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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Kim Dec 29. 2023

2022-23 이탈리아 가족 여행 #3. 1/1일

피렌체(Firenze)/플로렌스(Florence), 미켈란젤로 언덕

피렌체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에 와이프와 아이들은 잠을 잤다. 밖에서는 전쟁이 난 것처럼 폭죽 소리가 엄청났다. 기사를 보니 매년 코로나 이전에 사재 폭죽 터트리다가 유럽에서 여러 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봤다. 정말 유럽에서는 자정의 종소리는 없지만, 자정의 폭죽 행사 때 나가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야의 종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가족과 함께 피렌체에서 새해를 맞이할 수 있는 것에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보티챌리, 미켈란젤로, 기베르티 등은 노예가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가문을 만들지 못하고 자손을 만들지 못하고, 가문과 교황으로부터 후원받아서 생계를 유지하며 오직 그림과 조각만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산 것이 아닐까, 후대에 와서는 그 영광스러운 작품들이 사람들에게 빛을 보고 있지만, 항상 그 뒤에는 메디치의 후원과 교황의 후원에 의한 것이라는 말이 따라다니고. 그들은 가족을 만들지 못하고 한평생 일만 하면서 산 것은 아닐까?


로렌초 기베르티(1378-1455)는 두오모 대성당의 천국의 문을 조각한 것으로 유명하다. 경쟁자인 브루넬리스키와 경쟁에서 이겨서 천국의 문을 제작하게 되었다. 기베르티의 어머니 피에로 기베르티는 1370년 첫 남편인 시오네 디 세르부오나코르소 기베르티와 결혼했고, 기베르티는 1378년경 이탈리아 피렌체 외곽의 펠라고에서 태어났다. 이렇게 알려져 있다. 하지만 피에로는 피렌체로 이사 와서 내연의 남편인 금세공자 바르톨로 디 미켈레와 함께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르톨로 디 미켈레는 바르톨 루치오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바르톨로는 어린 로렌초를 그의 작업장에서 금세공사로 훈련시켰다. 기베르티는 자신을 바 르톨로의 아들로 생각한다는 것을 나타내며 로렌조 디 바르톨로, 로렌조 디 바르톨로 미켈레, 로렌조 디 바르톨루치오라고 그의 이름을 다양하게 서명했다. 하지만 어떨 때는 자신이 시오네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1444년 그가 사생아로 공직에 오를 자격이 없다고 비난받았을 때, 그의 출생을 둘러싼 혼란은 그의 경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400년, 흑사병이 유항할 즈음, 기베르티는 “공기의 부패와 도시의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피렌체를 떠나서 이탈리아 북부 리미니로 이주한다. 청동 문(1403-24)과 천국의 문(1425-52)을 제작한다. 두 작품 제작에 각 21년과 27년 총 48년을 혼을 담아 제작한 작품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는 사생아로 태어났다. 다 빈치라는 말은 ‘빈치 마을 출신’이라는 뜻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아버지는 빈치 마을에서 5대째 공증인으로 일하던 피에로였다. 피에로는 약혼녀가 있었지만 여름휴가 때 약혼녀와 동갑내기 고아인 카테리나와 하룻밤 불장난으로 혼외 자식을 낳았다. 이 아이가 레오나르도였다. 로렌초 기베르티도 사생아였다. 레오나르도는 은둔형 괴짜가 아니었다. 동시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금발 곱슬머리에 빼어난 미남인데다 친근하고 품위도 있어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았다. 사교성도 좋은 미남이었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교제한 여인도 없었다. 이성 간 성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교접 행위와 거기에 사용되는 신체 기관은 너무도 역겨우므로, 얼굴의 아름다움과 행위자들의 치장과 억눌린 충동이 없다면 자연은 인류라는 종을 잃게 될 것이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는 1564년 88세로 사망할 때 미켈란젤로의 손을 잡고 있던 사람은 중년 남성 톰마소 데이 카발리에리(1509-1587)이었다. 톰마소 데이 카발리에리는 미켈란젤로의 ‘불멸의 연인’이었다. 1532년 57세의 미켈란젤로 눈앞에 신기루처럼 등장한 23살의 귀족 청년 톰마소는 아람다움의 헌신이었다. 미켈란젤로는 톰마소에게 수많은 연애편지를 쓰고 헌신도 지었다. 하지만 당시 피렌체에서 동성 간 성행위는 범죄였고 사형도 받을 수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그가 쓴 시에 마음을 통제하려고 노력한, 길고도 절망적인 싸움이 잘 묘사되어 있다. “만약 내 눈을 멀게 하는 이 지극한 아름다움이 곁에 있을 때 내 심장이 견디지 못한다면, 또 그 아름다움이 멀리 있을 때 내가 자신감과 평정을 잃는다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떤 안내자와 호위자가 있어 나를 지탱해 줄 것이며, 다가오면 나를 태워버리고 떠나면 죽게 만드는 당신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것인가?”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미켈란젤로의 유산은 조카 레오나르도가 물려받았다. 물론 여기 레오나르도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아니다.


산드로 보티챌리(1445-1510)는 서양 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프리마베라(Primavera)를 그렸다. 프리마베라는 고전 신화에 나오는 일련의 인물들을 정원이나 삼림지대에서 묘사하고 있다. 중심인물은 사랑의 여신 비너스일 가능성이 높고, 3 미신들이 그녀 옆에서 춤을 춘다. 그리고 꽃의 여신 클로리스는 오비디우스에서 묘사된 신화를 울려 퍼지면서 플로라로 변신하기 전에 서풍의 형상에 쫓긴다.


로렌초는 경영에는 재주가 없었다. 1472년 런던 지점이 파산했다. 이후 1478년 밀라노 지점, 1480년 브뤼헤 지점, 1481년 베네치아 지점이 파산했다. 코스모가 물려준 유럽 전역의 16개 은행 중 15개가 파산했다. 1492년 5월 로렌초가 43세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 메디치 은행도 피렌체 본점 하나만 남았다. 본점도 로렌초가 사망한 지 2년 후 파산했다. 이후 피렌체의 르네상스도 함께 쇠퇴하기 시작했다. 로렌초가 사망한 해인 1492년에 스페인에서는 레콩키스타를 완성했고, 그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다.


예술가들이 살아 숨 쉬던 피렌체에서 새해의 아침을 보기 위해, 어제 일찍 잠든 덕에 일찍 일어났다. 6시가 안돼서 일어났고, 정보를 보니 7시 48분에 일출이 있었다. 피렌체는 일출을 보기 위한 마땅한 장소가 없다고 해서 우리는 가장 높은 미켈란젤로의 언덕에 오르기로 했다. 아침은 나가는 길에 먹을 예정이었고, 미켈란젤로의 언덕까지 약 30분 걸리기 때문에 중간 지점에서 먹을려고 했다. 집 가까운데 7시 조금 넘어서 문을 연 곳이 2곳 있었지만 지나쳤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첫 번째 가게는 젊은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좀 경계했고, 두 번째 가게는 그냥 지나쳤다. 구글 맵에 오픈되었다고 하는 가게에 갔는데 문이 닫혔고, 몇 군 데 갔는데 모두 문을 닫았었다. 첫날이라서 그런가 7시 반이 지나도 문을 연 곳은 별로 없었다. 베끼오 다리 쪽으로 가는 길에 새 해 자정의 흔적이 여실한 지 거리에는 온통 깨어진 병들과 쓰레기들로 난무했다. 베끼오 다리에 도착하니 하늘이 밝아지고 있었고 일출과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배고파하고, 가게들은 문 닫고 해서, 미켈란젤로의 언덕까지 가는 건 다른 날에 가자고 했다. 결국 너무 허기져서 다행히 8시쯤 오픈한 가게에 들어갔다. 빵과 커피 등 음식을 시키고 조그마한 테이블에 앉았 는데 음식마다 자릿세가 붙어서 20유로가 나왔다. 그리고 일단 집으로 철수했다.


오전 10시쯤 다시 숙소에서 나왔다. 유명한 산타 마리아 노벨라 향수를 사러 나갔다. 구글 맵에는 오픈되었다고 했는데 갔더니 문이 닫혀있었다. 1월 1일이라서 쉬나 보다. 그래서 시내 구경하고, 시뇨리타 광장으로 갔다가 아이들 회전목마 타고, 젤라토 사 먹고, 점심 먹고 다시 숙소로 왔다. 숙소와 시내가 가까워서 좋긴 하지만, 걷는 거리가 꽤 되었다. 일출을 제대로 못 봤으니 일몰이라도 보려고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다시 도전했다. 버스도 있었는데 정보를 미리 준비하지 못해서 그냥 걸어가기로 했는데, 역시나 쉽지 않았다. 겨우 낑낑대며 언덕을 올라 숙소에서 약 40분 걸려서 도착했다. 그런데 정말 멋진 전경이었다. 야경을 보고, 버스킹도 하는 것을 봤다. 피렌체 시내가 다 보였다. 작지만 아름다운 도시였다. 저녁엔 예약한 식당에서 비스테까 알레 피오네 티나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LOCANDA FIORENTINA라는 곳이었다. 이렇게 2023년의 첫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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