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계절이 보내는 위로를 안고 하루하루 잘 지내보기
하나하나의 계절을 최대한 한껏 느끼고 싶다. 하루 중 창문보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지만, 최대한 내가 즐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계절의 변화를 만끽하려 노력한다. 최소한 아침에 뜨는 햇살 정도는 매일 맞으려 애쓴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의 푸르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의 따뜻함, 그리고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 왠지 모르게 벅찬 감정을 느끼는 것이 참 좋다.
캐나다에서 두 번째 겨울을 막 시작했을 때쯤, 어느 날부터인가 밖을 걸어갈 때면 눈이 시리고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매 출근길마다 그러니 영 신경이 쓰여서 워크인 클리닉을 방문했더니 눈이 너무 건조해서 발생하는 현상 같다고 했다. 인공 눈물을 자주 넣어주고, 가습기를 사용하는 등의 생활 습관을 고치는 것 외에 별다른 처방법이 없다고. 진료를 본 지 한 달쯤 지났을까. 출근하려고 집 문을 열었는데, 바깥을 나서자마자 누가 내 눈앞에서 폭죽을 터트린 것처럼 무언가 와르르 쏟아지는 게 보였다. ‘햇빛이 너무 강해서 그런가..’ 하고 다시 한번 눈을 깜빡였다. 다시 한번 내 눈앞에서 폭죽이 터졌다. 직감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무서웠다.
캐나다는 안과 의사에게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없다. 안경사, 검안의, 안과 의사를 통해서만 진료가 가능한데, 검안의에게 먼저 시력 검사를 포함한 몇 가지의 검사를 받고 해당 검안의가 2차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에만 안과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증상이 발현되고 바로 다음 휴무에 부랴부랴 병원을 찾아 예약했지만, 검안의 진료 예약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는 패밀리 닥터도 없고, 캐나다에선 시력 검사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내 증상을 설명하고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증상이 발현되고 일주일쯤 되었을 때 검안의를 만났다. 기본적인 시력 검사를 마치고, 이어서는 산동 검사라는 걸 했다. 산동 검사는 눈에 동공을 확장시키는 안약을 시간차를 두고 떨어트린 다음, 동공을 확장시켜서 눈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검사다. 진료를 마치고 초점이 채 맞지 않는 눈으로 검안의가 어떤 말을 할지만 기다렸다. 수 분을 고민하던 검안의가 입을 떼려고 할 때, 직감적으로 ’ 뭐가 있긴 있구나.‘ 싶었다. 마치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이 된 것처럼 꼭 제삼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듯 그 정적을 바라봤다. 그녀는 “음.. 미세해서 확실하진 않은데.. 몇 번 다시 봐도 오른쪽 눈에 아주 미세한 크기의 구멍이 있는 거 같아. 소견서 써줄 테니까 큰 병원에 가서 더 정확히 검사받고, 치료받는 게 좋겠어. 우리 병원은 검사까지만 해줄 수 있거든.”이라고 말했다.
운이 좋게도 나는 검안의 진료 이후 약 한 달 만에 바로 안과 의사를 만날 수 있었지만, 몇 달씩 기다렸다 진료를 보는 게 흔한 것 같았다. “검안의가 보내준 소견서 확인해 봤는데, 넌 그렇게 치료가 급해 보이지 않아 예약 날짜를 더 앞당겨 줄 순 없어. 너보다 치료가 시급한 사람들도 아직 많거든.” 간호사가 무심하게 말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진료일자를 기다리며, 내심 아닐 수도 있을 거란 희망 어린 마음도 있었지만 결국 당시 검안의가 발견한 것이 맞았다. 해당 증상의 상세한 명칭은 '망막 열공'이라고 했다. 자칫 지나칠 수도 있을 아주 미세한 크기임에도 운이 좋게 발견되어 방치하지 않고 바로 치료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구멍 주변으로 레이저를 쏘아 그 구멍을 메우는 원리로 치료를 진행한다고 했고, 시술은 정말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모국어로도 어려운 의학 용어들을 영어로 답변받고 서류에 사인하는 과정들이 두려움을 더 크게 만들었던 것도 있지만, 시술을 받는 과정에서 강한 레이저를 눈에 쏘게 됨으로써 일시적으로 몇 분 정도 눈이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했었는데, 시술이 끝나고 불이 켜졌음에도 오른쪽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왼쪽에선 평소와 다름없이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잘 들어오는데, 오른쪽은 계속 컴컴한 암흑이었다. 곧 다시 돌아오리라는 건 알았지만, 그 암흑을 보고 나니 혹시 만약에 이 상태가 유지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수 분이 지나고 차차 모든 것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입 모양 같은 너무도 당연하게 바라보던 것들이 무척 생경하게 느껴졌다. 수속을 마치고 병원 문을 여니, 무표정으로 팀홀튼에서 커피를 사서 나오는 사람, 전화를 하며 어딘가로 바삐 가는 사람. 평범한 풍경들. 빵집에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고소한 향이 어떤 빵의 향인지 눈으로 골라보는. 매일 내가 보는 것들이 당연한 경험이 아니라는 걸 아주 오랫동안 망각하고 있었다. 매일 내가 의식하지 않고 하던 소소한 행동들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에는 당연한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 나 자신 또한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왜 더 절실하게 깨닫지 못했는지.
몇 발걸음만 나가보면 자연이 근처에 있는 곳에 잠시 머무르며 그 자연을 올곧게 느끼려는 노력이 더해진 것도 맞지만, 나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 중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여실하게 깨달은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내가 보는 모든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졌다. 경계가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어둡다가 서서히 선명한 주황빛을 보이며 밝아오는 11월의 아침, 여름밤 테라스 자리에서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 아무도 밟지 않고 소복이 쌓여 있는 눈을 마치 낙엽을 밟듯 뽀도독 소리가 들리게끔 천천히 밟으며 걷기 같은. 오직 그 계절, 그 시간 속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것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을 때, 지금 계절이 건네는 사소한 위로가 또 오늘 하루를 감사하게 만든다. 하루의 끝에 내일은 오늘보다 아주 살짝 더 행복하고 감사하게 보내고 싶다고 다짐하며 잠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