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제일 어렵다.
나의 세계를 점점 확장해 나감에 따라, 이전에는 마냥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 아쉬워하고 그것들을 갈망하기만 했던 좁은 나의 마음의 폭도 넓어지는 듯하다. 늘 외적인 부분에 있어선 자신감이 없었다. '화려한 쌍꺼풀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근육을 빼면 나도 여리여리한 느낌의 체형을 가질 수 있게 될까?', '내 손도 주름이 없고 조금 더 뽀얀 피부였다면 좋았을 텐데.' 같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봤을 생각들을 종종 하곤 했다. 자신감이 많이 낮아질 시기면,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시술 후기나 관리 방법을 찾아보았다. 유독 나 자신의 모습들에 이렇다 저렇다 말을 붙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 해외 생활도 해보고, 다양한 나라에 여행도 가 보고,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일하는 경험들을 해오게 되면서, 개개인의 개성은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나는 내게서 부족한 부분들만 보고 그것들을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지를 생각했는데, 누군가는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오히려 갖고 싶어 하기도 하고, 또 나의 모습을 하나의 개성으로 존중하고 아름답게 여겨주는 표현을 들으며,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에서 나를 다시 한번 진득하게 살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되고 싶은 타인의 모습이 아닌, 나다움을 강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를 가꾸고 보살피는 방법을 하나둘씩 알게 되었다.
1. 나는 메이크업을 덜어낼수록 나의 강점을 살릴 수 있었다.
- 쌍꺼풀이 없고, 동글동글한 나의 눈에 아이라이너를 짙게 그리기보다는 옅게 음영만 주고 대신 속눈썹을 강조하는 것이 더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다.
- 입술 폭이 작은 편이라 짙은 색상의 립스틱을 사용해 입술을 강조하는 것을 좋아했으나, 오히려 옅은 핑크빛이나 입술색과 비슷한 색감의 틴트나 글로스를 사용하는 게 도톰함이라는 장점을 더 돋보이게 하고, 내가 신경 쓰던 입술 폭에는 상대적으로 눈이 덜 가게 할 수 있었다.
2. 체형은 내가 생각하던 것만큼 나의 단점이 아니었다.
- 인스타그래머블한 의상보다는 심플한 의상이 나의 얼굴의 분위기, 나의 목소리와 더 잘 어울렸다.
- 팔, 허벅지에 근육도 많고 허리 라인이 잘 강조되지 않은 나의 체형을 오랫동안 좋아하지 않았는데, 탄탄한 체형을 강조할 수 있는 의상들을 선택함에 따라, 오히려 건강미 있는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다.
- 어릴 적부터 습관이 된 팔자걸음 탓에 휘어버린 종아리 모양 역시 내가 참 좋아하지 않던 부분인데, 압박 스타킹이나 체형 교정 밴드 등의 도구를 사용해 보기도 하고, 혼자 홈트로만 해오던 요가를 잠시 멈추고 필라테스나 발레핏과 같은 체형 교정용 운동을 배우니 이전보다 종아리 라인이 눈에 띄게 정리된 걸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알아차림들이 나를 더 나답게 해주는 것 외에도 나에게 미친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면, 내게 더 잘 어울리는 게 무엇인지를 알게 됨에 따라 불필요하게 하는 소비들도 자연스레 줄어들고, 그렇게 아껴진 소비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위해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좋아하는 분위기를 가진 카페에서 더 자주 커피를 마시고, 여러 종류의 원두를 구매해 보는 것 같은, 나에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들을 위한 소비말이다.
알아차렸다고 해서,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고 여전히 가끔 꽂힐 때면 비슷한 생각들을 하긴 하지만, '나는 왜 ~ 할까'가 아닌 '~ 하지만.. 뭐 이렇게 보완해 보면 되지.' 하는 생각의 끝에 도달한다는 것만으로, 이전보다 조금 더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알아차리는 것들이 하나씩 더해짐에 따라, 내가 조금 더 나다워지고 있고, 더 주체적으로 삶을 꾸려가고 있다고. 나는 그렇게 믿어보고 싶다.
피부가 투명하리만치 얇은 막으로 이루어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바깥의 아주 작은 자극마저도 견디지 못하고 쉽게 움츠러들던 나를.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져 행복할 때마다 도리어 무서워지곤 하던 날들의 나를. 그럴 때면 나는 그때의 그 아이에게 다정히 말을 건네고 싶어지곤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 위해선 무엇보다 스스로를 충만히 사랑해야만 해. 그러면 스물두 살의 그 아이는 틀림없이 웃으며 이렇게 말하겠지. 걱정 마, 나도 이제 막, 그걸 어렴풋이 깨닫고 있는 중이니까.
백수린, ⌜다정한 매일매일⌟, 작가정신, 2024, p.166~p.167
나는 내 몸을 어떻게 대해왔나. 시간이 아깝다고 바디로션 바르는 일조차 건너뛸 때가 대부분이라는 걸 나는 기억해 낸다. 일에 쫓기면 가장 먼저 잠을 줄이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끼니를 대충 때우기 일쑤였다. 그러고 보면 언제나 나는 내 몸에게 모든 걸 양보하라고 요구했던 것은 아닐까? 가죽 가방 하나만큼도, 구두 한 켤레만큼도 나는 내 몸을 아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글프게 깨닫는다. 어쩌다 이렇게 살게 되었을까? 내가 원했던 것은 날마다 다른 구름의 빛깔에 감동하고 바람의 결을 느끼며, 꽃그늘 아래 앉아 계절이 깊어가는 것을 찬찬히 응시하는 삶이었을 텐데.
백수린, ⌜다정한 매일매일⌟, 작가정신, 2024, p.241~p.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