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2. 19. 방콕 국경 넘어 캄보디아로 가는 방법 연구
내가 태국을 한 달간 여행할 거라고 하니까 인문학을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이 말했다. 간 김에 국경도 한번 넘어보라고. 본인은 여행 시작점을 방콕으로 잡고 시작한다면서 나의 도전정신에 불을 붙인다. 그녀는 시인이며 사진작가이며, 강연자이기도 하다. 코카서스나 남미, 중국이나 몽골의 산맥들을 넘으며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고 돌아와 넋을 잃은 사람처럼 지내다 또 길을 떠나는 사람이다.
나도 국경을 넘는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유튜버의 동영상도 여러 번 보았다. 한 유튜버가 단 돈 1,700원으로 태국의 국경을 넘었다는 것이다. <아속 기차역>에서 탔다고 하는데, 우리 숙소가 아속에 있다 보니 나도 이런 것을 해보고 싶었다.
아속역 쪽은 유명한 호텔과 유흥가, 여행을 테마로 만든 대형 쇼핑몰인 터미널 21이 있다. 층마다 샌프란시스코, 일본, 이탈리아, 파리, 런던의 컨셉으로 그 나라 대표 물건이나 장식품이나 건축물의 모형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아속 터미널 21에서 기차를 편리하게 환승할 수 있다. 아속역 주변은 번쩍번쩍하고 시끌벅적하며 사람들이 떼 지어 몰려다니는 중심가이다.
아속 기차역이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호텔 지배인에게도 물어보고, 주변에 앉아 있는 젊은이들에게 <아속기차역>이 어디인지를 물어보았다. 그들이 알려주는 대로 가다 보면 결국 train station이 아니고 BTS (Bangkok mass Transit System) 아속역에 이른다. 이 근처라서 쉽게 찾을 줄 알았더니 아니다. 역무원에게도 물어보았다. 국경을 넘으려면 ‘월남뽕’에서 타라고 한다. 그렇게 들렸다. 사실은 <후알람퐁> 역이다. 인터넷 검색 결과 대부분은 <후알람퐁> 역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우린 남들 가는 대로 말고 좀 더 특별하게 가고 싶었다. 후알람퐁에서 타면 이쪽 아속에도 기차가 정차하니까 그 기차가 그 기차이지만 말이다.
(그때는 그 기차가 그 기차인 줄 몰랐다.) 후알람퐁에서 아속이 몇 번째 역일까?(3번째였다) 그 기차가 가는 경로를 알고 싶었으나 인터넷에서 알아내지 못했다. 그 유튜버가 탄 아속역을 보니 큰 고가도로 아래에 덩그러니 있는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폐허 같아 보였다.
거기가 어딜까? 난 아속역 근처 술집 앞에 무리 지어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유흥업소 아가씨들과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 남자 무리들에게, 안 무서운 듯 자연스럽게 접근했지만 등골은 오싹했다.) 그들 역시 BTS 역으로 가라고 말한다.
물어보다 지쳐 우리가 한번 찾아보자며 지상철도 교각 아래를 눈여겨보았다. 걷다 보니 철길이 보인다.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래도 철길을 따라가 보았다.
세상에나, 난 이런 데가 있을 줄 몰랐다. 그 철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천막 같은 가게들과 살림집들.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져 있긴 하지만 집안에서 워낙 촉 낮은 전구를 사용하고 있어서 흐릿하게 빛이 새어 나오는데, 그 속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지 깜짝 놀랐다.
이런 으슥하고 컴컴한 곳에서 지나치는 사람들, 집안에서 벌어진 틈으로 보이는 얼굴들을 보면서, 너 여기 왜 들어왔어! 하고 달려들 것 같은 느낌과 울퉁불퉁 자갈과 돌덩이가 많은 철로를 걷다 보니 힘도 들고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했다. ‘나가자 빨리 여기서 나가자’ 하며 방향을 바꿨다
남자 대여섯 명이 모닥불에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고 있다가 우리를 불렀다. ‘어 왜 부르지? ’ 가슴이 쫄밋쫄밋하다. ‘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데 설마 죽이기라도 하겠나’라며 마음을 다잡고 돌아보았다. '거기는 길이 막혔으니 이 앞으로 가라'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왔던 길을 돌아 나왔다. 휘황찬란하고 화려한 건물 뒤로 이런 어둠에 파묻힌 곳이 있을 줄은 몰랐다.
1,700원짜리 기차 타고, 특별하게 국경을 넘는 짓을 해보자는 계획은 포기하고 대부분사람들이 하는 대로 후알람퐁 역으로 가자고 정하고 가는 방법과 기차시간을 알아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태국 국경에서 캄보디아 국경에 도달할 때까지 걸어가야 할 구간이 있다. 검색을 해보니 짐을 들고 가기가 고생스럽다고 한다. (그다지 고생스럽지 않았다) 우리가 짐 걱정을 할 때 자전거 맨이 그랬었다. “짐을 맡겨놓고 가면 되지요.” 남편은 그 생각을 왜 못했을까 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은 듯 기뻐했었다. 그런데 어디다 짐을 맡겨야 되지? 몇 시간쯤은 호텔에 맡겨도 되지만, 일주일 정도를 맡아 달라고 해도 될까?
아속역 <터미널 21>의 3층 에어포텔에 짐 보관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냈다. 1주일 맡기려면 가방 하나당 보통은 750바트, 특별한 것은 1,000바트다. 우린 가방이 2개이니 6만 원이나 8만 원을 내야 한다. 비싸다. 호텔로 가서 알아보아야겠다.
호텔 카운터에 앉아 있는 직원에게 가방을 맡겨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기간을 말하려니 용기가 안 났지만 내쳐 말했다. 한 열흘이요. 호텔 지배인에게 물어보겠다고 한다. 30분쯤 후에 다시 내려가 물어보았다.
"지배인이 뭐래요?"
"가방을 맡아 주겠대요?"
괜찮단다.
“무료로요?” 하고 다시 한번 물어봤다.
"예."
양어깨에서 짐 덩이가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기쁜 마음으로 방에 들어가 최소한의 것만 배낭에 넣었다. 이거 하나 달랑 메고 다니면 된다. 이제 편하게 자자.
***방콕 아속역 근처 <로열익스프레스 > 호텔은 장기간이라도 가방을 보관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