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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tuti Sep 16. 2021

조카가 월반을 했다

서울대 가기보다 힘든 비교하지 않고 아이 키우기

똘똘이 우리 조카가 과학고 시험에 합격 해 내년에 중3을 하지 않고 바로 과학고 1학년으로 입학한다는 좋은 소식을 안겨왔다.  마지막으로 조카를 만난 2019년 여름,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조카는 밤 9시가 넘어서야 학원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두 달 내내 한국에 있었음에도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영재교육원과 과외, 학원으로 인해 시간을 내지 못하다 미국으로 돌아오기 일주일 전이 되어야 선심을 쓰듯 시간을 내 주어 하루를 우리와 함께 놀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같은 사립학교에 다니는 자신의 반 친구들도 다들 그렇게 공부한다며 별일 아니라는 듯 학교나 학원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경쟁사회에 발을 디뎌 부모와 조부모의 기대치에 부응하고 더 좋은 성적으로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낮과 밤을 보냈을까? 밤 9시가 되면 읽던 책도 뺏어버리고 소등을 하고 잠자리에 보내는 우리 집과는 너무나 분위기가 달랐다.  부모가 등 떠밀어도 자기가 좋아하지 않으면 하지 못하는 것이 공부라지만 바로 자신의 아빠, 나의 오빠가 과학고, KIAST, 서울대 박사, 30대 초반 박사학위 취득과 동시에 국립대 교수 임용 순서를 밟은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이기에 가족의 기대, 아빠만큼이 아니라 아빠보다 더 잘하길 바라는 어른들의 암묵의 압박이 있었을 것이다. 나와 오빠가 클 때와 비교하면 넉넉한 가정환경에 대도시라는 강점, 각종 정보, 조부모의 경제적 지원까지 있으니 공부를 못할레야 못할 수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조카가 공부를 못했다면 일하는 엄마인 우리 새언니가 그 욕을 어떻게 다 감당했을까? 남편처럼 서울대 안 나온 죄로 엄마 머리 닮아 그렇단 말을 듣지 않았을까? 그깟 돈 얼마 번다고 애나 잘 챙기지란 욕을 듣지는 않았을까? 박사학위를 준비하며 강단에 서는 새언니를 자기 일을 향해 떳떳하게 나아가는 여성으로 만들어 준 조카가 대견하고 감사하기까지 하다. 또 한편으론 자기 오빠만큼 공부를 잘하지 못하고 또 하고 싶지도 않아하는 작은 조카가 맘에 걸려 안타까웠다. 꼭 내 모습 같아서.


공부를 즐기고 일등하는 느낌에서 아드레날린을 느껴 중독성으로 공부 한 오빠와는 달리 나는 피 흘리는 입시제도를 피해 바득바득 우겨서 미국에 왔다. 운이 좋아 대학에 입학했고 꾸역꾸역 대학을 졸업했고 남들처럼 직장생활을 하다 운명처럼 남편을 만났고 사회적 압력에 의해 일하는 엄마와 아기 키우고 집안일하는 아빠 대신 돈 버는 아빠와 가정주부의 역할극을 맡았다. 비록 나와 남편의 연봉 차이가 만 오천 불이 넘었으나 산후조리를 하러 온 친정엄마 앞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사회 경험이 있는 나 대신 대학을 갓 졸업한 남편이 직장을 나가는 것이었다.


내가 그런 입시제도 경쟁사회가 싫어서 내 아이는 그런 세상에 살게 하고 싶지 않아 미국에서 터전을 잡고 살고 있는데 미국의 아이비리그 입시를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그 치열함이 더 하다. 한국의 입시제도가 사막을 해쳐나가는 거라면 미국의 입시제도는 용암로를 지난다고 해야 할까?


미국 아이비리그를 포함한 상위 10개 대학 신입생 숫자를 지금 미국에 있는 내 딸 나이의 학생들 숫자로 나눠보면 외국인 입학생들을 제외한데도 상위 0.05% 만이 그런 대학에 입학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위 10% 아이들이 모인 honors class에 다니며 상위 2-3% 아이들이 듣는 GT(Gifted and Talented)  수업을 우리 아이들이 듣고 있어도 여전히 그 수치를 보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 지난여름 썸머캠프를 알아보다 영재 썸머캠프에 관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먼저 일주일에 수천 불, 여름 내내 참가하면 많게는 몇만 불을 하는 그 수강료에 놀랐다. 그리고 그 영재 프로그램에 들어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시험과 지난 몇 년간 합격한 아이들의 점수에 또 한 번 놀랐다. 일단 초등학교 3학년부턴 11, 12 학년 아이들이 대입을 위해 치는 SAT 또는 ACT로 아이들을 평가하는 학교들이 많았다. 보통 6학년 정도부턴 그만한 합격 성적이면 지역 주립대 정도는 입학 가능한 성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영재 썸머캠프도 캠프 나름. 교수가 직접 가르치지 않고 조교나 다른 강사가 가르치는 수업들이라면  돈 낭비라는 리뷰를 읽었다. 영재 썸머캠프에 수천 불을 주고 아이를 여름방학 동안 유명대학 기숙사에 보내 공부를 시키는 이유는 그 유명대학 교수의 눈에 들어 교수에게 추천서를 받기 위함이란다. 그래야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으니.... 남들 다 받는 학교 선생의 추천사, 교장선생의 추천사와는 차원이 다른 저명한 대학 교수의 추천사가 있어야 아이비리그에 들어가기 쉬워진단다. 고등학교 때 내가 A 받은 수업 선생님의 추천사를 받아 주립대에 들어간 나로서는 목표를 낮게 잡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되나 싶다.


고등학생들이 그런 여름 영재캠프를 가기 위한 과정은 시험뿐만이 아니었다. 그 캠프에서 다룰 주제에 대해 먼저 읽고 리서치 해 보고 관련 논문도 몇 편 읽으면서 예상 질문에 대한 답안을 미리 준비 해 가고, 가장 중요한 게 교수에게 질문할 거리를 수업별로 1,2개씩 준비해 가서 10-15 명 남짓 한 그 그룹 안에서도 유독 눈에 띄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년 그런 캠프를 하는 아이들이 즐비하고 다들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와서 프로그램이 끝나면 추천서를 부탁할껀데 교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더 뛰어난 추천서를 써 줄려면 그 교수 입장에선 이 학생은 여기 온 다른 돈 많고 똑똑한 학생들이랑은 차원이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심어주어야 한다나?


거기에 이어 과학 경시대회, governor's school 등 그런 것에 참여하기 위해선 학교 교과를 하면서 신경을 쓰면 시간이 너무 없기에 학교 교과는 이미 고등학교 들어갈 땐 졸업과정 까진 다 선행학습을 해 놓는 게 좋단다. 그래야 숙제나 과제, 시험의 경우 복습하듯 식은 죽먹기로 해 내서 A를 받고 하루에 3-4시간씩 경시대회와 실험, 논문에 전념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늦었나 불안한 마음에 나도 PSAT와 SAT책을 아마존에서 주문했다. 영어는 내가 지금 봐도 모르겠고 수학은 일 년쯤 더 가르치면 PSAT정도는 만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한심하기도 했다. 내가 싫어서 미국에 왔는데 그것보다 더 치열한 전쟁터 속으로 내 아이들을 밀어 넣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남편과 나의 모토인 정신. 육체. 지식의 고른 발달과 성공으로 가는 사다리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줄타기를 하고 발란스를 잘 잡으려면 복근이 필요하다. 중심을 잘 잡아 줄 복근.


결국 영재캠프 대신 예년처럼 우리는 아이들을 여름 수영팀에 집어넣었고 매일매일 수영을 다니고, 악기 연습을 하고, 세계사 공부를 하고, 수학 문제를 풀고, 책 읽고, 영화 보고, 보드게임을 하며 여름을 보냈다. 매일 주중 9시면 잠자리에 들었고 늦어도 아침 7시엔 일어나 8시 반에는 수영장에 있었다. 딸아이가 수영팀에 한 아이는 수영을 정말 못하는데 주니어 코치를 한다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물어본다. 대학에 가기 위해선 봉사활동이나 취미활동을 써야 하는데 그게 같은 분야이면 더 좋게 인식이 되기에 수영팀에서 주니어 코치를 하는 것 같다고 일러줬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7학년을 시작하는 우리 딸이 작년 한 해 동안 화상수업을 선택했기에 중학교 첫 한해를 학교 건물 안에서 보낸게 아니라 혹시 중학교에 적응을 못하면 어쩌나 친구를 잘 사귈 수는 있을까 걱정을 했다. 다행히 우리 딸 꾸미는 아주 잘 적응해 주었다. 엄마가 심심할까 봐 그러는지 펜데믹이라고 아침 점심 학교 급식이 공짜인데도 도시락을 싸 달라고 한다. 학교 급식은 정말 맛이 없고 자기 친구들은 도시락을 싸 오니 같이 도시락을 먹으면 줄 설 필요도 없고 점심시간 동안 친구랑 말할 시간도 많아진다고. 판타지물에 빠져 밤에 몰레 후레시를 켜고 이불 밑에서 책을 읽던 아이가 이젠 팬픽에 빠져 하루 종일 시간만 나면 핸드폰으로 소설을 읽느라 정신이 없다. 혼자서 키득대다가 동생이 읽는 판타지 물의 캐릭터를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해석했는지 자기가 읽은 팬픽을 동생에게 이야기를 해 주며 목소리가 높아지고 눈이 초롱초롱 해 진다.


학기가 시작한 지 1주일이 지나자 나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듣는 수업 6개의 친구들 이름을 거의 다 외웠다고. 물론 몇몇 아이들은 겹치는 수업도 있겠지만 한 반에 그래도 25명 정도 되고 오케스트라 수업은 50명이 넘는데 한국처럼 번호도 없는데 그 아이들의 이름을 다 외웠다고 하니 얼마나 한 아이 한 아이에게 집중하며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특징들을 기억하려 노력했을까 싶어 대견하다.  


작은 아이 기쁨이는 초등학교 마지막 해를 Safety Team(선도부)에 들어가게 되어 아주 신이 났다. 남들보다 일찍 학교에 가고 형광색 안전띠를 매고 교통안전 깃발을 들고 다른 아이들을 맞아 주는 일을 즐긴다. 하루는 선생님에게 학교 생활점수를 모아 받은 상품을 친구들이 원할 경우 트레이딩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고 신나서 이야기한다. 엄마가 주식을 샀다 파는 것처럼 자기는 상품을 원하는 친구들에게 더 많은 포인트에 팔 거라나? 2학년 때 캡틴 언더 펜츠의 주인공들처럼 만화를 그려 판매해 얻은 생활점수로 상품을 교환하려 했을 때 선생님이 자신이 수여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생활점수를 가지고 있는 걸 보고 아이를 믿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훔치거나 빼앗은 줄 착각하여 아이가 몇 달을 노력해 모은 생활점수를 모조리 빼앗아 버린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아이는 학교이 문제아 였다. 아이는 수업내용을 다 알기에 수업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문제행동을 일으켜 학교에서 전화가 왔었고 나 또한 그런 아이로 인해 지쳐있었다. 아이는 학교에서 선생님께 받은 그런 부정적인 피드벡을 나에게 말 해 줄 용기가 없어 나에게는 비밀로 했다. 나는 아이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체 그 사건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른 사람들은 아니더라도 엄마는 항상 너의 편이라고 너의 든든한 지원자라는 그 신임을 아이한테 다시 얻는데 몇년이 소요됬다.  그런 실패가 있었기에 이번엔 선생님의 허락을 먼저 받은 모양이다.


일주일 정도 매일 학교 갔다 올 때마다 자신의 사업이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 보고 하던 아이가 일주일 후에 시큰둥한 목소리로 선생님이 더 이상 트레이딩을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몇 번의 트레이딩을 통해 가격을 곱으로 받은 것을 친구들이 알게 되었고 배신감을 느낀 친구들이 그걸 선생님에게 일러 결국 아무도 트레이딩을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움직이는 주식시장에선 그게 죄가 아니지만 학교에서의 생활점수와 상품은 학생들에게 바른 행동을 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에 목표가 있지 그것으로 학생들이 이윤을 취하는 것에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 기쁨이가 윤리적으로 맞지 않는 행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생활점수와 상품의 운영 목적에 다르게 사용했기 때문에 엄마도 선생님이 올바른 선택을 하셨다고 본다고 말해 주자 기쁨이도 자신도 이해한다고 수긍을 해 줬다. 또한 주식시장에서도 실제 가치가 없는 주식을 거짓 정보로 아주 가치가 많은 것처럼 선전해 큰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행위는 법에서 감시하고 처벌도 한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요즘 기쁨이는 자신이 가진 포켓몬 카드와 육이오 카드 중 돈이 될만한 카드가 있는지 인터넷에 검색 중이다. 30년쯤 후에는 민트 컨디션은 아닐지라도 몇몇 카드는 아주 구하기 힘든 카드에 속하니 지금부터 잘 보관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꺼라며 몇 장은 소중하게 따로 관리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각자 나름대로 자신의 영재성을 발휘하고 있다.

영재성은 모든 과목에서 나타날 수 있다. 수학, 언어, 과학, 역사, 운동, 미술, 음악 등등.

하지만 난 아이들이 행복 영재성을 발휘할 때 가장 안심이 된다. 친척이나 옆집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영재들 안에서 더 잘하려고 할 필요도 없고 내 아이가 상위 몇% 인지 따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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