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내 논문
“진, 말하기보다 글쓰기 실력이 훨씬 낫네.”
나의 졸업논문지도 교수는 내 석사 논문을 보며 칭찬을 해 주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12년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영어 듣기, 말하기보다 읽기, 쓰기가 더 편한 건 사실이다. 우리의 영어교육이 낳은 불균형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의 영어교육은 훨씬 나아졌겠지만,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80년대는 리스닝도, 스피킹도 없었다. 아예 그런 건 배우지도 않았기에 영어로 말하기보다는 작문이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나의 가족은 남편의 직장으로 인해 인도 뱅갈로르라는 소위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IT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인도라는 생소한 나라에서 사는 것이 녹록지 않았지만, 점점 적응해 가면서 일상이 지루하고 무료해짐을 느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인도에서 거주하는 한국인 10명 중의 9명은 친다는 골프 대신에 대학원을 선택했다. 운동도 좋지만 인도에 사는 동안 인도교육을 한번 경험해 보고 싶었다.
나는 뱅갈로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명성이 있는 대학교에 다니기로 결심했다.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인도는 영국식 교육시스템을 따라간다. 법대나 의대 같은 전문학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대학교는 3년제, 대학원은 2년제, 박사과정은 3년 이상 걸리고, 특이한 부분은 석사와 박사과정 사이에 엠필(M.Phil)이라는 1년제 과정이 있다는 점이다. 학비도 외국인은 아프리카 지역을 제외하고는 현지학생의 거의 10배나 된다. 외국인이 무슨 봉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학부시절 교직을 이수했던 경험을 살려 교육학 석사 과정을 선택하였다. 이곳 인도도 한국과 비슷하게 경영학이나 공대 쪽이 인기가 많고 교육학은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영어가 자유롭지 못했던 나는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수업을 따라갔다. 내 아이들도 수업이 없는 토요일 오전까지 수업이 있었다. 무슨 고등학교도 아니고 대학원생인 나는 주중에는 9시부터 4시까지, 토요일은 12시까지 별다른 선택과목 없이 짜인 시간표대로 수업을 들어야 했다. 한국의 교육제도와 달라도 참 많이 다르다.
힘들었지만 나름 재미있었던 2년 간의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마지막 화룡점정이 되어 줄 논문. 나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선택 했듯 양적 연구 방식으로 논문 자료를 수집하고 통계를 내고 영어로 논문을 한 땀 한 땀 써 내려갔다. ’ 인도에 거주하는 한국학생들의 학교 적응도 및 학업성취도‘에 관한 논문이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생소하고 어러웠다. 자료수집을 위해 한국학생들이 주로 다니는 국제학교나 사설학원을 방문하기도 하고, 방문이 허용 안 되는 학교의 경우는 지인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자료수집 후, 통계분석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고, 무엇보다 영어로 논문을 써야 하는 일이 나에게는 여간 어럽고, 스트레스받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논문 쓰는 기간에는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들, 딸을 제대로 돌볼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아들이
”엄마, 3일째 된장찌개만 먹는 게 지겨워요. 다른 음식도 좀 해주세요. “라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할 정도였다.
저학년인 딸의 미술 준비물을 연속으로 챙겨주지 못해 딸이 미술 시간에 교실 밖으로 내쫓긴 적도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먼 아이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논문을 검토받는 시간이 왔다. 삼손 교수는 나의 졸업논문 지도교수이다. 삼손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로, 적의 첩자였던 연인으로부터 본인 힘의 비밀을 누설함으로써 적에게 잡혀 모진 고통을 당했는데, 보통 사람이름으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이름이다. 그런 삼손교수는 다른 엄근진 교수들처럼 권위적이지도 않고, 유머러스하며, 수업시간에도 여러 가지 교수법을 이용해서 지루하지 않게 수업을 했던 교수이다. 이런 교수가 나의 논문지도를 해준다니 내심 기뻤다. 역시 평소에 자상함을 잃지 않는 삼손교수는 외국인이었던 내 논문을 꼼꼼하게 초록부터 끝문장까지 일일이 검토해 주었다. 논문을 생각보다 잘 썼다며 칭찬을 해주기에 나는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삼손교수는 나에게 특정 영국학술지를 언급하며 그곳에 내 논문을 게재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나는 계속 학업을 이어갈 것도, 교수의 꿈도 없었기에 굳이 학술지에 내 논문을 올릴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그 교수는 계속 나에게 제안했고 설득된 나는 도전해 보겠노라 대답했다.
그런데…
“진, 너는 논문을 게재해 본 적이 없으니 논문 게재 경력이 많고 00 연구협회 회원이기도 한 나를 제1 저자로 올려야 학술지에서 수락해 줄 확률이 높아. 나를 제1 저자로, 너를 제2 저자로 신청해. 수락하면 학술지 게재비가 있을 텐데 그건 반반 나눠서 내자.”
뭐라고? 내가 한 땀 한 땀 고생하며 쓴 논문인데 본인을 제1 저자로 올리라고?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려는 심사인가?
수많은 생각이 오갔지만, 그게 인도의 고등교육에서는관례처럼 행해지는 걸 지도. 그리고, 정말 삼손교수처럼 경력자를 먼저 뽑아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삼손교수가 코칭하는 대로 영국학술지에 메일로 요청했고 마침내 수락한다는 내용과 함께 논문 게재비 청구서를 보내왔다.
‘논문게재비가 생각보다 비싸네, 난 제2 저자인데 비용을 교수님과 반반 나누는 게 꺼림칙하네.‘
드디어, 내 논문이 학술지에 게재되었다. 그러나 뿌듯한 마음도 잠시. 제목 아래 삼손교수가 첫 번째 씌어 있었고, 그 아래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심지어, 구글에서 내 논문을 치면 클릭해서 들어가기 이전에 삼손교수 이름만 저자로 떴다. 왠지 모를 씁쓸함과 내 마음 저 어딘가에서 서운함이 올라왔다.
그 후 나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업을 더 이어가지는 않았다. 전공은 달랐지만 같이 학교를 다녔던 내 친구는 계속해서 동대학원에서 엠필과정까지 밟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친구도 나와 같은 일을 겪었음을 알려 왔다.
“내 엠필 지도교수가 나에게 어떤 학술지에 내 석사 논문을 게재하라고 권했는데 본인을 제1 저자로 넣어서 신청하라는 거야. 그래서, 좀 이건 아니지 싶어 석사 때 지도교수님에게 가서 이 사실을 이야기했더니 깜짝 놀라면서 이건 분명히 남의 논문 저작권을 침해하는 일이고 도둑질이라는 거야. ”
내 친구의 석사시절 지도교수는 결국 징계위원회에 이 사건을 회부하였고 결국 학술지에 논문 게재를 제안했던 교수는 대학에서 사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의 지도교수였던 삼손교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내 친구 교수님의 말에 의하면, 삼손교수는 내가 졸업하고 바로 다음 학기에 학교를 그만두고 정부기관으로 이직했다고 한다. 이미 이직을 한 상태라 내 논문의 저자행세에 대한 징계는 어렵다고 한다.
성경 속의 삼손은 비밀을 누설하는 바람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현실 속 삼손교수는 어디선가 승승장구하며 지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본인이 물리적으로 보이는 것을 훔치는 것만이 도둑질이 아니라 타인의 지식재산권도 엄연한 범죄행위임을 깨닫고 뉘우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