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일간의 배낭여행 5 : 데니즐리
데니즐리 터미널에 도착해서는 다음날 셀축으로 가는 버스시간부터 알아봤다. 아침 8시 반 버스를 예약하고, 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가성비 숙소를 앱으로 예약한 다음, 숙소에 안 들르고 터미널 짐 보관소에 배낭을 보관하고 파묵칼레로 출발했다. 숙소가 아무리 가까워도 오고 가면 한 시간은 허비될 일이다.
짐 보관소와 같은 지하 1층에 미니버스 돌무쉬 타는 곳이 있다. 파묵칼레 아래쪽인 남문까지는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와 고대극장을 꼭 보고 싶었기 때문에 남문에 내리지 않고 맨 위까지 올라가서 내리겠다고 했다. 남문에서 탑승객 절반이 내리고 절반은 차에 남아 있었다. 엣 도시의 흔적을 보며 천천히 걸어 아래로 내려올 참이었고, 절반은 같은 생각이구나 싶었다. 근데 우리가 내릴 때 보니 아무도 내리지 않는다. 다시 보니 그들은 현지인들로 아예 그 고개를 넘어가는 승객들이었다.. 우리 둘을 내려주고 버스는 떠났다. 4시 반, 태양은 뜨거웠고 아우도 없는 넓은 공터는 휑하니 폐허처럼 느껴졌다. 맞게 내렸겠지? 저 멀리 돌덩이들 옆 안내소가 눈에 들어왔다.
“100미터 가서 우회전하면 매표소가 있어.”
맞다는 확신만 들면 언제나 발걸음이 서너 배는 가벼워진다. 한달음에 매표소까지 가서 이틀 전에 가격이 껑충 뛰어 700리라가 된 입장권을 끊었다. 몇 미터 걸으니 매표소가 하나 더 있었고, 직원들은 우리에게 미니버스를 타라고 권한다. 미니버스 말고 직접 운전하는 세발 오토바이 같은 것도 있다. 당연히 하하는 거기에 호기심을 보였다. 900리라. 원래 생각대로 걷기로 하고 그곳을 떠나오는데, 한 30미터쯤 걸었나 뒤에서 직원이 부른다.
“마담, 여기서 2,5킬로를 걸어야 해. 괜찮겠어?”
대답 대신 엄지를 척 올려주고 뒤돌아 다시 걸었다. 하하도 따라서 그들에게 엄지손가락을 높이 들어 보였다. 북문에서 내려오는 초반은 보존상태가 좋지 않고 돌덩이들이 나뒹구는 느낌이다. 계속 걷다 보니 거리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고, 거리는 우리를 과거로 데려가면서 돌덩어리들이 CG 복원처럼 신비하게 모양을 갖추다 도시를 완성한다. 거리는 점점 웅장해지다가, 원형경기장에 다가갔을 때,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사진으로 봤었지만 실제로 그 앞에서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중간쯤 걸었을 때 하하가 코피가 났다. 여행이 고되어서는 아닐 거고 원래 코피를 잘 쏟은 아이다. 그렇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아이를 나무밑 그늘 벤치에 앉혔다. 가방 안에는 두 장 정도 남은 물휴지가 전부였다. 마침 저 멀리 미국인들로 보이는 관광객 일행이 지나가 휴지를 빌릴 수 있었다. 물휴지 두 장을 금방 적실 정도로 코피가 쏟아지고 있어서 나도 좀 당황을 했고, 뛰어가 “마이선” “노우즈” “블러드” 세 단어 밖에 못했는데, 서너 명에 동시에 신속하게 가방에서 휴지를 내어주었다. 스스로를 써전이라고 소개한 어떤 남성은 일부터 발걸음을 돌려 우리에게 와서 코의 어느 부위를 어떻게 누르면 되는지 알려주고 목뒤에 차가운 걸 대주라고 조언하고 갔다.
고대도시 안에서 옷과 손이 피로 범벅이 되어 나무그늘에 앉아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지만 사람들의 친절로 마음은 푸근해졌다. 그렇게 고대도시를 지나 도달한 석회온천에서 하하는 아주 즐거워했다. 아이러브파묵칼레 노래를 부르며 위아래 옷을 다 벗고 팬티만 입고 즐겁게 차례차례 모든 물에 발을 담그며 가장 밑까지 내려왔다. 온천은 하얗기도 했고 옥빛이기도 했고 파랗기도 하다가 아래에 이르렀을 때는 주황빛을 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안탈리아에서 떠나올 때 터미널 도착하자마자 15분 후 출발 버스가 있어 바로 탔기 때문에 점심을 제대로 못 먹었다. 석회온천을 나와 바로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시켰는데 갑자기 불안해진다. 돌무쉬 막차시간을 미리 안 물어본 것이다. 검색해 보니 아무래도 9시 언저리가 막차일 거 같았다. 하나 더 있다는 글도 있었는 데 있어도 배차간격이 한 시간은 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음식포장을 부탁해서 가지고 정류장으로 서둘러 갔고, 정말로 10분 정도 후 오늘의 마지막 버스가 왔다.
급히 계산하고 오느라 단말기에 입력하는 금액을 못 보고 카드를 내밀었는데, 버스에서 한숨 돌리고 영수증을 보니 역시나 음료수 가격에 30리라 더 붙어 있었다. 고의인지 실수인지는 모르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