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렸을 적 사진을 보면 왠지 우리 엄마의 성격이 보이는 것 같다.
유치원 소풍을 가서 모두가 노란색 체육복을 입었을 때, 화려한 청록색 스타킹에 톤다운된 붉은색 바바리를 입은 나는 환하게 웃고 있다. 지금의 나처럼 덜렁걸리는 엄마는 분명 소풍날 체육복을 입혀야한다는 공지를 확인하지 못하고 그렇게 입혔을 텐데,사진에 입은 착장도 예쁘고 나는 무척 행복해보인다.
초등학교 2-3학년이 되었을 즈음에 어느 사진에 나와 동생은, 함께 각각 노란색, 주황색의 원피스를 맞춰 입었다. 한창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사춘기가 시작될 즈음이라 그런지, 밝은 옷도 꺼려지고, 더군다나 동생과 함께 원피스를 맞춰 입다니.. 입기 싫다고 거부했던 기억이 난다. 사진에는 예쁘게 차려입고 억지로라도 웃는 모습인데, 그 때의 그 옷을 입기 싫었던 이유, 예쁘게 옷을 입으라던 엄마의 다소 강압적인 목소리, 결국 말싸움을 하고 상했던 마음과 그 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기억난다.
지금의 나도, 나의 엄마처럼 덜렁거리기도 하고나의 아이에게 예쁜 옷을 입혀 다시오지 않을 아이의 어린시절을 기록하기도 한다. 일상에서도, 여행에서도 사진을 많이 남기는 편이다.아들이 자라서 훗날 어릴 적 사진을 볼 때, 항상 깨끗하게 유지하지는 못하지만 이왕이면 사진에 담긴 우리의 집이 정돈되어 있으면 좋겠고
아이가 단정하고 깨끗한 옷을 입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인데 우리 엄마도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호주에서 돌아와 사진정리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영상작업을 시작했다. 그간 많은 사진과 영상을 찍고 방치해둔 것들이 많은데 우리 가족에게 나름의 의미 있는 여행이라 편집을 해서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 일을 벌였다. 한참 작업할 영상을 고르고 골라, 호주의 모튼섬이란 곳에서 아름다운 석양을 배경으로 한 우리의 모습을 찾았다. 편집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이의 표정을 보며 그 때의 상황이나 감정들이 고스란히 기억나는 거다.
신나게 바다수영을 하고 리조트 숙소에 들어와 한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뒤 야생돌고래 먹이주기 체험을 하러 걸어가는 길이었다.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졌던 호주 바다와 석양을 배경으로 우리 가족의 소중한 순간을 남기고 싶어 잠시 발길을 멈추고 영상을 찍었다. 서둘러 돌고래를 보러 가고 싶었던 아이는 재촉했고,
나는 아이에게 해가 지는 모습을 보라며 돌고래로부터 관심을 돌리고자 노력했다. 이미 돌고래에 마음이 뺏긴 아이는, 잘 협조해주지 않았고 아름다운 순간을 눈으로도 잘 즐기지 못해서 나도 마음이 상했다. 42일간의 여행인 지라 매 순간 좋을 수만은 없어서, 기분좋게 먹자, 기분 좋게 가자. 라는 말을 수도없이 되뇌였던지라
금방 기분을 풀었던 갔던 기억이 났다.
영상을 편집하며 아이 아빠가 협조해주지 않는 아이에게 딱딱한 말투로 '엄마 말 들어. 사진 찍자. 이리와' 라고 얘기하는 모습을 봤는데.. 울컥하는 거다. 아이의 주눅든 표정을 보면서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할 수 있고, 장난치며 아이에게 권유할 수도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도 들고, 훗날 아이가 이 영상을 보며 어떤 감정을 느낄까. 나는 이 아름다운 영상을 보면서, 가슴벅찬 감정보다는 아이에게 계속 미안한 마음이 들겠구나 싶었다.
여행에는 사진만 남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 당시의 감정과 서사도 고스란히 기록되는 것 같다.
석양을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석양은 지나치더라도 아이가 편안한 감정을 갖는 게 더 중요했던 건데..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또 나는 오늘 밤 아이에게 사과를 해야지.
(그런데, 엄마도 너와 함께 석양을 보고싶었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