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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되면 집 안의 공기가 조금 달라진다.
아들이 친구들을 데려오기 때문이다.
국적도, 언어도, 성장 배경도 제각각인 청년들이
우리 집 식탁에 앉는다.
그 풍경만으로도 이미 작은 세계가 열린다.
이번 겨울엔 스위스에서 온 친구가 도착했다.
프랑스어를 쓰는 알프스 청년.
첫인상은 유난히 조용했고, 인상적이게도
대화 내내 웃음이 얼굴에 붙어 있었다.
억지 웃음이 아니라,
웃고 있는 상태가 기본값인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는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도 그곳에 산다고 했다.
집 근처엔 포도농장이 많고,
가족은 얼마 전까지 와인 비즈니스를 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만두었지만
그 이야기를 하는 그의 얼굴엔
아쉬움도 불안도 없었다.
“그 시절도 좋았어요.”
딱 그 정도의 온도였다.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느꼈다.
이 친구는 경쟁보다 리듬을 먼저 배운 사람이라는 걸.
웃음이 많다는 건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웃음을 잃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자랐다는 증거다.
그의 얼굴은
말보다 더 많은 걸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우리나라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늘 바쁘고, 늘 불안하고,
웃고 있어도 어딘가 급한 표정들.
개인의 노력이나 성격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만남을 집 안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건
분명 행운이다.
세계는 뉴스로만 만나는 게 아니라
식탁 위 대화 속에서도 열린다.
그리고 비교가 아니라
성찰이 찾아온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언제부터 이 나라는
아이들과 청년들이
편안히 웃기 어려운 곳이 되었을까.
스위스에서 온 그 친구는
한국 사회에 대해 아무 평가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편안한 웃음 하나가
우리 사회에 꽤 많은 질문을 남겼다.
좋은 환경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먼저 가르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