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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림 Jun 26. 2022

익산시 원도심 중앙동 이야기

전통시장의 부활을 꿈꾸며

01. 잃어버린 ‘이리’시대의 영광





“하이고~ 그때는 시장이 바글바글 했었는디, 사람들이 밟혀가지고 갈 데가 없었어요.”

전북 익산 토박이이자 중앙시장 상인 이승호씨(71세)가 말했다.


익산 창인동 중앙시장은 광복 후인 1947년 개장했다. 이리역(현 익산역)과 가까워 장사가 잘됐다. 이씨는 “1960년대에는 비어있는 자리가 하나도 없이 꽉 찼다. 노점상도 많고 사람들도 많고 쓸이꾼도 많았다”고 했다.


이리시(현 익산시)는 허름한 목조 점포들을 허물고 그 자리에 2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을 지어 상인들을 입주시켰다. 상가건물형 시장인 지금의 중앙시장 건물이다.


“여기 2층 계단에서도 할머니들이 앉아 하루에 콩나물을 여섯 통, 일곱 통씩 팔고 그랬어요. 방앗간, 튀밥집, 순댓국 집이 많았는데 그래서 매웁기도 하고 고소한 냄새도 나고 여기서 뻥, 저기서 뻥 정신이 하나도 없었죠.” _ 중앙시장 상인 이승호씨(71세)


중앙시장 건물 주변으로 상권이 길게 이어졌다. 인근의 원광여자중학교가 1970년대 후반 이리역 건너 모현동으로 이전하자 상인들은 텅 빈 학교 건물 1~2층을 상가로 개조해 사용했다.


중앙시장 골목에는 옷 가게도 많았다. 양복점으로 유명한 익산의 번화가 ‘영정통’에 갈 수 없는 서민들은 중앙시장의 기성복 가게를 찾았다.


옷 가게를 하는 오진영씨(67세)는 “1980년대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이리 공단의 쌍방울 메리야스 공장이 정말 잘 돌아갔다. 공장 월급 날인 10일만 되면 시장이 공장 아가씨들로 빡빡하게 들어찼다”고 말했다.





쌍방울 공장이 생산라인 절반을 중국 길림성 공장으로 옮기면서 시장을 찾는 손님이 줄었다. 인근 모현동과 영등동에 신시가지가 만들어지면서 구도심 인구도 빠져나갔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익산시내에 대형마트 3곳이 문을 열었다. 중앙시장 일대는 1990년대 후반부터 긴 침체기를 맞았다.




익산시 구도심(창인·갈산·중앙동) 인구 변화 추이


출처: 전라북도,「주민등록인구통계」






02. 3개의 시장으로 갈라진 중앙시장. 


2층짜리 중앙시장 건물을 따라 만들어진 시장 상권은 남북으로 420m 가량 길게 이어진다. 예전엔 모두 중앙시장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2층 건물만 ‘중앙시장’이라고 부른다. 건물 맞은편 상점들은 ‘매일시장’, 북쪽의 상점들은 ‘서동시장’이 됐다.


중앙시장과 매일시장을 가르는 골목길에는 2008년 아케이드 지붕이 설치됐다. 아케이드 양쪽으로 상점들이 속한 시장이 다르다는 게 이상했다.


중앙시장이 세 개의 시장으로 나뉜 건 전통시장을 지원하겠다며 2005년 시행된 ‘재래시장육성을위한특별법’ 영향이다. 이 법은 전통시장 경계를 명확히 하고 이에 따라 구성된 상인회에 사업 자금을 지원한다.


상가건물형 시장으로 시작한 중앙시장은 해당 건물 안에 입주한 상가들만 인정을 받았다. 건물 밖 상인들은 각각 상인회를 조직하고 별도의 시장이 됐다. 이후 세 시장은 경쟁적으로 지원 자금을 신청하고 각자 시장을 꾸려나갔다. 하지만 본디 한 몸이었던 서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중앙시장은 가공품과 식당, 매일시장은 의류, 서동시장은 육류, 수산물, 청과물 등이 주를 이룬다. 손님들은 시장에 오면, 아케이드를 따라 걸으면서 다른 두 시장을 방문한다. 상인들도 세 시장 앞 글자를 따 ‘중매서 시장’으로 부르기로 했다.





상인들은 2015년부터 댄스, 난타, 요가 동아리를 만들어 함께 운영하기 시작했다. 오후 7시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일주일에 두 번씩 모임을 가졌다.


댄스 동아리 회원인 ‘아현닭집’의 이미정씨(51세)는 “지금은 코로나19로 모임이 취소됐지만 그전에는 매번 모임에 나갔다. 장사도 중요하지만 가서 뭔가를 배운다는 게 더 좋았다”고 했다. 서먹했던 시장 상인들과도 친해졌다.



공연을 하고 있는 중매서 상인 동아리 회원들의 모습(2018년) | 출처: 중매서 시장 블로그


“시장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잘 몰랐어요. 특히 서동시장과는 평소 왕래가 없었거든요. 얘기도 안 하니까 거리가 좀 있잖아요.


이제 모이니까 얘기도 많이 하고, 메신저로도 연락할 수 있게 됐죠.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시장을 위해 이렇게 합시다’하면, 아무도 안 하려고 하잖아요. 서로 알게 되니까 힘이 되고 보탬이 돼요.”



박성아 익산시청 주무관은 “공공디자인과 문화를 접목해서 익산의 구도심에 새로운 공간을 조성해 보려고 했는데 가능성이 보이는 곳이 중앙·매일·서동 시장이었다”고 했다.


“중매서 시장은 상인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이뤄지고 있거든요. 별도의 공간을 조성한다면 상인들이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03. 상인들은 부활을 꿈꾼다. 


“함께 동아리 활동도 하고, 선진지 견학도 하면서 서로 공감대가 많이 만들어졌거든요. 무기력하기만 했던 상인들의 생각도 바뀌어 가고 있어요. 서로가 모르는 사이에 하나가 바뀌고 또 하나가 바뀌고 그렇게 시장이 달라지고 있는거죠. _서용석 상인회장


상인들이 변해야 시장이 변해요. 문화가 있는 주차장을 만드는 공공디자인 사업도 그 과정이죠. 잘 해나가리라고 자신합니다.” _서용석 상인회장


앞으로 중앙동 전통시장의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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