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받고 싶어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삶이란 얼마나 비참한가!
행복은 늘 내 안에 있다는 것이 나의 인생 신조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을 하면서 스스로 과정에서 어떤 뿌듯함을 느꼈다던지 혹은 결과물에 만족을 느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타인이라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존재에게 나에 대한 평가나 행복을 기대하는 것은 도박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나의 멘탈을 그렇게 훈련해 온 결과, 나는 실제로 타인의 생각에 관심이 없는 편이다.
그러나 누군가 돈에 관심이 없다고 하면 그 사람이야 말로 돈에 미친 사람이라는 떠도는 이야기처럼, 어쩌다 마주하게 된 타인의 평가에 한껏 우쭐대며 콧평수를 넓히며 웃어 보이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나 정말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 목마른 관종은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된다.
오늘이 그랬다. 누구에게 칭찬을 듣거나 인정받은 것과는 조금 다른 케이스긴 한데 혼자서 은은하게 벅차오르는 마음을 안고 퇴근했다.
퇴근을 위해 텀블러를 씻으러 가는 길이었다. 대개의 사무실이 그렇듯 내가 일하는 곳도 큰 오픈형 공간에 책상이 늘어서있고 사이마다 파티션이 놓여있다. 파티션이 작은 편이어서 오가는 길에 다른 사람들의 모니터가 쉽게 보인다.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다 누군가의 화면에 띄워진 익숙한 장표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나를 갈아 넣어 만들었던 브랜드 전략 문서였다. 이 무슨 쓸데없는 삽질이냐는 주변의 안타까운 시선을 받으며 지난여름부터 올여름까지 근 1년을 매진한 프로젝트의 최종 결과물이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사업부에서 하던 일과는 결이 많이 다른 프로젝트 성격 탓에 주변에 조언을 구하기 어려워 ‘이게 맞는 것인지,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것인지’를 수도 없이 되물으며 동료들과 겨우 겨우 만들었던 외롭고 지난한 여정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을 하고 최종 배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긴 했었는데 이렇게 옆 본부에서 실제로 업무에 사용하고 있다니 정말 어찌나 신기하던지. 내가 잘못 본 것인가 싶어서 괜히 길을 돌아 한 번 더 지나가며 확인했다. 어쩐지 얼마 전부터 익숙한 PPT템플릿이 다른 사람들 모니터에서 보이는 것 같다 싶더니만…!
이거 우리만 보고 아무도 안 읽을 거라며 무너져가는 동료의 멘탈을, 그렇지 않다고 주섬주섬 쌓아 올리느라 얼마나 힘들었던가. 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이게 뭐 대단한 경험이라고 굳이 글을 남기나. 얘 일 하루 이틀 해보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좀 소소하다. 그렇지만 나는 주로 브랜드 경험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일을 해왔어서 그런지 나의 결과물이 실제로 쓰이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접하니 참 신기하고 뿌듯했다. 더군다나 정말 그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많이 외롭고, 표류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었기에 다른 사람 모니터 속에 한 페이지가, 그 시간에 대한 작은 보상인 것 같아 오늘이 참 기쁘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역시나 타인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진다. 무슨 뚱딴지같은 결론이냐고?
그 1년이 힘들었던 것은 남들은 모두 터부시 하는 천덕꾸러기 같은 일을 떠맡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 탓도 있었다. 모든 일은, 모든 경험에는 배울 점이 있다는 마음으로임 했지만 한 번씩 멘탈이 흔들릴 땐 모두가 부질없다고 하는 일에 내 시간을 버리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힘들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일을 천덕꾸러기, 의미 없는 일이라고 말한 것도 남들의 평가인 것인데 말이다. ‘회사 일이 다 그렇지 뭐’ 하면서 자조 섞인 말로 넘겼지만 나도 모르게 은은하게 영향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얘기야 말로 흘려보내야 할 의미 없는 이야기이거늘!
오늘도 일하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하는 생각을 10번은 한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그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과적으로는 타인에게 인정 받지 못하고 누군가의 외장하드에 묻혀 영원히 봉인되어 버릴지라도, 그 일을 하면서 보낸 시간이 또 다른 기회를 위한 밑거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회사를 다니다 보면 어쩔 수 없기에 숨쉬듯 내뱉는 염세적인 말들에 너무 흔들리지 말 것. 섣불리 쓸모 없는 일이라고 단정 짓지 말 것. 내 일이 어떤 일인지 평가하고, 정의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나 스스로가 그 안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대로 가치 있는 일이다.
그저 회사 내에서 문서 공유된 것 가지고 왜 이렇게 비장해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은은한 뿌듯함이 참 좋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