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바라보는 부모의 모습

인간관계의 본질은 결국, 이해하고 용서하는 데서 시작된다

by 인또삐


우리 삼남매는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나는 결코 같은 인생을 살지 않았다.


누나, , 그리고 동생.


최근, 삼남매가 모인 어느 , 나는 부모님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꺼냈다.
내게는 여전히 마음 한켠에 자리한 엄마에 대한 아쉬움과 바람이 있었지만, 놀랍게도 누나와 동생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같은 부모, 같은 시간(출가전까지), 전혀 다른 감정.
사실이 나는 충격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확신하게 됐다.
관계는 경험보다 해석이 다르고, 해석은 결국 물리적, 정신적 거리에서 비롯된다.

어릴 땐 부모가 삶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출가 후, 우리는 각자의 삶에 매몰되어 부모라는 존재는 점점 배경이 된다.
형제자매 사이도 마찬가지다.
같이 자랐던 기억은 남아 있지만, 그 기억을 바라보는 눈은 인생의 무게에 따라 제각각 흔들린다.
어느 순간, 가족이 가장 멀고 낯선 사이가 되기도 한다.
그 사이를 벌리는 건 시간도, 거리도 아닌 ‘욕망’이다.
더 가지려는 마음, 더 인정받고 싶은 마음, 덜 손해보고 싶은 마음.
이 끝없는 ‘더’는 관계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그 ‘더’를 멈출 수 있는 힘도 우리에게 있다.
시작은 용서다.

용서는 특별한 사건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삶 전체를 놓고 볼 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주고받는다.
무심했던 말 한 마디, 알아차리지 못한 외로움, 기대와 실망의 교차점들.
이 모든 것을 되짚고 바로잡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끌어안는 건 가능하다.


그게 용서다.


부모를 향한 용서, 형제를 향한 용서, 그리고 가장 먼저 필요한 나 자신에 대한 용서.

우리의 부모 세대는 그들 또한 부모로부터 충분한 이해와 사랑을 받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그 흐름을 멈춘다면, 다음 세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자식은 부모를 닮고, 부모의 태도는 자식에게 전해진다.
내가 품는 에너지가 결국 가정을, 사회를 바꾼다.

이제 우리는 서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내가 지금 이 관계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은 무엇인가?"
꼭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도 좋다.
안부 전화 하나, 따뜻한 말 한 줄, 평소에 먼저 찾아가는 발걸음.
관계는 그런 사소한 시도로도 다시 살아난다.

우리는 더 이상 ‘자식’이라는 이름만으로 부모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없는 나이다.
그리고 ‘형제’라는 이유만으로 가까울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다.
이제는 우리가 관계를 선택하고, 책임지고, 만들어가야 시간이다.

그 시작은, 이해가 아니라 용서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용서는 상대가 아닌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될 때 비로소 진짜다.
지금 내가 바꾸면, 그 변화는 나의 아이들에게, 그 아이들의 관계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좋은 가족, 건강한 사회는
결국 누군가의 작은 용서로부터 시작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강과 언덕 사이에는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