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
여자들이 모임에는 으레 남편 흉보기라는 챕터가 있다.
흉보는 듯 하면서 자랑하는 케이스도 있지만, 흉보기도 친밀감을 쌓는 중요한 행위라, 흉보기 한두가지는 갖고 있어야 상황을 어색하게 만들지 않는다. 이런 대화의 틈에서, 졸혼하고 남편과 대면대면 지내는 나로서는 빈약한 두 종류 흉으로 대화의 흐름을 이어가곤 하였다.
“우리 남편은, 못 하나를 제대로 못 쳐. 망치 가져와라, 의자 가져와라, 어쩌구 저쩌고 하고서 정작 못치기는 ‘팅, 팅, 팅, 팅’ 대략 다섯 개의 못이 멀리 달아나버리는 상황을 만들고서 겨우 한 개의 못질을 성공하는데, 그것 마저도 물건을 걸면 툭 하고 떨어져 버리는 거야.”
라는 게 나의 첫번째 테마고
“ 빨래 널기를 30년 했는데, 아직도 쭈글쭈글하게 널어. 그걸 탁탁 털어서 널으라고 널 때마다 이야기했다니깐. 그래도 그거 하나 하는 게 어디야.”
이게 나의 두번째 테마다.
근데 며칠 전 그 두번째 이야기를 한 지인에게 내뱉은 후,
“ 아직도 건조기 안쓰세요? ”
라는 답변을 들은 것이다. 아, 그러게 난 아직 건조기를 안 쓴다. 졸혼하고서 혼자 살기 시작할 때 이사 온 집에 세탁기 통돌이가 있어서 그냥 그걸 썼던 것. 가족이 같이 살 때도 통돌이를 썼다. 난 ‘통돌이가 드럼 세탁기보다 깨끗하게 세탁된다’고 뇌리에 박힌 채로 거진 이십 년을 교체의 고민 없이 보냈다. 따라서 드럼세탁기와 한 팀인 건조기도 내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아 그래, 세탁기를 바꾸자. 건조기를 한번 사볼까?’
이런 생각에 인터넷 검색, 매장방문, 다시 인터넷 검색 이런 절차를 걸쳐 21키로짜리 세탁기와 19키로 건조기를 20평대 아파트 베란다에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무언가 절실히 필요하게 느껴져서 쇼핑으로 이어지는 과정 동안에는 도파민이 뇌를 흠뻑 적신다. 광고학에도 나오듯 ‘맞아 그건 사야지.’ 라고 생각하게끔 하는 게 최고의 마케팅전략이다. 욕망을 생산하는 것. 어쩄거나 세탁기와 건조기에 대한 나의 욕망을 실행하기까지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토요일 아침나절에 설치기사님 두 분이 ‘번듯’하게 임무를 수행하시고 퇴장하신 후 나는 빨래바구니에 얼마 쌓이지 않은 세탁물부터 돌려보았다. 재미가 붙어 딸아이 오리털 이불도 돌리고, 침대커버도 돌리고, 베게도 돌렸다. 하이에나 처럼 집 곳곳을 세탁물을 찾아다니면서 실내화와 발매트까지 돌리고서야 일요일이 마감되었다. 주말이 더 길었다면 옷장안에 있는 옷들도 다시 한번 더 돌렸으리라.
세탁기는 가전에 대한 욕망이 그다지 크지 않은 내가 결혼 혼수 이후 바꾼 두번째 전자제품이다. 가정용 전자제품이란 무엇인가? 집이라는 공간에 자신의 허드렛일을 대신해주는 도우미 같은 것. 그 도우미의 가격이 높고 실력이 출중할수록 그의 주인은 무언가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라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오븐, 인덕션, 티비, 김치냉장고, 청소기 그들은, 그냥 가전이 아니었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아도 그것을 작동하는 주인은 나름의 뿌듯함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세상이 무언가 내맘대로 되지 않는 순간에도 잘 작동하는 기계들을 보면서 일종의 위안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건조기를 들이면 삶의 질이 달라져.”라는 친구말의 속 뜻을 알게 된 것이다. 빨래가 마르는 동안 집을 점유하는 너저분한 상태를 만들지 않아서 삶의 질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그저 소음없이 제대로 웅웅 작동하는 나의 도우미를 보면서 나의 가치가 무언가 더 향상되었다는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 나의 엘지트롬오브제 세탁기건조기세트 후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