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주인공 그녀... 카렌의 집
내가 처음 아프리카 케냐에 간다고 하니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건넸다. 너무 위험할 것 같다는 걱정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킬리만자로 가고 싶은 게 평생 버킷리스트라며 부럽다거나(실제 킬리만자로는 탄자니아에 있다::) 눈앞에 기린이 다니고 맨발로 막 풀밭을 걸어 다니고 그러는 거냐는 황당하고 해맑은 질문까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단연 자주 들었던 것 중 하나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이야기도 꽤 나왔다. 그 영화의 배경이 케냐라는 것과 경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르면서 분홍 홍학 떼가 같이 푸르르 떠오르며 날아가는 환상적인 장면은 하도 유명해서 마치 나도 그 영화를 전부 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했었다.
오늘 우리 부부는 카렌 블릭센 뮤지엄에 다녀왔다.
그동안 그닥 흥미도 없어서 카렌블릭센 자택뮤지엄을 방문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이번 나이로비 방문 일정상 비교적 여유 있게 오게 되어 약속까지는 며칠 시간도 있고 다른 할 일도 없으니 나이로비 박물관이나 가자고 한 것이 여건상 오늘 카렌 블릭센부터 한번 가자 하게 된 것이다.
나이로비 외곽, 응공 힐스가 멀리 보이는 곳에 자리한 카렌 블릭센 뮤지엄이라는 팻말 안으로 들어가니 티켓을 구입하는 곳이 있다. 현금을 받지 않고 모두 엠페사나 카드로 받았다.
모든 관람객에게 해설자를 붙여주었다. 대부분 대학생이라고 했다.
키가 크고 마른 여학생의 이름은 몰리라고 했다. 마당에서 해설자가 카렌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전반적인 소개를 하는 시간을 갖고 그 옆에 당시 농기구들을 소개해주었다. 카렌의 일생과 그녀의 케냐에서의 삶의 연대기를 줄줄 외워 전해주었다. 영어라 따라가기 바쁜데 게다가 숫자가 줄줄 나오니 그냥 흘려듣게 되었다.
카렌의 집이 덩그러니 있는데 엄청난 저택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눈에 제대로 잘 지은 집이라는 게 느껴졌다.
케냐는 당시 영국 식민지 시기였다.
카렌은 덴마크인이니 직접적인 식민 지배국은 아니었고 그렇기에 그래도 케냐인들이 이곳을 관광이나 역사의 자료로 보관하고 박물관이라고 칭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배시기에 유럽인들이 이 땅에 와서 사업을 하고 이들을 관리하고 노동을 시키며 살았다는 것이 녹아져 있는 이곳이 그렇게 낭만적이거나 편안하게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어쩔 수없다.
카렌은 이곳에서 커피농장을 했지만 결론만 말하면 실패했다. 사업도 실패하고 남편과 이혼도 하고 삶의 힘든 시기였다고 한다. 그녀가 케냐 이 응공힐스에서 살았던 17년은 그녀에게는 고단한 상실의 시간들이었으리라. 덴마크에 돌아가 그녀가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통해 아프리카에서의 시간을 회고하며 쓴 글을 통해 그녀가 그래도 여기 현지인들과 상대적으로 인간적 교류를 하였고 교육에도 관심을 보이며 함부로 하지 않는 태도가 엿보이고 아직도 덴마크 정부의 후원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을 만큼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음이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삶의 공간으로 들어가 보며 느낀 것은 거창하게 박물관이라고 부르는 게 좀 불편했다. 그녀의 침실과 거실 다이닝룸 서재 화장실들을 돌아보면서 온통 배로 덴마크나 영국에서 가져온 물건들이었다는 것이 그랬다.
게다가사냥을 즐긴 남편의 전유물이나 사냥당한 동물들의 가죽들이 바닥에 깔려있다거나 하는 것은 여간 기분을 언짢게 하는 게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코끼리 다리를 협탁으로 사용한 것은 너무 엽기적이고 문화적 충격이었고 당시 제국주의의 잔인함이 느껴지는 기괴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당시 그들의 삶을 훑어보자니 어찌하든지 자신들의 본국에서의 삶에 맞춰보려는 노력들이 조금 냉소적으로 보였다.
시대를 넘나드는 느낌은 역시 자연에서 그러하다. 그녀가 심었다는 나무들 ... 남아공에서 가져왔다는 나무는 정말 오랜 세월을 거기서 거대한 뿌리를 세월 따라 내리고는 그렇게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노구의 나무를 보고 있자니 나무처럼 오래 살지 못하는 인생이니 언젠가 나도 죽게 되고 또 그렇게 이 땅에 작은 흔적 남겼다가 사라지는 인생임이 새삼 느껴졌다.
그렇다면누군가에게 인사 한번 반갑게 하며 웃어주는 미소로도 충분한 삶이 아닐까...
거창한 것은 없어도 소박한 일상으로 쌓여서 살아가고 싶어졌다.
카렌은 이방인이었으며 농장주였고 아프리카의 자연을 느꼈던 사람으로서 자신의 아프리카의 삶을 떠올리며 써 내려간 글을 통해 그녀의 실패와 상실 속에서 더 큰 의미를 찾은 것이다.
나는 자연보다는 사람들을 많이 생각하고 접하고 기억하며 살고 있다. 그렇지만 살수록 자연이 주는 의미와 아름다움을도 많이 느낀다. 사람들은 그때의 사람들이 아니지만 자연에게 여전히 안겨서 함께 살아간다.
우리 아이들은 자라서 어느새 성인이 되어 떠나갔다. 그리고 나는 늙어가고 있다.
고단했지만 돌아보니 나도 카렌, 그녀처럼 더 큰 무언가를 찾은 것 같다. 나도 이렇게 글로써 나의 이 시간들을 한 장 한 장 써내려 갈 수 있어서 이 또한 감사하다.
책으로만 알던 한 작가의 삶이
갑자기 현실의 공간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은 단순한 박물관이라기보다, 한 사람이 살았던 시간과 기억이 조용히 남아 있는 집에 가까웠다.
뮤지엄의 건물은 외관에서 본것보다 소박했다. 넓은 저택을 상상했지만, 실제로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단정하고 넓은 농가의 모습이었다. 마당에 서서 주변을 바라보니,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등장하던 풍경들이 왜 그렇게 담담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겼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의 공기와 빛, 그리고 넓은 하늘은 글을 쓰게 만드는 힘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실내에는 카렌 블릭센이 실제로 사용하던 가구와 생활용품들이 남아 있었다. 그녀의 책상 앞에 서 있었을 때, 이 공간에서 아프리카에서의 삶에 대해서 간간히 글을 써 내려갔을 그녀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되었다. 케냐를 떠난 후 작가로서의 성공 이전에, 이곳에서 그녀는 농장주였고, 이방인이었으며, 동시에 아프리카에 정이 든 한 개인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둘러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 공간이 화려한 성공의 기록이 아니라, 실패와 상실 이후에도 남은 기억을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커피 농장은 결국 실패했고, 그녀는 이곳을 떠나야 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경험이 그녀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었다. 이 사실은 실패가 반드시 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뮤지엄을 나서며 다시 한번 응공 힐스를 바라보았다. 카렌 블릭센이 살았던 이 풍경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은 듯 보였다. 이곳은 그녀가 잃어버린 장소이자, 동시에 그녀의 문학이 시작된 장소였다. 이번 방문은 한 작가의 삶을 이해하는 동시에, 여행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도 그녀처럼 여기서 나만의 문학이 시작되기를 수줍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