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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느끼고,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것이 반복되는 것

같은 실수와, 같은 생각을 반복할지라도 그것들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by 애란


지난주에 3박 4일간 상하이에 다녀왔다. ‘무수한 계획으로 가득한 내 평소 일상과 달리 3주 전에 부랴부랴 준비하게 된 여행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행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충동적으로 여행을 다녀온 횟수가 훨씬 많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 퇴사 후 캐나다로 떠나기 전에, 짧은 어학원 방학이 지나가기 전에, 새 매장 오픈 전에, 새해 카운트다운을 보기 위해, …이 무수한 이유들을 빗대어 나는 늘 충동적으로 여행을 다녔다. 이번 여행의 이유는 ‘미사용 연차 소진’이었다. 계획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매일매일 계획대로 지내는 것에 안정감을 느끼는 내가 왜 더 계획적이어야 할 여행을 대부분 충동적으로 다녀왔을까에 대해 지난 여행 이력들을 곱씹으며 생각해 보니, 내가 여행을 다녀왔을 시점은 늘 나의 마음의 물 컵이 넘칠랑 말랑하고 찰랑거릴 때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컵에 물이 가득 찰 때까지 물이 튀기든 옆으로 흐르든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따르기만 했기에, 가득 차서 넘치기 직전에서야 다급하게 물 따르는 것을 멈추고 흐르지 않도록 그것을 수습했던 것이다.


혼자 시간을 잘 보내는 것과 잘 쉬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나는 내 스스로에게 쉴 시간을 줄 이유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러니 손가락으로만 건드려도 물이 왈칵 흐를 만큼 마음의 컵 속의 물을 방치해 둔 것이겠지. ‘굳이 특별한 일이 없는데 왜 쉬어야 하지?‘하는 생각에 쉬는 날은 꼭 의미 있게 보내거나,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미사용 연차 소진을 이유로, 올봄부터 초여름까지 내 의지와 관계없이 쉬는 날을 몇 차례 갖게 되면서, 병원이나 은행을 방문하는 등 시간이 필요한 일들을 처리하지 않더라도, 별 것 하지 않고 느지막이 일어나 집안일을 좀 하다가 좋아하는 집 앞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여유를 갖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해도, 가끔은 그런 시간을 의식적으로 가지려 노력하는 게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그렇게 틈틈이 쉼을 가지다 보면, 충동적으로 여행을 계획하는 일도, 여행을 다녀와서 가기 전 설렘보다 곱절의 공허함을 느끼는 것도 좀 나아지지 않으려나.


여행을 다녀와서는 그전보다 더 극심한 무기력증을 앓았다. 거실이든, 침실이든 바닥에 널브러져 몇 시간씩 휴대폰이나 패드를 만지작 거리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온종일 무언가를 듣거나 보았다. 그러지 않으면, 산발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에 지금보다 더 널브러지게 될 것 같아서. 그러고 나서는 잠들기 전에 나의 그런 모습들을 복귀하며 자책했고, 다음 날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같은 감정을 느꼈다. 연휴의 끝인 어제에서야 비로소, ‘이게 평소 나를 덜 돌본 결과인가.’ 싶은 마음에 밀어둔 일들을 처리했다. 여행 경비를 정리하고, 조금 늦은 5월 회고와 6월 계획을 써 내려가고, 내일은 무엇을 할지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그려보았다. 오늘 일어나서는 이전에 했던 것처럼 모닝 루틴들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마지막으로 혼자 방문한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는 집 앞 카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의 나 또한 어제의 나와 같이 여전히 무기력하고, 기분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나, 그래도 무덥고 푸르른 이 하루를 슴슴히 잘 보내보면, 내일도, 그다음 날도 어찌어찌 잘 보낼 수 있을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 같은 실수와 같은 생각과, 같은 후회를 해도 그것을 회고해 볼 수 있는 내일이 있음에 감사해 보자고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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