 이는 그림을 자세하고도 세밀하게 묘사해낸 ‘공필화’와는 또 다른 화법으로, 사의화의 핵심은 간략하게 묘사를 하되, 대상의 핵심 부분은 반드시 갖춰야 하는 것이다.  반천수는 대학시절 체계적인 소묘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곧 자기의 화풍과는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화가는 스스로 화랑을 찾아다니며 전통사의화에서 흥미를 느끼게 된다. 반천수의 사의화는 시서 화인 등 사절(四绝)이 고도로 결합된 독특한 기질과 매력을 지녔다.  






그림을 한 번 살펴보자. 확실히 공필화만큼 섬세한 붓질과 사실적 기법이 사용되진 않았다. 하지만 그의 사의화속 형상들은 확실히 생동감이 넘친다. 파란 향로 속에 담긴 꽃을 보면, 화가는 꽃잎에 선염법을 이용해 꽃의 활기를 더했다. 대충 바른듯한 향로의 색도 자세히 보면 농담 조절로 인해 확실한 형태미를 지니고 있다. 두 번째 그림을 살펴보자. 슥슥 그린듯한 고양이다. 하지만 고양이의 겁에 질린 표정과 등을 바짝 들어 올린 경계의 몸동작은 너무나 사실적이다. 세 번째 그림은 작은 새 두 마리를 그렸다. 이 그림은 많은 붓질이 필요한 것 같진 않다. 화가의 몇 번의 터치로 앙증맞고 귀여운 새 두 마리가 완성되었다. 반천수의 사의화는 재미있고도 참신하다.


     

  



     

화가는 거의 모든 그림에 글들을 썼다. 바로 이러한 글들을 제시 혹은 제발이라고 한다.

바로 두 번째 키워드는  ‘제시, 제발 题跋’이다. 그림에 제발 하는 것은 중국 전통회화의 특색 중 하나다. 화가들은 처음에는 그림에 그저 자신의 이름만 적어서 사람들에게 누구의 작품인지를 알렸다. 문인화가 발전하고 흥함에 따라 화가들은 점차로 '시를 적어 넣었다. 좋은 그림에 좋은 시를 배합하면 조형예술과 언어예술의 장점을 충분히 발휘시킬 수 있어서 금상첨화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제시'는 반천수 회화작품을 이루는 중요한 구성요소 중 하나이다.

     

  






세 번째 키워드는 바로 ‘지화’(指画)다. 지화 (指画)는 반천수 화조화 창작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다. 지화라는 것은 말 그대로 손가락 ‘지’ 자에 그림 ‘화’ 자가 더해져 손가락에 먹을 묻힌 후 손가락 놀림에 의해 생동하는 그림을 그려내는 회화 형식이다. 청대의 화가 고기 패(高其佩)를 시작으로 많은 이들이 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지화는 용구의 한계로 인해 주로 작은 폭의 그림으로만 제작이 많이 되었다. 그러나 반천수는 큰 폭으로 제작했다. 거의 이분야에는 그가 창시자라고 해도 무방했다. <청하도>는 지화의 대표작이다. 무더운 여름이 이미 지나가고 새벽의 쌀쌀함 속에서 연못가 한쪽의 연잎들은 이미 시들기 시작했다. 활짝 피었던 꽃잎들이 하나둘씩 떨어지고 있는 상황을 묘사한 그림이다. 화가는 손바닥으로 단번에 연잎의 검푸름을 그리고 꺾어진 연꽃의 슬픈 신운을 표현해내었다.

     

  




반천수는 고전과 현대의 서로 다른 중국 화파의 예술적 특징을 융합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 전통회화의 구도와 기교를 심도 있게 연구하고 발전시켰다. 그는 회화의 화면 분포가 호방하고 평범하지 않길 원했다. 그의 구도의 가장 선명한 특징은 기묘하면서도 온전하다는 것이다. 네 번째 키워드는 바로 ‘획기적인 구도’다. 반천수 작품 구도의 특징은 높거나 혹은 멀고 넓은 각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그는 큰 바위를 즐겨 그렸다. 그리고 그 위에 높이 나는 독수리나 새들을 배치했다. 멀리 떨어지는 폭포, 오래된 소나무등을 기묘하게 배치하여 참신한 구도를 늘 시도했다. 반천수가 그린 거대한 바위들은 특별히 인기가 있었다.  보통 준법이라는 기법을 사용해 바위를 그린다. 하지만 반천수는 단지 몇 갈래의 윤곽선만으로 커다란 바위를 그려냈다.







 

반천수 선생의 그림은 때론 아기자기하고 때론 획기적인 구도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전통 중국화가 이해하기 어렵고 고리탑탑하다는 생각이 조금이나마 바뀌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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