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존재의 이유로 살아온 30년, 누군가를 책임져야할 50년 그걸로 족할까? 관계론적 사회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점점 고착화 되어 이미 우리에게 하나의 규범으로 자리잡아 왔으며, 또한 기본적인 관계인 가족관계가 사회의 기본 관계로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고착화된 사회적 규범은 어느덧 엄청난 사회적 스트레스를 재양산하고 사회적비용과 비효율성을 야기시키고 있 다. 관계론적 사회가 아닌 경우에는 어떠 할 것인가?
인간의 태고적 생활은 자기생존과 본능적인 존속 생명체에 대한 생존의 유지가 그 삶의 전부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는 관계론적 사회가 아니었던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집단, 소집단, 부족 등 모든 1인 이상의 집단은 관계구조를 전제로 한다.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닌 탄생에 의한 당연 관계로서의 자연스런 편입과 필요에 의한 구성이라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규범에 의한 것이 아닌 자연법칙에 의한 관계구조로의 편입은 당연하게 자기본능의 통제와 구성원과의 관계유지 및 집단존속을 위한 규율과 책임이 요구 되어진다. 이러한 구조는 지금의 우리사회의 시스템과 다른 것이 있는가? 태고적 관계구조에서는 생명유지와 집단존속이 그 관계구조의 유지에 대한 목적이었다면, 현재의 관계구조는 더욱 복잡해 졌을 뿐이다.
이미 보장된 생명유지와 집단존속을 위한 여러 가지 복지와 사회적 법률을 통한 시스템적 통제가 이미 수세기를 거쳐 확립되어졌으며, 전 인류의 공감대 형성을 통한 세계의 질서유지 시스템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우리는 관계론적 사회에서 무엇 때문에 스트레스가 발생하고 있는가? 관계유지가 소집단과 기본단위인 가족으로 바뀌어가고, 1인 가구의 증가와 소통의 폭풍속에서 소통에서의 소외감이 우리에게는 못견디는 스트레스로 작용해 가고 있다.
기본적으로 가족관계는 당사자 가족만이 아닌 직계존속 및 비속,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선조까지 현재의 가족을 관계속에 얽어매고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온오프라인의 개인관계를 유지해나가기 위한 얽매임속에 살고 있다. 이미 관계속에 얽매여 있는 상태에서 의지와 상관 없이 관계 속에 있어야하며, 유지를 위한 모든 활동이 결국은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이며, 결국 그 스 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과 집단 스트레스가 발생하게 된다.
관계론적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맺고 유지하여야 하는가? 우선 관계에 개념이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우리가 속해있는 현대 사회에서의 관계는 의도된 관계와 의도되지 않은 즉 자연발생적 관계가 있다. 그 자연발생적 관계는 현재 사회의 시스템에서는 끊을 수도 변경할 수도 없도록 되어 있다. 우리는 이미 존재론적으로는 각각의 객체이나 사회적인 관계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기에 싫든 좋든 그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가족? 친족? 언제부터 누구를 위하여.. 더욱이 지금의 상황은 이러한 관계구조 유지에 대한 상당한 사회적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죽은자들이 지배하는 산자들의 세계.... 결국 관계론적 사회구조는 시공간과 삶과 죽음을 뛰어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