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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우 Sep 22. 2019

생각보다 글 쓸일이 많더라

<고군분투미술관생존기> 첫번째 이야기




     

해외대학원 3학년1학기 겨울방학, 1학기라는 시간을 남겨두고 운이 좋게 국내의 모 시립미술관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당시 미술관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3명의 소수인원이 또 다른 새로운 미술관 개관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한 달이라는 짧은 기한 안에 완성해야했기에 정말 가망이 없어보였다. 괜히 입사했나 하는 후회를 할 겨를도 없이, 나는 프로젝트를 전담마크하게 되었고, 각박한 상황을 타개해 나가야했다. 결과만 우선 말하자면 기간에 맞춰 전시는 올려졌다. 그리고 가망 없어 보였던 프로젝트도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여운은 깊었다. 짧지만 강렬했던 그날의 기억들과 진하게 남았던 미술관의 경험들을 이 글 속에 담아보고자 한다. 시간이 지나면 내 몸과 머리론 기억하겠지만 그때에 느꼈던 신선한 충격들이 사라질 것 같아서 글로 남겨두고 싶었다. 더불어 전시기획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하는 바람도 있다. 인터넷 검색과 충분히 숙련된 큐레이터들의 자서전보다는 날 것 그대로를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현재진행형이자 미래형이기도한 나의 미술관 고군분투기가 개인적인 성장기록물이 되고 누군가에겐 청사진이 되길 희망한다.   

     

     

     


첫 번째 장 

“생각보다 글 쓸일이 많더라.”

  


전시기획자들은 흔한 말로 잡(雜)예사 혹은 일당백이라 한다. 그만큼 해야 하는 일이 수 도 없이 많다. 그 중에 정말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일은 다름 아닌 ‘글쓰기’이다. 살면서 글쓰기가 얼마나 중요하겠거니 경시해왔던 나의 지난날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는 중 이다. 대규모 전시기획이 진행되는 동안 정말 많은 글을 썼다. 물론 완성본은 아니었지만 거의 모든 크고 작은 건의 초본은 막내인 내가 작성해야했기에 정말 많이 골머리를 앓았다. 그리고 느낀 건 정말 많은 종류의 글들이 있구나하는 것이다. 전시기획의 과정에도 각각의 목적에 맞는 글들이 있었고 그 취지와 형식에 부합하게 진행해야 했다. 그 유형들과 성격들을 간략하게나마 여기에 남겨보고자 한다.   

     

  



기획서(취지의 확실성)

     

큐레이터들은 주기적으로 기획회의라는 것을 한다. 어떤 테마로 어떤 작가군을 섭외해서 어떻게 시각적으로 풀어낼지 스스로의 기획안을 발표하는 자리다. 전시라는 추상적인 과정이 잘 짜여진 기획서를 통해 구체화되고 시각적으로 구현된다. 그렇기에 기획서에서는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 주제와 소주제, 그리고 구현방식을 요한다. 감성과 시각적 아름다움, 더불어 기타 프로그램들과의 협업가능성까지 보이는 전시라면 최적일 것이다. 다만 기획안의 치밀한 완성도보다는 좀 더 발전가능성이 있고, 참신성에 더 큰 점수를 주는 것이 사실이다. 예술분야이기에 더 그러한 것 같다. 그래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하는 일이 참 중요한 것 같다. 기획은 전시기획자의 몫이지만 결과물은 작가와의 협동과정을 통한 것이기에 기획서대로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전시의 취지를 확실히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방향이 같다면 흔들리고 되돌아가더라도 허용이 되는 것이 전시의 매력인 것 같다.

     

     

  




전시리플렛(전시의 핵심)

     

기획서를 토대로 진행한 전시가 막이 올랐다. 그렇다면 전시와 관련된 설명과 취지, 작품에 대한 소개가 필요하다. 작은 크기의 소책자 형태로 15페이지 내외의 설명문을 리플렛이라 부른다. 전시리플렛은 도록이 출간되기 전까지 전시의 설명을 책임지는 중요한 글이다. 전시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기반으로 대중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설명과 작가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여기에는 충분한 자료조사와 인터뷰, 작가의 작업방식과 의도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번전시에서 전시기획자의 의도 또한 논리적이고 깔끔하게 반영되어야 한다. 어떤 리플렛은 글의 양이 너무 많아서 읽는 내내 어지럽다. 물론 전시에 집중하기도 어렵다. 너무 적은양의 설명은 성의가 없다. 그렇기에 핵심을 잘 추려서 적당한 양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전시도록(전시의 꽃)

     

보통 전시도록은 전시가 끝날 무렵에 완성된다. 기간이 오래 걸리면 전시가 종료되고 한 달 정도의 시간도 걸리지만, 대부분은 종료기간 전에 출시가 되는 것 같다. 전시도록은 전시의 결과물이자 꽃이다. 전시의 결과를 센스있게 편집해서 하나의 예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은 오롯이 큐레이터의 몫이다. 감각있는 디자이너를 섭외하는 일, 북 커버 및 종이의 재질을 정하는 일, 도록안을 구성하는 일, 매의 눈으로 수십번 오탈자를 체크하는 일 등은 모두 큐레이터의 역량에 달려있다. 도록은 보통 크레딧(참여자명시), 기관장의 인사말, 전시기획자의 기획의 글, 작품 사진(대부분을 차지), 전시평(비평가), 교육프로그램(의도 및 평가)로 구성되어있다. 내용은 전시리플렛의 내용을 기반으로해서 설명을 부가적으로 덧붙이고, 다른 글들을 잘 짜고 엮음으로써 구성된다. 탄탄한 내용과 시각적인 아름다움까지 모두 사로잡아야하는 만큼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정교한 작업이다.

     

  









전시기획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작업들을 살펴보았다. 기획서, 전시리플렛, 전시도록은 큰 틀에서는 비슷한 맥락이지만 깊게 들어가면 각각 서로 다른 섬세한 차이를 요한다. 그렇기에 기획자는 충분히 이 점을 숙지하고 틀에 맞는 글을 적절하게 써내야 하는 것 같다. 사실 이외에도 홍보성(보도자료), 행사성(인사말, 감사글)을 비롯한 다양한 형식의 글 또한 필요하지만 가장 중점적인 내용만을 다루어보았다. 미래의 전시기획자들에게 한 가지 충고해줄만한 점이 있다면, 다양한 양식의 글들을 읽었으면 하는 것이다. 딱딱하고 형식적인 글, 쉽고 친절한 설명식 글,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글,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동화식 설명 글, 모두 필요하기 때문에 다양한 양식을 모두 섭렵하기를 권한다. 그리고  새로운 내용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만큼 필자가 가장 많이 했던 일은 같은 내용을 줄이고 늘이는 일 이었다. 예를 들면 A4 한 장 정도의 전시설명글을 이분의 일로 줄이거나, 살을 붙여 두 배로 만드는 작업 말이다. 중심내용을 잘 숙지해 둔다면 어렵지 않게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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