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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란 Sep 16. 2022

저 캐나다에 가려고요.

INFJ의 자기 계발 기록 - 해외 살이 편ㅣ프롤로그

 신입생, 독립, 이 단어들은 그 자체만으로 가지고 있는 설렘이 있다. 해보지 않았기에 좋을지 싫을지에 대한 걱정이 드는 반면 그만큼 큰 기대와 설렘도 느껴진다. 당장 그것이 내 현실이 아니라 해도 “언젠가 내 집을 이렇게 꾸며보고 싶다.” “언젠가 한 번 저 식당에 가보고 싶다.”와 같은 생각들은 종종 나를 상상의 바닷속에서 헤엄치도록 하고, 그것이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는 해외에서 살아보기가 그랬다.


 어릴 적부터 외국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던 나는 외국 드라마에 빨리 눈을 떴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외국 문화에 대한 많은 관심이 있었다. 당시에는 당연히 지금처럼 OTT 서비스가 없었기 때문에 EBS, 니켈로디언, 카툰네트워크 같은 어린이 채널을 보거나, 집 근처 비디오 가게에서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비디오를 서너 개씩 빌려서 시청하고는 했다. 그래서였을까 딱히 큰 결심을 하고 계획을 세운 건 아니지만, "언젠가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 깊이, 긴 시간 동안 자리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그 생각을 처음 마주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 즐겨보던 애니메이션들과 미드(사실 지금도 좋아한다.) / 이미지 출처 : IMDB(www.imdb.com)



 팥빙수가 유독 더 달고 맛있었던 무더운 8월의 어느 날, 친한 친구가 미국으로 떠나게 됐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한국에서와 다를 바 없이 계속 연락을 이어갈 수 있었는데 친구가 보내준 사진 속 그녀의 모습이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에서 보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 순간 신기함과 동시에 부러움을 느끼며 “나도 한 번은 외국에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행히 어릴 적부터 경제관념을 잘 가르쳐주신 엄마 덕에 처음 용돈을 받을 때부터 쭉 용돈 기입장을 썼던 나는 꿈이 생기자 더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 3번의 기회가 있었다. 적고 나니 조금 거창하지만, 사실 그저 선택의 갈림길들이었다. 학교 어학연수 프로그램이 첫 번째 기회였다. 호주에서 약 한 달을 보내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비용이 문제였다. 교육비와 홈스테이에만 250만 원 그리고 항공료는 별도. 학교 지원금을 제해도 개인 경비를 고려하면 약 400만 원 가까운 돈을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이미 해외 살이에 대한 자료조사를 시작했던 터라 비용적으로 큰 메리트가 없다고 느꼈고, 차라리 400만 원을 아껴서 나중에 보태자며 빠르게 마음을 접었다. 두 번째 기회는 국가 지원사업이었다. 파란 사다리 해외연수 프로그램이라는 지원사업으로 하계방학 동안 캐나다, 호주와 같은 영어권 국가 내 현지 대학교와 협업을 맺어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다. 개인 경비를 제외하고는 학비와 항공비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에 공고를 보자마자 신청했지만 결과는 서류 탈락. 탈락으로 낙담하고 있을 때 뜻하지 않게 세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사촌 언니가 뉴질랜드로 1년 간 어학연수를 떠나게 된 것이다. 워낙 어릴 적부터 함께했고 둘이 성격이 잘 맞는다는 걸 아는 가족들이 원한다면 같이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슬쩍 제안을 주셨다. 그런데 사실 내 꿈에는 조건이 하나 붙어있었다. 


‘도움과 지원 없이’ 해외 살이 하기. 그렇다. 부모님의 지원 없이 해외에서 살아보는 것이 나의 최종 목표였다. 


 좋은 기회였고, 나 또한 함께하면 더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처음에 세운 그 목표를 꼭 이뤄보고 싶었다. 이렇게 목표에 잠시나마 가까워지는 순간들이 몇 번 생기다 보니 꿈을 이루고 싶어 하는 나의 열망은 더욱 강해져 갔다. 목표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됐던 건 뭐니 뭐니 해도 당연 자금 모으기.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입학하고 나서는 학회, 과대표 등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하면서 장학금도 야금야금 모았다. 그러던 2학년 여름방학, 쉬면 뭐하나 싶어 시작한 인턴을 겨울까지 이어가게 되면서 운이 좋게 졸업 전에 취업에 성공했다. 그렇게 나는 약 3,000만 원을 모았고, 지금 정말 캐나다에 와있다.



 인턴으로 근무를 시작함과 동시에 이제는 세부 계획을 짤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그저 막연하게 ‘해외에서 살아보기'였던 계획을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 살아보기'로 구체화할 때가 된 것이다. 주 언어가 영어이며,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며 문화를 교류할 수 있고, 물가가 너무 비싸지 않은 곳을 찾아야 했다.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당연스레 언어에도 관심이 많았던 나는, 전화 영어나 현지인 영어 스터디 등 스피킹을 늘릴 수 있는 활동을 틈틈이 해왔었다. 언어 능력을 갖춰야 문화를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 언어가 영어인 국가를 선택하는 것이 무엇보다 1순위였다. 사실 두 번째 조건까지 보면 당연히 미국이 1순위고 가장 가고 싶었던 곳 역시 미국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여러 부분들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판단해 애초에 처음부터 후보에 두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추려진 후보는 캐나다의 토론토와 밴쿠버, 호주의 시드니와 브리즈번 그리고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였다. 세 나라는 많은 사람들이 워킹홀리데이, 어학연수 등 해외 살이를 처음 시작하는 나라로 대표적인 곳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연고가 있는 게 아니기에 정보의 접근성이 쉬운 나라를 선택하는 편이 안전하고 첫 시작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부모님께 설명드리고자 만들었던 PPT. 현 환율과 비교하니 마음이 아프다.


캐나다에 오기 전에도, 온 후에도 늘 나의 일상을 함께하는 노션. 파워 J에게 천국이 따로 없다.


왜 #캐나다를 선택했냐고 묻는다면, 사실 딱히 이렇다 할 이유는 없다. 조금 허무할 수 있겠지만 정말 '그냥'이라는 단어로 밖에 설명이 되질 않는다. 그냥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렸고, 사전 지식이 없다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더 가는 곳에 가는 게 좋겠다 싶었다.(파워 걱정 쟁이이자 겁쟁이인 내게 총기에 대해 더 엄격히 관리된다는 점이 +1이긴 했다.) 그렇지만 부모님께 그냥이라는 두 단어로 내 계획을 설명드릴 수는 없었다. 단 시간에, 홧김에 무턱대로 내린 결정이 아님을 말씀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왜 어학연수를 가고 싶은지, 그 나라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학비와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할 계획인지 등 세부적인 사항들을 차근차근 정리해서 부모님께 설명드리기로 했다. 처음에는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당황하셨던 부모님도 최종적으로는 내 결정을 존중하고 응원해 주셨다.


그렇게 새로 시작한 사회생활과 캐나다에 갈 생각에 대한 설렘과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2020년 2월, 코로나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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