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다 믿었던 시간의 발걸음
어릴 땐 하루가 길었다. 아침에 일어나 동네 친구들과 뛰놀다 집에 들어오면, 그날이 마치 두세 번은 바뀐 듯 느껴졌다. 저녁이 올 때쯤엔 하루가 다했다는 실감보다, 또 다른 시간이 남아 있다는 여유가 더 컸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시간은 내 발걸음을 기다려주지 않고 앞질러 달려가기 시작했다.
“벌써 12월이야?” 하고 달력을 들춰보는 사이, 계절은 바뀌어 버리고, “작년”이라 부르던 시간이 어느새 “몇 해 전”이 되어 있다.
나만 느린 것일까.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세상은 더욱 빠르게 변한다.
젊을 때는 내가 시간을 끌고 간다고 믿었다.
계획을 세우면 시간이 따라와 주었고, 노력하면 그만큼 결과가 주어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거꾸로다.
시간이 나를 이끌고,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차다.
그래도 때로는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잠시 멈춰 서서 창밖을 바라보면,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고, 햇살이 벽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런 순간에는 오히려 시간이 멈춘 것 같다. 바쁜 흐름 속에서도, 마음만은 잠시 제 속도로 걸을 수 있다.
아마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닐 것이다.
시간이 빠른지 느린지보다,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붙잡고 있는지가 더 본질일지 모른다.
어릴 땐 하루가 길게만 느껴졌지만, 돌이켜보면 그 긴 하루 속에서도 마음에 남는 건 짧은 장면들뿐이었다. 친구와 눈이 마주치며 터진 웃음, 부모님의 손길, 스스로를 향한 작은 다짐.
이제는 안다.
시간이 빨라졌다고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 흐름 안에서 더 깊이 머물 수 있는 순간을 찾으면 된다는 것을.
흘러가는 시간은 막을 수 없지만, 그 안에서 내가 느낀 마음은 오래도록 남는다.
오늘도 그렇게, 나는 나만의 속도로 시간을 붙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