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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드로스치 May 21. 2024

전생(1)

“아기집은 보이는데, 아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계류유산입니다.”


의사의 말에 혜림은 고개를 푹 숙였다. 착상이 되었다며 좋아한 게 불과 이주 전이었다. 듣고 싶은 것은 아기의 심장 소리였는데… 빈 아기집이라는 소리에 혜림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수술은 간단했다. 잠시 눈을 감았을 뿐인데 이미 수술은 끝나고 혜림은 처치실에 누워 있었다.


“이혜림 씨, 좀 더 누워계세요. 많이 우셔서 힘드실 거예요”


“제가 울었나요?”


“네, 마취가 다 풀리기 전까지 많이 우셨어요.”


간호사는 뭔가 말을 더 하려다 말고 혜림의 손을 잡고 토닥였다. 

혜림은 자리에 좀 더 누워있다가 일어나며  자신의 납작한 배를 쓰다듬어 보았다.

괜찮다. 괜찮은데… 혜림의 손위로 눈물 방울이 툭 하나 떨어졌다. 나… 괜찮지 않구나.


“이제 그만하자.”


그날 저녁 혜림의 입에서 나온 말에 영조는 눈을 크게 떴지만 곧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여보… 이제 못하겠어. 나 이제 그만할래. 우리 그냥 이렇게 살자…”


“그래, 혜림아. 난 괜찮아… 우리 둘이서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어.”


혜림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영조의 손에 혜림은 참았던 눈물을 또다시 툭 하고 떨어뜨렸다. 


“그만하겠습니다. 이곳에 오니 다시 기억이 나네요. 분명히 아직 때가 아니라고 아신 거 압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아기집에 아기가 안 들어옵니까?  때가 오기는 오는 겁니까?”


영조의 거친 말에 혜림이 조용히 영조의 손을 잡았다. 영조는 다시 입을 떼려다 말을 잇지 않고, 못마땅함에 고개를 돌렸다. 

삼신은 대답 없이 따뜻한 차를 우려 영조와 혜림 앞에 조용히 내밀었다. 영조는 차를 보고도 못 본 척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었지만 혜림은 망설이다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편안함을 주는 차입니다.”


삼신의 말에 혜림이 영조에게 찻잔을 내밀었다. 영조는 혜림의 부드러운 표정을 보고 마지못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하고 달콤한 기운이 혀끝을 맴돌 도니 몸속 구석구석에 퍼지기 시작했다. 화가 난 마음이 가라앉으며 기분이 차분해졌다. 영조는 찻잔을 내려놓고 다시 삼신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부부의 인연을 맺고 그저 아기가 때가 오면 오겠지 기다린 게 5년, 노력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좋다는 약 먹고 검사하고 둘 다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에  인공수정 등을 하며 보낸 게 3년 , 그리고 이제 시험관 아기까지 하는 것마다 실패하고 기다리는 아기는 오지 않고 이 사람과 저 몸은 몸대로 축나고 지칩니다. “


영조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삼신님, 냉정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에게 점지될 아기가 있긴 한 겁니까? 의사들은 저희 둘 다 문제가 있으니 그냥 포기하라는 데, 이곳에 올 때마다 삼신님이 아기가 있다고 하시니, 기억은 잊어버려도 저희 의지가 남는 건지 저희는 또 매번 그렇게 노력을 했네요. 그냥 삼신님께서 아기가 없다고 이야기해 주시면  저희도 의지를 잃고 더 이상 노력하지 않을 거 같은데… 그냥 사실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삼신은 영조와 혜림의 눈을 마주치고 빙긋이 웃었다. 순간 삼신의 청록빛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고 영조와 혜림의 눈에 사극에 나올 법 한 옛 복장을 입고 집 마당에서 놀고 있는 세명의 어린 형제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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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것이라고요?”


“네, 논님이 쓰세요. 어디에 쓰시던 그건 논님의 마음입니다. “


논은 삼신에게 건네받은 작은 유리병을 가만히 바라봤다. 유리병 안에서 선명한 주홍빛이 반짝거렸다. 3 삼신국에 다녀오며 가져온 영혼의 빛 중 가장 증폭률이 높은 빛이라 했다. 10배가 되지는 않아 새로운 영혼의 씨앗을 창조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깨진 영혼의 씨앗을 붙이기에는 충분할 양일 것이라고… 논은 삼신의 설명을 다시 기억하며 유리병을 만지작 거리고는 깨진 씨앗이 들어있는 다른 유리병옆에 나란히 두었다. 


“흠.. 흠"


뒤에서 나는 인기척 소리에 돌아보니 플로피가 문 옆에 서 있었다.


“ 논, 아직 결정이 안 섰나?”


“그냥 붓기만 하면 되는데…”


“아니다. 결정은 논이 한다. 너는 끼지 마라"


플로피 세 머리가 서로 투닥거리는 소리에 논은 가벼운 웃음이 났다.


“아니야, 마음의 결정은 섰어. 내 잘못으로 깨진 거니 붙이긴 할 거야… 다만…”


“다만?”


“내 마음이 편하지가 않아서… 전생의 기억이라곤 부모에게 학대받은 찰나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것뿐인데… 그런데도 왜 이렇게 미운 마음이 계속 드는 걸까? 전생의 기억을 다 찾으면 이런 미움이 아무것도 아닌 걸까? 그리고 그 이전 삶까지 기억한다면 이렇게 밉고 아픈 이 마음이 정말 코딱지만큼 작은 것일 텐데… 그런데도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내가… 좀 싫어서 그래…”


플로피는 논에게 다가와 아무 말 없이 논의 몸에 살짝 기대었다. 왼쪽 머리 플로피가 논의 몸에 얼굴을 부비 데었다. 말없이 괜찮다고 위로하는 플로피의 모습에 논은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논은 플로피의 왼쪽머리를 꼭 껴안고 고맙다 이야기하고 다른 머리들도 하나씩 껴안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참, 논 지금 상담 시간 아닌가? 삼신님은 어디 계셔?”


“오늘은 삼신님 혼자 들어가셨어. 전에 내가 말했던가? 십 년을 넘게 삼신님을 찾아오신 부부가 있다고. 그분들 내가 이곳에 온 뒤로도 벌써 세 번째 찾아오신 거야. 왜 기다리라고만 하고 아기를 점지해 주지 않으시는 걸까?”


가운데 플로피가 책상 위의 유리병 속에 깨진 씨앗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삼신님이 점지된 아기가 없다고 하면 그들에겐 아이가 없는 거다. 하지만 삼신님께서 기다리라고 하셨다면  때가 아직 안 온 거다. 논, 너에게도 저 씨앗에게도 때가 필요했던 것처럼 그분들에게도… 우리에게도 다 때가 필요한 거다.”


가운데 플로피를 따라 논과 다른 플로피들도 책상의 씨앗을 가만히 바라봤다. 씨앗 옆의 유리병에서 주황빛이 춤을 추듯 움직이며 밝게 빛났다. 빛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가운데 플로피가 조용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논, 우리는 전생의 삶이 딱 한번 있었다고 이야기했던가?”


“아니 한 번도 너희 전생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 없어. 플로피, 너희들도 인간이었어?”


논의 질문에 플로피 세 마리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논은 미소가 절로 났다. 


“이야기, 듣고 싶어. 긴 이야기엔… 과자가 필요하겠지?”


논의 말에 플로피가 꼬리를 사방으로 흔들며 세 마리가 침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논은 디아가 챙겨준 쿠키와 음료를 꺼내서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플로피 세 마리의 입에 쿠키를 하나씩 넣어주고 시원한 주스를 마신 후 가운데 머리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세 형제였다.

삼신님이 우리를 점지할 때 우리는 영혼의 씨앗이 아닌 이곳에서 살고 있는 말라크들이었지. 자연에서 저절로 시작된 우리는 빛과 바람 그리고 물의 모습으로 이곳에 살고 있었다. 인간의 삶을 살아보고 싶었던 우리는 삼신님에게 이야기해서 세 형제로 태어나기를 원했지. 첫해에 내가 먼저 태어났고 그다음 해에 오른쪽 플로피가 그리고 이 년 뒤에 왼쪽 플로피가 태어났다.”



“어머님, 형님들이 안 놀아 줍니다. 저도 놀고 싶은데 어리데요.”


아직 어려 발음이 또박또박하지도 않은데 어찌나 자기 의견을 잘 이야기하는지 막둥이 송의 말에 어미는 빨래를 널다 말고 활짝 웃으며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송을 껴안아줬다.


“우리 송이, 형님들이 안 끼워줬어? 왜 그럴까? 이렇게 야무진데… 대신 송이 엄마 빨래 너는 거 도와줄 수 있어? 빨래 널고 나서 형님들 찾으러 가볼까?”


송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빨래통에 있는 제일 작은  빨래를 꺼내 어미를 따라 공중에 털듯이 탁탁 흔들었다. 

장독대뒤에 숨어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일곱 살배기 장남 현도, 둘째 여섯 살배기 이도 슬금슬금 어미 곁으로 오더니 빨래통에서 빨래들을 하나씩 꺼내 탈탈 털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이가 무척 좋았다. 어머님은 온화하시며 다정하신 분이었고, 아버지는 무뚝뚝하셨지만 청렴결백한 무인이셨지. 그리고 어느 날, 전쟁이 터졌다. 다들 가망이 없다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군을 꾸려 출정하시기로 했다. 그리고 출정 전날…”


“내가 이 전쟁에서 이길 확률은 매우 적소. 내가 죽고 나면 제일 먼저 유린당할 이들은 내 가족들일 것이오. 당신과 이 애들을 두고 떠나는 내 마음이 편하지가 않소. 나는 이 전쟁에서 내 목숨을 바칠 생각이오. 부인… 먼저 가서 기다릴 수 있겠소?”


어미는 눈물이 가득 찬 눈을 돌려 세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세 아이들을 품에 안고 어미는 남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비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애써 거두고 칼을 높이 들었다. 자식 셋을 베고 그리고 자신의 눈에서 나오는 피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아내를 베었다.



“그렇게 우리 셋은 아버지에게 죽음을 당했어. 그 후 어머니는 천국행과 환생을 결정하는 재판을 받으시게 되었고 우리 셋은   3 삼신님과 함께 머물러야 했지만  전생에 말라크였던 덕에 어머님의 재판 기간 동안 지옥에서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가족 모두를 베고 전장에 나가신 아버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 오셨지. 아버지는 본인의 이익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는 하나 살생을 너무도  많이 했기에 지옥행으로 결정 났다. 다만 그 이유와 행동에 죄악이 없다 판단하여 기간이 있는 지옥행을 선고받았지. "


“어머님은 어떻게 되셨어?”


“어머님은 천국행으로 판결을 받으셨어. 그런데 어머님은 아버님과의 부부인연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자신이 환생을 할 테니 아버지의 지옥 기간을 감해달라셨지. 그리고 이곳 환생국에서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기다리시기로 하셨다.”


“그럼 너희는?”


“우리는…”


“그래, 너희가 이곳의 수문장이 되겠다고?”


염라는 인간의 모습으로 장성한 청년의 모습을 띈 세 형제들에게 물어봤다.


“네, 저희가 아버지의 죄를 덜 수 있는 만큼 저희가 그 벌을 받겠습니다.”


염라는 잠시 생각하듯 의자를 톡톡 손가락으로 치더니 곧이어 말을 했다.


“그래, 너희는 아비의 벌이 끝날 때까지 지옥문을 지켜라. 벌이 끝날 때까지는 너희는 이곳을 한 발자국도 떠날 수 없다. 너희가 감내한 만큼 네 아비의 죄를 감해주지. 대신 지옥의 규울을 어긴 죄로 너희 셋은 몸은 하나에 머리는 셋인 흉측한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이며, 아비가 환생을 한 후에도 때가 올 때까지 더 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저희가 부모님에게서 태어날 수는 있는 겁니까?”


“걱정 마라. 너희 부모가 준비가 된 순간 너희의 벌도 끝날 것이다.”


플로피의 이야기에 논은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 플로피 너는 아버지로 인해 죽었는데 벌을 왜 대신 받은 거야? 너희들을 죽인 사람이잖아. 그것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들을…”


논의 질문에 플로피 세 머리는 대답 없이 애꿎은 쿠키만 와그작 와그작 씹어댔다.


“그래…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마…”


“구해드리고 싶었다. “


왼쪽 플로피가 망설이다 조용히 이야기하였다.


“우리를 죽인 원수 지만, 어쩔 수 없는 그의 사정이 이해가 되고… 자신의 지은 죄속에서 살아야 할 그를 구하고 싶었다. 우리가 전생에 말라크였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옥에서 본 수많은 재판과 이곳에 온 맑은 영혼들을 보며 인간들도 충분히 그런 생각을 갖고 결정을 내린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그저 아버지를 구해드리고 싶었다.”


논은 플로피의 이야기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책상 위의 깨진 씨앗과 주홍빛으로 밝게 빛나는 빛을 바라보았다. 논은 마음의 결정을 한 듯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조심스레 주황빛을 들었다. 그리고 깨진 씨앗이 든 유리병에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붉은빛이 깨진 씨앗 조각을 감싸 안았다. 다시 한 방울, 빛이 들어가자 씨앗조각이 어느새 하나로 붙어있었다.


“한 방울 더 넣어봐라. 씨 자체가 빛을 발해야 한다. 논"


플로피의 말에 논은 조심히 유리병 안에 빛을 한 방울 더 부었다. 다시 한 방울… 또다시 한 방울… 드디어 씨앗이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노란빛을 띠기 시작했다. 논과 세 플로피는 안심의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제 다 된 거겠지? 무사히 환생할 수 있는 거지?”


“삼신님께 가져다 드리면 씨앗을 심으실 거다. 이제 다 되었다. 논, 잘했다.”


“그런데 플로피, 빛이 남았어. 겨우 몇 방울 정도로 이렇게 해결이 되었네. 이 빛은 어떻게 하면 되지? 삼신님께 비료로 쓰라고 가져다 드리면 되나?”


“삼신님이 주시며 뭐라고 하셨나, 논?”


“어디에 쓰던 내 마음대로 쓰라고…그래서 난 당연히 영혼의 씨앗을 붙이는 데 사용하라는 건 줄 알았어. 그러면 몇 방울 이면 되는데 왜 이 많은 양을 주셨을까?”


플로피 세 머리는 고개를 좌우로 까닥까닥하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쾅’ 가운데 머리가 갑자기 고갯짓을 멈추자 양쪽머리가 가운데 머리에 탁 하고  부딪히며 화를 냈다. 


“야! 형이면 다냐.”


“박자 좀 맞춰라"


“마셔라, 논"


“응?”


갑작스러운 가운데 플로피의 말에  다른 플로피 두 머리와 논이 당황해서 모두 가운데 머리를 쳐다봤다.


“마셔봐라.. 아마도 그것이 네 전생들을 찾게 해 줄 거 같다. 논 너는 단순히 기억을 잃어버린 게 아니다. 모든 것은 시간과 흐름이 있다. 지금 이 순간이 그때인 듯하다.”


가운데 플로피의 말에 양쪽 플로피도 고개를 끄덕였다. 논은 망설이다 주황색의 빛이 든 유리병을 들었다. 그리고 유리병을 입으로 가까이 데었다. 따뜻할 거 같았던 빛이 입안에 들어오자 얼음처럼 시원하게 다가왔다. 논은 꿀꺽 빛을 삼키었다. 잠시 후 논이 몸이 전체적으로 주황빛을 내더니 이내 빛은 사라졌다.


“기억이 떠오르나 논?”


플로피의 커다란 눈 여섯 개가 기대에 차 논을 바라봤다.


논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플로피의 세 머리를 골고루 바라보더니 고개를 크게 좌우로 저었다.

넷은 동시에 빠져나오는 한숨을 멈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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