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학 후 20년, 해커에서 컨설턴트에서, 그리고 교수로, 한국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1막. 10대 때 컴퓨터를 처음 접함.
컴퓨터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내 기억에 초등학교 6학년 때였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1년 동안 태권도 다니다가, 급작스럽게 몸이 아파서 태권도를 더 이상 하지 못하고, 태권도 학원 바로 위층에 있는 컴퓨터 학원을 다녔습니다. 1993년이었는데, 그때 DOS로 부팅하면서 DBASE, LOTUS 등을 배우면서 간단한 고인돌 게임도 하면서 컴퓨터와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부팅 로그를 변경시켜 보는 것을 재미 삼아 컴퓨터에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컴퓨터를 구입했습니다. 중1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286 컴퓨터를 보여주면서 5.25인치 CD 수십 장을 넣어야 게임이 하나 시작되는 시절이었지만 당시 300만 원 가까이 주고 샀다는 친구의 말에 정말 부러워했습니다. 고2 때 성적이 좋으면 사준다고 하셔서 성적을 잘 받고, 어렵게 컴퓨터를 구입하고는 대항해시대, 삼국지 등 게임을 하면서 컴퓨터와 다시 한번 친해졌습니다.
하지만 당시 컴퓨터는 하나의 취미였을 뿐, 고등학교 때의 꿈은 천체물리학자나, 고고학자, 그리고 그림을 좋아해서 애니메이터 같은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평소에 수학을 너무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어서 수능 때도 수학은 시험 시간 내에 3번이나 풀고, 운 좋게 만점을 받았습니다. 당시 지방에 살았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대학교는 견학 갈 상황이 안되었습니다. 천체물리학을 공부하는 곳을 알아보니 몇 군데 없어서, 고민 끝에 당시 IT 붐이 일어나던 1999년 후반이라 컴퓨터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인공지능 로봇이 와서 기분 좋은 음악으로 나를 깨워주고, 엄청 큰 화면 스크린에 하루 날씨와 하루 일과, 뉴스 등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인공지능을 공부하고 싶어서, 인공지능을 가르치는 대학을 알아보고 수시 특채로 지원을 했습니다. 당시 정시/수시 개념도 잘 몰라서 수시로 넣으면 정시를 못 친다는 것도 모른 채 수시로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하게 되어서 서울로 상경하여 유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2막. 20살, 인공지능의 벽과 네트워크 세계, 해커의 세계로 풍덩
20살, 서울에 유학 와서 컴퓨터를 공부하면서 인공지능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2000년 당시 인공지능을 공부하려면 최소 석사 이상은 나와야 된다는 것을 알았고, 당시 인공지능 수준이 로봇에 대한 움직임을 앞에 장애물이 있으면 인식해서 움직임을 자동으로 변화시켜 주는 수준이었습니다. 석사를 할 상황은 되지 않아서 자연스레 뭘 할까 하다가 네트워크 수업을 듣고 꽤 흥미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교양 과목에서 자유 주제로 발표를 하게 되었는데, 당시 해킹, 해커라는 것을 우연히 접하고, 해커에 대해 조사해서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찾아보면서 알게 된 것은 해커는 인터넷을 자유롭게 하는 사람들이고, 컴퓨터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을 가지고 깊이 탐구하는 사람들이고, 대의명분을 위해 시스템을 해킹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에 매우 강하게 끌렸습니다. 또한 당시 KAIST 드라마가 한참 유행했는데, 그때 지금은 돌아가신 考이은주 님이 드라마에서 해커로 나왔는데 당시 수업 중에 교수가 그분에게 “자네는 해킹을 왜 하는가?”라고 물었을 때 그분께서 “저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너무 멋져서, 그래 이거다! 하면서 해킹이라는 것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3막. 21살, 국내 최고의 언더 해커그룹에 가입
그런데 당시 300여 명의 동기(120명은 미디어과, 180명은 컴퓨터) 중 해킹에 관심이 있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동기 2명과 학교에서 해킹 동아리를 만들려고 하던 참에, 대학원에서도 해킹동아리를 만든다고 해서 친구 2명과 같이 조인해서 처음으로 교내 해킹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네트워크부터, 보안솔루션까지 공부하다가, 인터넷으로 당시 유명한 네이버카페 해킹포유, 해자모 등을 알게 되어 활동을 열심히 했었고 거기에서 만난 친구와 우연히 중앙대에서 열린 제1회 Free Hack 세미나를 알게 되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2001년에 열린 Free Hack 세미나에서 덩치 큰 어떤 4명이 똑같은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옷 뒤에는 해커 선언문이 적혀 있었고, 굉장히 멋져 보였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저 사람들 뭐 하는 사람인지 물어보니, Null@Root라는 해커그룹 멤버들이라고 해서, 멋져 보여서 Null@Root에 가입을 해보려고 했습니다. 당시 해커들은 해커스랩이라는 drill 서버에 해킹문제(BOF, FSB, Race condition 등)를 풀면서 각자의 해킹 스킬을 뽐내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2001년 봄에 Null@Root에서 신입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친구와 함께 지원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20문제가 객관식이었는데 문제 중 하나가 해커스랩 명예의 전당(17문제를 모두 푼 사람)에 등재된 사람 중 10위 안에 드는 Null@Root 멤버는 모두 몇 명인가요?라는 질문도 있었는데 거의 6명인가 7명이 그 안에 들 정도로 실력이 국내 최고의 그룹이었습니다. 당시 친구와 함께 Null@Root에 들어가서 BOF부터 해서 웹 보드 해킹까지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그때 일반인과 해커의 경계에 선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