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 한 장 뜯겨나가는 삶의 조각
달력의 종이는 얇다. 손끝으로 쉽게 찢긴다. 그러나 그 얇은 종이 한 장 속에는
결코 얕지 않은 시간들이 들어 있다.
한 장을 떼어내면 그 달이 사라진다. 달력은 무심하게 다음 달을 내밀고,
나는 또다시 빈칸을 채워야 한다.
가끔은 그 성급함이 얄밉다.
지난 한 달을 충분히 곱씹어 보기도 전에, 달력은 이미 다음 장을 보여준다.
내가 ‘아직 여기 있는데’라는 말조차 꺼내기 전에, 시간은 멀리 가버린다.
돌아보면, 채우지 못한 날들이 많았다. 계획만 세워두고 실행하지 못한 날들, 해야지 다짐하다 미뤄둔 순간들. 달력은 그런 빈칸들을 가차 없이 지워버린다. 그리고 나를 향해 묻는 듯하다.
“넌 이번 달을 어떻게 살았니?”
그 질문 앞에 나는 잠시 멈춰 선다. 대답은 언제나 서툴고 마음 한편이 허전하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하려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달력에 기록된 건 일정과 약속뿐,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 칸에 적히지 않는 순간들이다.
가족과 웃었던 저녁 식탁, 혼자 산책하다 마주한 노을, 고요히 흘러간 하루의 끝.
달력은 너무 성급하게 지나가지만,
그 안에서 내가 발견한 작은 순간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달력의 종이는 찢어져 버리지만, 마음에 새긴 기억은 오래도록 남는다.