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에서의 연말 마지막 밤.
우리는 오전 7시 50분까지 바티칸 입장하는 곳 앞에서 보기로 했는데, 갑자기 성 베드로 대성당 문 닫는 시간이 변경될 수 있어서 급하게 가이드가 성 베드로 대성당 앞에서 모이자고 했다. 아침 7시에 조식을 가볍게 먹고, 조식 음식 종류가 많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배를 채울 정도는 됐었다. (1월 5일 머물렀던 로마 iQ 호텔 조식은 정말 좋았다).
성 베드로 대성당 먼저 봤는데 정말 웅장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광장에 있는 기둥은 총 토스카나식 기둥 284개와 벽에서 돌출된 기둥 88개로 이뤄져 있다. 기둥들 위에는 140개의 성인 조각상이 있다. 이 기둥들을 만들 때 콜로세움에서 가져와서 성 베드로 대성당의 광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콜로세움을 지을 때도 당시 자금이 부족하고 재료가 없어서 이스라엘을 침략해서 이스라엘에 있는 대성당에 있는 대리석을 떼내서 만들었다고 하니. 지금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대리석들은 이스라엘에서 건너온 것이구나. 바티칸 박물관은 이탈리어어인지 라틴어인지 모르겠지만 MVSEI VATICANI이라고 복수의 단어를 썼는데, 박물관들이 여러 개가 있는 것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구경 시간은 약 20여분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 주어졌다. 성당의 가운데 문은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어서 오른쪽 문으로 들어갔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가서 오른쪽에 있는 조각상이 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인데,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조각한 피에타이다. 피에타가 제작된 연도는 1498~1499년이다. 예전에 미치광이가 피에타 위에 올라가서 성모 마리아 조각상을 망치로 부수는 만행을 저지르는 바람에 지금은 방탄유리와 대리석으로 입구가 막혀서 멀리서 밖에 볼 수 없게 돼있었다. 피에타 (Pieta)는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무릎에 안고 슬퍼하는 광경을 표현한 작품이다. 여러 예술가들이 피에타를 조각하거나 그렸는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그중에서도 두드러지게 뛰어난 작품이다. 성 베드로는 예수로부터 천국으로 가는 열쇠 2개를 받은 성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림에서 열쇠 2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오면 성 베드로라고 가이드가 알려줬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웅장하게 만들어져 있었고, 가운데 가장 큰 곳은 교황이 미사를 하는 곳이라고 했다. 작품들이 많았지만, 다 이해할 수는 없었고 시간도 많이 없었기에 전체적으로 둘러보고 나왔다.
성 베드로 대성당을 구경하고 나서 바티칸 박물관 입구 쪽으로 돌아가서 (우리 호텔 앞으로 다시 돌아와서) 박물관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먼저 가이드가 미술품들을 먼저 설명해 줬는데, 중세 이전 밋밋한 그림들과, 예수 중심으로 그려진 그림들부터,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을 설명해 줬다. 초기 르네상스 그림들부터는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그림들, 그리고 입체 감이 있는 그림들이 그려졌다. 당시 페스트와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신에게 의지하던 인간들이 신이 아닌 인간이 중심이 되는 개념을 가지면서 인간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페스트로 주변 가까운 사람들이 죽어가고, 신부님께 기도해 달라고 했는데 신부님도 다음날 사망하고 하니, 사람들은 신에게 의지하는 것에서 인간 중심으로 바뀌었다고, 그래서 이 당시부터 의학기술도 발전하지 않았나 싶다. 예전에는 병에 걸리면 그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질병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해 볼 생각을 하지 않은 게 아닐까. 그리고 중세 암흑기라고 하는 말은 11-13세기 경쯤으로 모든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이 종교 중심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르네상스라는 말도 다시 돌아가다는 말로, 다시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었 다고. 이슬람 지역이 1979년부터 2020년대까지 약 40년간 어떻게 보면 이슬람 암흑기라고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르네상스 작품들을 구경하고, 후기 르네상스 작품들, 그리고 바로크 미술을 설명 들었다. 르네상스에서는 성인들이 죽는 모습도 비현실적인데, 당시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지으면서 자금이 바닥나서 면죄부를 발행하면서 돈을 거두는 것을 본, 루터가 가톨릭을 반박하면서 신생 종교 개신교가 탄생하게 된다. 그래서 성당에서 멀어저가는 신도들을 다시 붙잡기 위해 고통스러워하는 예수와 성인들의 그림들을 그린게 바로크 미술의 특징이라고 한다. 또한 그림에서 명암이 선명하고, 그림에서 광채가 나는 느낌의 그림들은 바로크 미술의 특징. 바티칸 박물관에는 라파엘로의 작품이 상당히 많고, 라파엘로의 방이 따로 있다. 그리고 사진을 유일하게 찍지 못하게 하는 곳이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화.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Sistine Chapel ceiling이라고 한다. 천장화 가운데 중요한 9개 그림 중 한 개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천지창조다. 빛과 어둠이 탄생하는 장면부터 노아의 방주까지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1508년 시작해서 1512년에 마무리가 되었다. 원래 미켈란젤로는 화가가 아니라 조각가가 본 인의 전문분야였다. 시스티나 대성당의 미켈란젤로 천장화까지 보고 투어는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오후에 피렌체로 가는 기차를 타고 피렌체로 이동했다.
2022년의 마지막 날 오후 우리 가족은 italo(이딸로)를 타고 피렌체로 이동했다. 트랜이탈리아는 지정 좌석이 아니고 시간을 보고 아무 데나 오면 타는 형태였는데, 이딸로는 정해진 시간과 칸, 그리고 좌석 번호가 있었다. 그리고 타고나서 음료수와 간단한 과자를 받았다. 약 2시간 반 정도 기차 타고 피렌체 산타 마리나 노벨라(S.M.N) 역에 도착했다. 우리가 예약한 곳은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곳이었다. 나쁘진 않았는데, 다음에는 작더라도 조식이 나오는 호텔을 예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아침 먹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고, 7시 30분에 문을 연 가게들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 8시나 10시에 문을 열었다. 그래서 아침을 못 먹거나 부실하게 먹고 하루를 시작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난방비 문제로 온도를 22도 이상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집주인이 이야기했다. 집은 가족 4명이 지내기에는 꽤 괜찮았다. 안 방에 큰 침대 하나, 거실에 소파 겸 침대가 있어서 넓게 잠을 잤다. 요리하는 곳도 중간에 있었다. 욕조가 없는 게 좀 아쉬웠다.
짐을 풀고 피렌체를 구경하기 위해 동네를 나섰다. 조금만 가니, 약 7분 정도, 바로 그 유명한 두오모 대성당이 눈앞에 펼쳐졌다. 밤에 보니 정말 근사하고 이뻤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크리스마스트리까지 너무 예뻤다. 피렌체의 두오모 대성당은 메디치 가문이 마지막 대성당의 쿠폴라를 부르넬리스키에게 의뢰해서 완성함으로써 더욱 유명해졌다. 우리는 피렌체에 5일을 머무르기로 했다. 첫 째가 보고 싶어 하는 피사는 피렌체에서 1시간 거리에 있고, 로마에서 피사까지는 3-4시간을 또 가야 하기 때문이었 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피렌체 3일 또는 4일 하고, 로마를 3일 이상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여행 동선과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데 너무 많은 이동은 피곤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피렌체에 좀 오래 머물렀다.
첫날이라 피렌체 야경을 보고, 역시 젤라토를 사 먹었다. 그리고 와이프가 친구한테 추천받은 비스테까 알레 피오네라네(한국에 서는 티본스테이크로 잘 알려져 있지만 공식 이름은 비스테까 알레 피오네르네다) 식당인 자자 ZaZa에 갔다. 줄이 꽤 있었는데, 운 좋게 들어갔다. 다행히 한해의 마지막 날 저녁을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와인과 스테이크를 같이 먹으면서 한해를 가족과 함께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