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배의 표류기는 항해일지로의 탈바꿈이 가능할 것인가?
스물 다섯, 첫 입사한 회사의 신입사원 연수에서 스스로를 사물에 빗대 서로에게 소개하는 활동이 있었다. 패기 넘쳐야 할 신입사원으로서 적절하지 않지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한강에 떠 있는 종이배에요"
자가 동력도 없고, 방향키도 없다. 목적지는 당연히 없다. 강물 따라 표류하면서 썩은 강물에 조금씩 젖어들어 가다가 바람 불면 뒤집히고 어디 강기슭 플라스틱 쓰레기 틈 사이에서 발견될 미래를 나도 모르게 그린 것 같기도 하다. 딱히 목표도 없이 취준에 지쳐서 도망치듯 입사를 결정한 본인의 무의식이 너무 정직하게 튀어나와버렸는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뱉고서도 참 꿈도 희망도 없다는 생각을 했지만, 너무 '나'여서 그 표현이 스스로 마음에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계속 종이배의 삶을 살아온 것 같다. 그 표류의 끝에서 신대륙을 만나게 될거라는 기대는 당연히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내 삶을 관통하는 가치는 '인과응보'였고, 그건 나에게도 남에게도 다르지 않았기에. 치열하지 않고 무얼 희망해야 할지도 모르는 내게 그런 건 당연히 '와서는 안되는' 결과물이었다.
그러니까, 어디 인생 강연 같은 곳에서 어느 대단한 사람이 나와서 "인생은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더라구요. 제가 이런 (성공한) 삶을 살게 될 지는 저도 몰랐어요." 하는 간증을 보더라도, 혹은 내 주변에서 진짜 본인도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성공적으로 표류를 마친 사람을 목격하더라도, 그들의 여정은 나의 표류는 다르고, 그들의 이야기가 결코 내 현실이 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밖에서 보면 어떨까?
나는 지금, 회사에서 수천억대의 돈을 투자하여 신규 진출하는 신재생에너지 관련사업의 첫 주재원으로 해외 지사에 파견되어있다. 나는 회사에서 해외지사에 파견한 최초의 미혼 여성이다. 우리 회사는 지구의 내일을 위한 사업을 하고 있고, 나는 그 회사의 내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일을 한다. 주중에는 열심히 일을 하고, 주말에는 강아지와 영국식 잔디밭이 예쁜 동네 공원에서 피크닉을 한다. 다음주면 2주간 스페인으로 여행도 갈 예정이다. 이미 모든 예약을 끝냈다. 띤또 데 베라노와, 타파스와, 빠에야와, 그리고, 그리고.
여전히 나는 무기력하고, 큰 병이 있으면 알면 무서우니까 그냥 모르고 죽고싶고, 내 미래에 행복이나 즐거움이 딱히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시간이 있으면 여행보다는 그냥 침대에 기어들어가고 싶고, 언제나처럼 무기력과 무망감의 욕조에 몸을 담그고 유치한 웹소설, 무의미한 폰게임으로 시간을 죽이고 싶다. 대단한 척 포장해서 써 놓은 회사의 일과 나의 역할도, 사실은 별 것 아니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돌아갈 것이고, 내가 아니어도 주재원은 차고 넘치게 많으며, 회사는 거대한 신재생산업 시장의 아주 작은 부품같은 존재다.
대단한 무대에 나와서 성공을 간증하고 있던 그 사람도, 그 강연의 끝에 집에 돌아가서는 가족과 싸우고 혼자 술을 마시면서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그 강연자의 불행을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여전히 '왜 사나', '왜 이러고 사나'가 입버릇이지만 회사에서 내게 '주재원으로 나가겠느냐?'고 물었을때는 가고싶다는 욕심이 들었고, 성공하고 싶은 욕망은 없지만 눈 앞에 일을 잘 못하면 속상해지는 자존심은 있다. 자기 모순은 부끄럽지만, 그게 사람이고, 또 이렇게 이율배반적이니까, 언젠가는 나도 이 종이배의 표류도 신대륙의 발견을 위한 여정이었다고 인정하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글로 남겨보기로 한다.
이 글은 한강에서 정처없이 유랑하다가 영국 동해안까지 흘러들어간 종이배의 현재진행형 표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