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버티는 마음의 후유증 / 7회
상담실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는 이것이다.
“원장님, 요즘은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너무 피곤해요.”
이 말에는 늘 비슷한 표정이 따라온다.
설명하기 미안해하는 얼굴, 게으르게 보일까 조심하는 눈빛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덧붙인다.
“제가 원래 체력이 약해서 그런가 봐요.”
“나이 들어서 그런 거겠죠?”
하지만 상담자로서 나는 안다.
이유 없는 피로는 거의 없다.
다만 우리는 그 이유를 몸의 문제로만 좁혀서 생각할 뿐이다.
50대 초반의 남성 내담자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안정적인 삶이었다.
직장도, 가족도, 특별한 위기도 없어 보였다.
그는 상담 초반 내내 이렇게 말했다.
“딱히 힘든 건 없어요. 그냥 늘 피곤합니다.”
그의 하루를 천천히 따라가 보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하고,
출근길엔 밀리는 교통을 참고,
회사에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집에 돌아와서는 가족 앞에서 괜찮은 얼굴을 유지했다.
그는 말한다.
“별일 없잖아요. 다들 이렇게 살지 않나요?”
바로 여기에서 중요한 지점이 나온다.
피로는 ‘많이 해서’ 오는 게 아니라 ‘느끼지 않고 지나가서’ 쌓인다.
이유 없는 피로를 호소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 감정을 설명하는 언어가 적다.
“그냥”, “늘”, “원래” 같은 말이 자주 등장한다.
둘째, 자신의 하루를 돌아볼 때 사건은 말해도 느낌은 빠져 있다.
셋째, 쉬고 있어도 마음은 늘 깨어 있다.
이런 사람들의 휴식은 진짜 휴식이 아니다.
몸은 앉아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긴장 상태다.
마치 휴대폰 화면은 꺼졌는데 백그라운드 앱이 계속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상담 중에 그에게 물었다.
“하루 중 가장 피곤한 순간이 언제인가요?”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사실… 사람들하고 있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요.”
이 대답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 피로는 업무 때문이 아니라 ‘괜찮은 사람 역할’을 유지하느라 소모된 에너지였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착각한다.
아무 일도 없었으니 괜찮아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마음은 사건보다 억제된 감정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말하고 싶은 걸 삼키고,
표정 하나를 관리하고,
괜찮은 척 고개를 끄덕이는 데에도 힘이 든다.
이런 피로는 잠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여행을 가도, 쉬어도 며칠 지나면 다시 돌아온다.
왜냐하면 피로의 원인이 ‘쉼의 부족’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단절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숙제를 하나 제안했다.
하루에 딱 한 번 “오늘 가장 피곤했던 순간에 무슨 감정을 참았는지” 적어보는 것이다.
다음 상담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피곤한 줄만 알았지 서운했고, 답답했고, 말하고 싶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이 깨달음이 중요하다.
피로는 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느끼지 못하게 살아온 시간의 합이다.
조금씩 그는 피곤함을 비난하지 않기 시작했다.
대신 묻기 시작했다.
“오늘 나는 뭘 참고 지나왔을까?”
그 질문이 생기자,
피로는 점점 ‘적’이 아니라 ‘신호’가 되었다.
아무것도 안 해서 피곤한 게 아니라, 너무 많은 감정을 혼자서 처리해 와서 지친 건 아닐까.
이 7회는 6회의 몸의 신호에서 8회로 이어질 감정 억압과 무기력의 다리가 되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