톤레삽 호수, 리엘과 달러
2024.02.23. 톤레삽에서 리엘과 달러를 생각하다.
굉장히 오래전 이십 년 정도 전에 내가 근무하던 곳에 증권상품을 팔기 위해 어떤 사람이 왔다. 내가 공략하기 좋아 보였는지 나 한 테로 와서 상품 설명을 하며 날 코너에 몰아넣었다. 상대하기에 힘이 부쳐 그러시라고 하면서 ETF 상품 하나를 계약했다.
그녀는 얼마 후에 찾아와서 선물이라며 은행에서 갓나온 신권 캄보디아 화폐 한 장과 베트남 화폐 한 장을 투명하고 빳빳한 비닐봉투에 각각 넣어 주었다. 이걸 어디에 쓰라고 하면서 보관하다가 이번 캄보디아 여행 때 들고 왔다.
‘지금도 쓸 수 있는 돈일까?’
씨엠립에서 톤레샵 호수 투어 상품을 예약하면서 그 지폐를 내놓았다. 투명한 비닐 속 빠닥빠닥하고 말끔하고 멋진 지폐다.
“이 돈 받나요?”
그 젊은이는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이런 것은 어디서 났어요. 사용할 수 없는 돈이에요.”
그럴 것 같았다.
“그럼 이 돈 기념으로 가지세요.”
그는 서랍을 열더니 그것을 툭 하고 던져 넣었다.
요즘 몇 명의 영어친구들과 원서를 읽고 있다. 1861~1865년 간의 미국 남북전쟁이 배경이 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다. 흑인 노예무역과 대단위의 목화농장을 운영하며 귀족 같은 삶을 살아오던 미국 남부 사람들이 남북전쟁에서 패하면서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 자체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궁핍해진다. 북부연합의 화폐 (Greenback)는 귀한 몸값인 반면 남부연합의 화폐 (confederate bill)는 쓸모없는 휴지조각이 돼버렸다. 소설 속 주인공 스칼렛과 그녀의 유모는 가치도 없는 남부연합의 돈을 다락방의 구멍을 막는데 쓰겠다고 한다. 돈의 가치, 남부연합의 가치, 도덕의 가치, 인간성의 가치가 전쟁에서 패하면서 다 함께 붕괴되었다.
모든 것이 불타고 황폐화되고 가족도 흩어져 갈 곳이 없어진 윌(Will)이라는 상이군인이 종전이 되며 타라 농장에 오게 된다. 어느 날 그는 시내에 나갔다가 다른 식구들도 그 지폐를 보면 좋아할 거라며 남부연합 지폐를 한 장 꺼내든다. 그 돈 뒤에는 남부사람 누군가가 꼬질꼬질한 종이에 시를 적어 그것을 지폐뒤에 붙여 놓았다. Will은 그 시를 가족들에게 읽어준다.
“Representing nothing on God’s earth now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땅과 그 밑으로 흐르는 물에서도)
And naught in the waters below it-
(이제는 아무 가치를 지니지 못하더라도)
As the pledge of a nation that’s passed away
(사라져 간 한 민족의 상징으로 삼아서)
Keep it, dear friend, and show it.
(이것을 간직하라, 다정한 친구여, 그리고 보여주어라.)
“Show it to those who will lend an ear
이 하찮은 돈에 적힌 얘기에 귀를 기울이려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보여 주어라)
To the tale this trifle will tell
Of Liberty, born of patriots’ dream,
Of a storm-craddled nation that fell.”
(애국자의 꿈에서 탄생한 자유와 폭풍우에 휘말려 멸망한 한 민족에 대해서)
시를 듣고 감동한 스칼렛의 시누이 멜라니는 남부연합의 돈은 벽의 구멍이나 막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 돈에는 지나간 영광이, 역사가, 자부심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캄보디아의 최악의 지도자 폴포트가 4년간(1976-1979) 집권했을 때, “재산은 모두 평등하게 나누자”라는 개념으로 화폐의 사용을 폐지했다. 폴포트 정권이 붕괴되고 1980년에 캄보디아 화폐“리엘”이 부활되었지만, 일단 휴지가 되었던 통화의 가치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캄보디아 화폐 리엘의 가치가 불안정하고 믿음이 적어 물가가 하루하루 치솟으니 유엔에서 보다 못해 슬며시 미국달러를 같이 써 보라고 끼워주었단다. 그래서 그런지 캄보디아에서 달러사용이 일상화되었다.
사람 욕망의 정점에 있는 돈이 어느 시절, 어떤 상황에서는 인간이 겪는 흥망성쇠처럼 성했다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속에 애닮음이 있었다.
캄보디아에서 리엘이 아닌 미국 달러로 톤레삽 투어비를 지불했고 선상에서의 식사비도 달러로 냈다. 내 마음속에서 보는 캄보디아인들과는 달리 투어 가이드는 성의껏 안내하고, 시장 사람들은 조용하다. 톤레삽 마을의 꼬마들이 웃는다. 장난치고 까불고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