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픈 전설의 시작
나는 평소 인복이 많은 편은 아닌 듯하다. 후임도 꽤나 연구대상이지만, 전임자도 그에 못지않은 강적이었다. 둘 다 독보적이어서 굳이 비교하자면 난형난제랄까.
그 전임자는 입사 두 달 만에 본인의 희망에 따라(!) 다른 부서로 전출되었다. 다행인 건, 그가 이 일을 아주 못한다는 걸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 일은 성격이 천차만별인 업무들을 한 사람이 떠맡아야 하다 보니, 전문성을 갖추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우리는 해야 한다. 왜냐고? 우리는 월급을 받는 소박한 근로자들이니까.
처음엔 누구나 고생한다, 적응하기 전까지는... 전임자의 인수인계는 없고, 짧게 한 두 시간 설명 듣고는 여기저기 전화 돌리며 손품 발품 다 팔아야 했다. 다들 처음엔 어렵고 낯설다. 그런데 문제는... 그는 정말 ‘크게’ 한 방을 터뜨렸다.
우리 일 중 가장 민감한 작업 중 하나인 급여 작업, 직원 수백 명의 월급을 와장창 꼬아버린 것이다. A에게는 300만 원, B에겐 400만 원을 줘야 하는데, 웬걸. A 200, B 300, 갑자기 등장한 C에게 400. 수백 명이 꼬여버린 급여 이체는 재난영화급 스케일이었다.
급여가 들어가는 오전 시간, 사무실은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급여가 다르다며 문의오는 전화로 수화기가 불이 날 정도였고, 사무실에 있던 모든 직원들은 모두 본업을 내려놓고 급여 수습이라는 대작전에 돌입했다. 실타래 풀듯 하나하나 원인을 찾아가며, 기적처럼 퇴근 전에 모든 급여를 원상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팀장님과 전임자는 놀람, 안심, 미안함 등 그 모든 감정을 느끼듯 눈물을 흘렸고, 나도 그 순간만큼은 동료애에 찡~ 했다. 그런데 그 감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주일 뒤, 명절 상여금 일부가 또 꼬였다. 이쯤 되면 사람이 긴장해야 정상 아닌가? 그러나 그는 여전히 ‘결재만 올리면 내 할 일 끝!’이라는 마인드. 문제는 그 결재 내용이 항상 틀려 있었고, 팀장님은 매번 야근하며 뒷수습을 해야 했다.
게다가 업무 특성상 보안이 중요한지라 서류는 서랍에 넣어 잠그고, 컴퓨터는 끄고 퇴근해야 하는데, 그는 대체로 “내일도 출근하니까~” 마인드로 모든 걸 책상 위에 두고 떠났다.
우리 팀장님은 참 따뜻하고 합리적인 분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리더라도 매일 같이 문제를 수습하다 보면 결국 한계를 느끼기 마련. 담당자는 퇴근하고, 팀장은 남아 뒷정리를 하는 풍경… 이게 정상은 아니지 않나...
“중요한 건 메모하고, 서류는 잘 챙기세요.” 팀장님의 조언은 그의 한쪽 귀로 들어가 반대쪽 귀로 사라졌다. 정말 대단한 재주다.
돌이켜보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실수를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적어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 팀은 팀장님만 좋은 게 아니다. 구성원 전원이 마음 따뜻하고 책임감도 있는, 흔치 않은 조합이다. 그래서였을까. 그 전임자가 들어왔을 때, 모두가 한마음으로 도와주기 시작했다.
업무가 일부 겹치는 A 직원은 매일같이 옆에 앉아 일일이 알려줬다. 옆자리 B 직원은 문서 작업법부터 실무 팁까지 하나하나 챙겨줬다. 나는 업무가 전혀 겹치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것들만큼은 정성껏 알려주려 애썼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우리 팀은 그가 잘 적응하길 진심으로 바랐던 것 같다. 문제는... 아무리 물을 줘도 자라지 않는 화분이 있다는 거다.
그렇게 팀장님은 점점 말라갔고, 마침내 기적처럼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전임자의 ‘2개월 만의 전출’. 원래 보통은 한 기관에 2년은 있어야 하는데, 이건 거의 긴급 구조 수준이었다.
그는 마지막 일주일 중 3일을 휴가로 채웠고, 심지어 근무 마지막 날도 휴가를 썼다.(난 전임지에서 현 근무지로 오기 위해 마지막 일주일을 매일 야근했었다.) 그의 업무를 나눠 맡게 된 나와 B는 급히 인수인계를 받았지만… 음, 정확히 말하면 ‘받으려 노력했지만 별로 받을 게 없었다’가 맞겠다. 그가 더는 설명할 것도, 알려줄 것도 없는 상태였으니까.
그러다 마침내 마지막 날의 폭탄이 터졌다. 각 기관별로 도서를 주문해 주는 업무에서, 한 기관에서 “도서가 덜 왔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이 업무를 누가 했느냐? 네, 맞습니다. 그분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휴가 상태였고, 급한 마음에 전화를 했더니 자다 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거요? 제가 할 일이 아니라 기관에서 직접 업체에 연락해야죠. 왜 저한테 전화를 하시죠?”
그 순간 우리 팀 전체의 눈앞이 하얘졌다. 팀장님은 결국 “결자해지”라며 그를 다시 불러냈다. 12시가 다 돼서야 등장한 그는 투덜거리며 문제를 마무리했고, 덤으로 마무리되지 않은 다른 업무들도 한가득 남겨두었다. 그러고는 그 업무를 넘겨받은 B에게… 화를 내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두 달 동안 옆에서 도와준 그 B에게 말이다. 이쯤 되면 배은망덕도 예의 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 충격. 그가 남긴 인수인계 파일을 열자, 화면에 펼쳐진 각각의 파일명은 다음과 같았다:
a, aa, aaa, aaaa, aaaaa, b, bb, bbb, bbbb, bbbbb... g, gg, ggg, gggg, ggggg
이건 암호인가? 퀴즈인가? 아니면 후임자에게 보내는 마음의 엿인가?
도대체 어떤 규칙인지 모르겠고, 특정 파일 하나 열기 위해서는 죄다 클릭해야 하는 미로였다. 과연 그는 범상치 않은 천재였던 것인가, 아니면 정말 마지막까지 ‘기억에 남고 싶은 사람’이었을 뿐인가...
우리 모두, 인수인계를 받을 땐 파일명에 제발 마음을 담자.
정말,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